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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킹가위 Jun 11. 2024

춘(春), 봄이 아름답다고?

알레르기와의 전쟁

사람들은 말한다. 봄은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어린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꽃들이 만개하는 생명력이 가득한 계절. 마음이 몽실몽실해지는 사랑의 계절.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봄이라 말하기도 하고 애타게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순간을 봄이라 부르기도 한다.


온갖 예쁜 말들에 둘러쌓여 있는 봄이지만 극심한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나에게 봄은 그냥 꽃가루 날리는 알레르기의 계절이다. 원래 그렇지는 않았는데 스무 살 때부터 갑자기 재채기와 콧물로 괴로워했다. 비염으로 시작했으나 마흔의 문턱에서는 결막염도 생겨 아주 고역이다.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이게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레르기약은 또 어찌나 독한지 한 알 먹고 자면 다음날 아침까지 정신이 몽롱하다. 방바닥이 내 몸을 잡아당겨 저기 깊은 나락으로 끌고가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코로나가 유행할 때는 항상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상태가 호전되어 이제 완치됐나 싶었지만 마스크를 벗자 역시나 또 시작이다. 하루 종일 약에 취해 있거나 재채기로 인한 콧물을 닦느라 항상 코밑이 진달래처럼 벌겋다.


우리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별종'인 나는 알레르기 문제에서는 봄이라는 계절을 제외해도 자유롭지 못하다. 처음에 발견한 음식 알레르기는 복숭아였다. 복숭아는 워낙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복숭아 말고도 뭘 먹으면 자꾸 목과 입술이 따갑고 간지럽기 시작했고 심지어 가슴 안쪽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추가로 확인된 건 사과, 체리, 자두, 생밤, 아몬드 등이다.


사실 음식이야 안 먹으면 그만이다. 다행스럽게도 과일이나 견과류는 안 먹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 그런데 심리적인 알레르기만큼은 견딜 수가 없다. 그 중 가장 기겁하는 건 쥐와 닭이다. 쥐는 그 어두운 몸색깔과 형태, 특히 꼬리를 참을 수가 없다. 닭은 눈이 너무 사납게 느껴지고 흐물거리는 벼슬 때문에 고통스럽다. 그래도 사람에 대한 알레르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유난히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나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존재 자체가 불편했다. 세상을 보는 눈, 교직관,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 등등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도 나에 대해 그렇게 느끼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진다. 봄이 지나가듯 그들도 내 삶에서 지나갈 존재다.


내 기준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짓은 그만 두기로 했다. 내가 조금씩만 위아래로 움직여서 그들 선에 맞추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어차피 세상에 정답은 없으니까. 내가 맞다고 단언할 수도 없지 않은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뭔가 조금씩 해결되고 있는 느낌이다. 오늘도 어제보다 좋아졌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지리라 믿는다. 내 삶에도 봄이 올 것만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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