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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슬리마 해변, 그리고 우리가 남긴 발자국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몰타대학교 어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이곳의 수시 학기제 특성상 많은 학생들이 입학과 수료를 반복하며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한다.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측했던 일이라 조금 산만하더라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유럽권, 아랍권,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계 학생들과 섞여 지내며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지난 두 달간의 학교생활을 돌아보면, 룸메이트 요한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걸 좋아하고, 자주 식사 자리를 마련해 준 덕분에 나도 덩달아 많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아시안이다 보니 아시아계 학생들에게는 더 눈길이 갔고, 이곳 몰타에서는 일본 학생들이 아시아권 중에서도 가장 많았다.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 지역에서 온 학생들도 있었지만, 숫자가 적었고 특히 중국 학생들은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다. 동남아 출신 학생은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이곳에 오는 일본 학생들은 대부분 일본의 대학에서 파견되어 온 어학연수생들이었고, 나이는 주로 18세에서 22세 사이로 상당히 어렸다.


유럽권 친구들은 나이 차이에 대해 별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일본 학생들이 나의 나이를 쉽게 예측하는 그들의 눈빛 때문에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먼저 다가가 장난을 걸거나, 작은 간식을 건네며 부담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었다.

오늘은 목요일. 내일은 몰타의 공휴일이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점심 무렵, 요한과 일본 친구들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야외 테이블에 모였다. 식사 중 누군가 “바닷가로 놀러 가자”라고 제안했고, 기분 좋게 모두 동의했다.

20대 초반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 나이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일본 학생들도 대부분 부모님의 용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듯했고, 누가 먼저 “카페 가자”, “술 한잔 하자”라고 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몰타의 Sliema 해변은 특급 호텔과 상가들이 줄지어 있고, 바다를 따라 산책로가 펼쳐져 있는 관광 명소다. 다만 해안은 대부분 바위와 돌로 이루어져 있어 걷기 편한 길이 많지 않았고, 만조 시간에 도착한 탓에 바닷물이 많이 들어온 상태였다.


그중 Kiseki와 Yuki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미끄러운 돌길을 걷는 모습이 다소 위험해 보여 걱정이 됐다. 나는 운동화를 신었고,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재킷까지 단단히 챙겨 입었기에 비교적 여유가 있었고, 친구들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며 손을 내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일본인 친구 모모는 오늘따라 요한과 유독 친밀한 분위기였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라, 다른 일본 친구들에게 그 이유를 살짝 물었지만, 그들도 다들 “잘 모른다”는 반응뿐이었다.

결국 둘이 사귀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랜 해안 산책에 피로도 느껴졌고, 카페에 들러 바다를 보며 잠시 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이 차이는 사소한 듯해도 체력에서는 분명히 드러났다. “내가 이들과 같은 속도로 걷는 것도 이제는 조금 힘겨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도착했다. 요한은 X2 노선을 타자고 했지만, 30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환승을 하면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처음부터 요한이 노선을 정한 상태라 굳이 의견을 꺾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대기 시간이 1시간을 넘기자, 결국 내가 환승을 제안했다. 요한은 “그냥 걸어가도 30분밖에 안 걸린다”며 오히려 역제안을 했지만, 나는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 결국 5분만 더 기다려보자고 한 뒤, 그 시간이 지나면 환승하자는 것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던 환승 버스는 만원이었고, 운전기사는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걸어가야 하나…” 체념이 들려는 찰나, 저 멀리 우리가 기다리던 X2 버스가 보였다. 1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마침내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요한이 “오늘 저녁은 내가 친구들에게 피자를 만들어 줄게”라고 제안했다. 피곤한 와중에도 그런 말을 꺼내는 걸 보며, 한편으로는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무리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만드는 것보다 내가 피자를 사줄게”라고 제안했고, 피자 네 판을 주문해 함께 나누며 영화를 보고, 내 나이도 잊은 채 어린 친구들과 장난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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