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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절벽 위의 용기, 바다를 향한 비행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 침대에서 잠시 뒤척이다가 일어나 물을 마시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금요일이자 공휴일. 외국인인 나로서는 무슨 날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연히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영상을 보고 오늘이 선거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몰타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이곳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절름발이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매번 휴일을 집 안에서 보내는 게 아쉬워 이번 주엔 내가 직접 관광지를 고르고 함께할 친구들을 찾아 연락했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인원과 함께 즐기는 오늘 하루는 그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여행이든, 휴식이든, 공부든 결국 내가 원하는 걸 해야 자기만족이 생기는 것이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몰타는 여름 시즌 동안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휴양지다. 해변은 물론이고 절벽이나 난간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높은 절벽이나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젊은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오고, 박수로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바다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고, 해변마다 선탠 하는 사람, 수영하는 사람, 이를 구경하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오늘 찾은 곳은 몰타 남쪽 끝자락의 ‘피터스 풀’이라는 바닷가였다. 달걀 모양처럼 안으로 움푹 들어간 바위 해변에서 수영을 즐겼지만, 집과 거리가 멀어 돌아올 때는 택시를 불렀다.
버스를 타면 1시간 반, 택시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몰타의 시민 버스는 무료라 부담이 없지만, 택시는 다소 부담이 되는 비용이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보낸 시간과 더운 날씨 속의 즐거운 하루를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두 시간의 수영을 마친 뒤, 시내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콜롬비아 식당을 찾았다. 음식을 주문하자 왜 이 식당이 유명한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맛도 맛이지만, 양이 유럽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렇게 큰 접시에 담긴 음식은 처음 봤고, 친구들도 양도 많고 맛도 좋다고 입을 모았다.
내가 추천한 식당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다행히 모두 만족해 줬다.

이른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난 뒤, 프랑스인 친구 길버트가 걸어서 집에 가겠다고 하기에, 산책을 좋아하는 나도 함께 걷기로 했다.

몰타의 번화가 중 하나인 파쳐빌은 바닷가와 접해 있어서 해안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길을 걷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마주쳤다.


어제 막 한국에서 도착한 친구와 그의 일행, 예전 몰타 기숙사에서 함께 살던 플루어메이트 엘라, 스페인 유학생 이안 등, 짧은 구간에서도 여러 인연을 마주쳤다.

처음 몰타에 온 친구는 기대에 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기숙사 친구들은 평소와 다르게 한껏 멋을 내고 도도한 모습으로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지만, 어쩌면 시골에서 티 안 나게 꾸미려는 노력처럼 귀여운 부조화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안은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었는데, 어떤 책인지 물어보니 스페인어로 된 유명한 책이라고 했다. 언젠가 번역본을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피곤이 몰려와 샤워 후 거실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두어 시간 후, 알바로가 돌아온 인기척에 잠에서 깨어 그를 맞이했다.

내일 수업 준비를 하려 했지만 급한 일도 없었고, 평소에 예습을 해두었기에 마음이 편했다.
항상 예습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내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알바로가 저녁을 준비하고 나서, 나도 식사를 할까 싶었지만 이미 배가 불렀고 귀찮기도 해서 커피 한 잔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싱크대를 보니 식기건조대에 식기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건조되지 않은 그릇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커피잔을 씻으려 보니 배수구에 물이 빠지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음식물 찌꺼기가 배수구에 걸려 물이 막혀 있었고, 아마도 알바로가 사용한 흔적이었다.

셋이 함께 살다 보니 이제는 누가 무슨 식기를 썼는지, 그 흔적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알바로는 외모나 평소 행동에서 깔끔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자기 주변만 깔끔하게 하고 공용공간에는 무심했다.

자기중심적인 그의 태도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그다음은 내 알 바 아니다’는 태도. 그런 모습이 아벨미나 나에게 좋은 인상을 줄 리 없었다.

나도 그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가 민감한 성격이라는 걸 알기에 참기로 했다. 괜히 복수라도 하는 줄 알까 봐.


화장실 세면대에도 각자 손세정제를 따로 놓고 쓸 정도로 위생에 민감한 그들인데, 공용 싱크대는 왜 신경 쓰지 않는 걸까.
‘내가 치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밖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기운이 없어서 그냥 두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어젯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늦은 저녁을 먹은 아벨미가 정리를 하지 않아 싱크대는 그대로였다.
그래도 푹 자고 일어난 뒤 맑은 정신으로 마른 식기를 제자리에 정리하고 뒷정리를 마쳤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출신도, 문화도, 성향도 달라 완전히 맞춰 사는 건 불가능했고, 어쩌면 서로 일부만 맞춰가며 사는 중인지도 모른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프랑스인 길버트와 외국에서 사는 기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에 살던 시절, 나는 동남아시아인을 조금은 아래로 보고 “쟤들은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 일하지?”라고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곳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보니, 그 시절의 내 시선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실감하게 된다.

몰타에서도 나는 종종 인종차별을 겪었고, 유럽인들이 동남아시아 사람과 동북아시아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 채 허드렛일 하는 사람처럼 보는 시선도 여러 번 마주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길버트는 자신도 한국에 있을 때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며 내 말에 공감해 주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바라보는 틀 안에서만 판단하고 행동하기 쉽다.
그 틀을 벗어난 사람을 억지로 그 안에 끌어들여 잣대를 들이대고 선을 긋는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고, 때로는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오늘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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