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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킹가위 Jun 10. 2024

어린순(筍), 용감한 피아니스트들의 선물

새싹들의 연주회

얼마 전 아이들 피아노 학원에서 하는 연주회에 다녀왔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연주회를 한다. 작년에는 다른 애들이 하는 연주를 구경만 했었는데 1년 정도 다녀서 그런지 올해는 우리 아이들도 연주할 예정이었다.


연주회에는 드레스가 꼭 필요하다. 어쩌면 피아노 연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둘은 쌍둥이지만 성격부터 입맛, 취향이 아주 다르다. 한 명은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 없다고 드레스에는 관심도 없다. 또 한 명은 드레스부터 구두까지 아주 세심하게 자신이 직접 골라야 한다. 8년 동안 지켜본 결과 아마 조금이라도 복장이 마음에 안 든다면 연주회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도착한 학원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의자가 빼곡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이것저것 볼 일 보고 좀 늦는 바람에 뒷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안타깝게 내가 앉은 자리는 굵은 기둥으로 인해 마련된 무대와 피아노 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위치였다. 별 생각이 없었으므로 단념하고 딸들의 연주 순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학년에서부터 고학년으로 연주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므로 조금만 기다린다면 곧 딸들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10살 남짓한 사회자가 엄숙하게 연주회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저학년들의 연주는 음악에 문회한인 내가 들어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박자는 뒤로 밀리기 일쑤였고 연주라기보다는 건반을 두드리는 노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드렁하게 딸들의 연주를 기다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윽고 딸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딸들의 연주는 비록 '도레미 송'이었으나 오르페우스도 감동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고슴도치도 원래 제 새끼는....) 그렇게 내가 오늘 여기 온 목적이 사라졌으니 이제 남은 건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야 사진도 찍고 집에 갈 수 있으니까.


어느덧 연주회는 후반부로 접어들어 고학년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제법 음악에 가까웠는데, 훨씬 여유 있었고 정확하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앞을 가리고 있는 기둥 때문에 짜증은 조금 났으나 알 바 아니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마지막 연주자의 연주가 시작되었고 나는 당연히 그녀가 누구인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돈을 내고 연주회에 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았을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였다. 실제로는 여러 아이들이 각각의 곡을 차례로 연주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탓에 연주회 내내 한 사람이 약간의 시간을 두고 연주를 이어가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오늘 연주회가 한 사람의 성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피아노 건반을 제대로 누르지도 못하는 조그만 손으로 설렘과 꿈을 누르고 있는 아이들의 연주에 대해 불경스러운 생각을 했다. 게을러 빠진 손의 주인이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매번 등껍질 안으로 숨어버리는 거북이 주제에 잠시나마 그들의 용기에 대해 무례한 생각을 했다.


 마지막 연주를 한 아이도 처음부터 잘 하지는 못했으리라. 피아노 연주에 어설프고 두려움을 가졌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박자를 놓치는 일, 악보를 이해하는 일, 손가락이 꼬여 버리는 일 등 말이다. 결정적으로 자기 자식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나같은 멍청한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용감하게 이겨내고 자신만의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 어린 새싹들은 온전히 주목받고 마땅히 존중 받아야만 했다. 나의 무지함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고통받던 중 모든 연주가 끝났다. 하지만 저학년 아이들의 합창곡 무대가 마지막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합창곡은 바로 '밤양갱'. 합창이 진행되는 동안 사회자는 엄숙함을 잠시 내려놓고 관객들에게 경품 추첨 번호가 붙은 밤양갱을 나눠주며 관객석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이게 웬일이지?' 평소 운이 없다고 자부해왔는데 커피 쿠폰에 당첨되었다. 비록 내가 마실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뜻하지 않게 갑작스런 선물을 두 개나 받았다. 그 중 하나는 누군가 먹어서 없어져 버리겠지만 나머지 하나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잊고 사는 무언가를 항상 간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소중한 선물을 준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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