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대학 캠퍼스 기숙사 6층에서 함께 살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변해간다. 아니, 변해간다기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느낌에 가깝다.
요한이는 랭귀지 스쿨을 수료하고, 몰타 시내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호텔 레스토랑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직장 근처에 새로 집을 얻어 기숙사를 떠났다. 요한이 외부로 나가 살게 되면서, 평소 브레이크타임마다 함께하던 친구가 사라졌고, 나도 자연스레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몰타에 올 때 같이 온 친구도 없었으며 배우자와 동행한 것도 아니다 보니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랭귀지스쿨에서도 인사만 주고받던 친구들과는 그저 눈인사로 관계를 이어가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요한이가 "오늘 쉬는 날이니 자기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해서, 기숙사에서 살던 몇몇 친구들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요한의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아침에 급하게 출근하게 되어 요한은 오후 4시쯤 퇴근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만남 시간을 오후 4시로 미뤘다.
기왕 만나는 김에 바다수영도 하기로 했고, 사전에 연락이 닿은 발린트에게 수영을 제안하자 흔쾌히 동의했다. 나와 발린트는 요한의 집에 일찍 도착했지만 요한이 아직 퇴근하지 않아, 집 근처 5분 거리의 해변으로 먼저 가보기로 했다.
쿨한 성격의 발린트는 내 수영 제안에 흔쾌히 옷을 갈아입고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지난주 프랑스 여행 때 해안의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 들어갈 수 없었는데, 위도가 더 낮은 몰타에서는 며칠 새 수온이 올라 수영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발린트는 바다 수영에 익숙한 듯, 물에 들어가자마자 멀리까지 헤엄쳐 나가 흥분한 듯 즐겁게 수영했다. 반면 나는 항상 수영장에서 연습만 해온 터라 파도와 짠물에 적응이 어려웠다. 특히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 들어서자 당황했고, 수평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발린트가 알려준 방법대로 되지 않았다. 파도에 휩쓸리며 쥐가 날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바닷물을 마시는 일도 잦아 입안에 짠맛이 가득했다.
잠시 후, 요한과 루나, 중국인 친구 얀이 해변에 도착했다. 요한이 근처에 더 좋은 해변이 있다며 그쪽으로 가자고 해서 도보 10분 거리의 바위 해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걷기에는 다소 불편했지만, 바위 끝에서 바로 바다로 다이빙할 수 있을 만큼 수심이 깊어서 수영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발린트가 알려준 대로 수면에 떠 있는 자세를 다시 시도해 보니 훨씬 수월했고, 그가 다이빙하는 모습을 따라 나도 적당한 높이에서 도전해 봤다. 해변에는 다른 관광객들도 많았고, 우리 셋이 고함치며 놀자 몇몇은 흥미롭게 쳐다보기도 했다. 아마도 동양인인 내가 바다수영을 하는 모습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함께 온 루나와 얀은 수영을 하지 않아 해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너무 오래 기다릴까 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어느덧 시간이 6시 가까이 되어,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요한에게 근처 괜찮은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자신이 일하는 호텔 앞 해변 식당을 제안했다. 관광지라 비싸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요한은 “걱정 말라”며 착한 가격의 가게를 찾았다. 메뉴판을 보니 피자 한 판에 10유로 정도로 가장 비싼 수준이었고, 맥주도 4유로 이하라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피자 세 판을 시켜 나눠 먹었다. 페퍼로니, 포르체타, 그리고 하나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치즈와 토핑은 달랐지만 동양인의 입맛에는 모두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곳의 음식 문화를 비판하고 싶진 않기에, 맛에 대한 평가는 넘기기로 했다.
식사 중엔 서로의 근황을 묻기도 했고, 요한은 내 영어 실력을 보며 랭귀지스쿨 레벨을 한 단계 올려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중국인 얀은 자신이 미국에서 5년간 거주한 이야기를 들려줬고, 나는 그가 중국 어디 출신인지 물었다. 얀은 처음에는 내륙 출신이라고 얼버무리다가 나중에 조심스럽게 우한 출신임을 밝혔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많은 오해를 받아서였는지, 처음부터 말하기 어려워했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요한의 집으로 돌아가 유튜브를 보거나 잡담을 나누었다. 요한이 영화를 보자며 내게 어떤 영화를 보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거나 괜찮다고 대답했다. 친구들이 오래전부터 보자던 영화 ‘부산행’을 보게 되었고, 자막 없이 본 건 오랜만이었다.
영화가 끝나니 밤 10시가 넘었고, 나는 대중교통을 타기엔 늦은 시간이라 서둘러 귀가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함께 있던 루나가 보이지 않았다. "곧 나오겠지"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시간이 흐르자 불안해졌다. 현재 시각은 10시 10분, 막차는 10시 24분.
결국 요한의 방 문을 열었고, 그 안에는 울고 있는 루나와 요한이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루나는 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우리 셋은 막차라도 타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누구도 먼저 말하지 못했고, 결국 루나가 방을 나온 건 10시 30분이 넘어서였다. 결국 우리는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에 도착한 뒤 루나에게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보니, 6월 중순이면 기숙사 계약이 끝나 방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에 속상해서 울었다고 했다. 내 나이로는 방이 없으면 새로 구하면 되는 일처럼 보였지만, 스물두 살 루나에게는 정든 공간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나는 “걱정하지 마. 친구들이 도와줄 거야”라며 몰타에서 집을 찾을 수 있는 앱을 알려주고 안심시켜 주었다.
다음 날, 헝가리 친구 발린트가 학교에 가지 않길래 왜 안 갔는지 물었더니 그날은 수업이 없는 날이라고 했다. 발린트는 해양학교에서 항해사를 공부 중이고, 조만간 원양 배에 승선해 6개월간 인턴십 실습을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요즘 내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멀리 떠나거나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전처럼 함께 브레이크타임을 보내기도 어려워졌다. 루나는 기숙사를 떠나야 하고, 요한은 멀리서 살며 일하고 있고, 발린트는 머지않아 긴 항해를 떠난다.
겉보기엔 특별한 문제없어 보이는 이 친구들이, 속으로는 제 몫을 해내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들의 생활 반경이 변해가는 것을 보면, 이 나이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시기인지 실감하게 된다.
나는 이 몰타대학 기숙사 6층 아이들이 앞으로 더 멋지게 성장하리라 믿는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삶의 영역에서 멀어져 가는 이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서서히 작별을 준비해야만 한다.
평소 발린트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언젠가 네가 크루즈나 상선을 타고 한국에 오게 되면, 꼭 미리 나에게 말해줘. 내가 한국 항구에서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너를 환영할게.” 그는 언제나 웃으며 내게 고맙다고 했고, 인턴십을 떠나기 전 함께 식사하자는 약속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