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3> 우월적 지위 #1

#1. 문화차이?

by 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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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터널 속에서 뒤엉킨 차량들이 의미 없는 클락션 소리만 내지르듯 오늘 회의도 앞으로 조금도 나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김우진대리는 숙취와 피곤함에 고개 숙여 연신 하품만 하였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는 모두를 침묵시키고 있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이상훈 과장은 짜증을 냈다.

“ 아니 그러니 언제 설계안이 나오냐고요? 지난주 회의에서는 오늘 반영된 도면을 가져온다고 했잖아요”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일본 건축 설계사와 시공사 직원들을 한 명씩 차례대로 천천히 노려보았다.

통역하는 여직원은 짐짓 분위기를 반영하듯 낮게 깔린 목소리로 통역을 했다. 하지만 이상훈 과장은 여직원의 통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여직원에게도 짜증을 냈다.

“ 좀 강하게 말을 해요. 그렇게 부드럽게 말을 하니깐 이 사람들이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이상훈과장은 괜히 설계사 통역 여직원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김우진대리는 회의 테이블에 놓인 자료를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일 본사에 보낼 보고서 작성을 생각하니 은근히 피곤이 올라왔다.

3주째 부딪친 문제에 해답 없이 시간만 가고 있다.

“한국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설계를 변경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다른 업체에서는 문제 된 적이 없습니다. 설계에 반영할 수 있는 정량적인 값을 주셔야 합니다.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 시공비용을 우리가 책임은 질 수 없습니다. 아니면 노광장비 설치 위치를 변경하겠습니다.”

여직원은 겐지오 설계사의 나가타상의 말을 통역하면서 이상훈과장의 눈치를 봤다.

이 말은 지난주에도 나왔던 것이다. 이번달까지 최종 설계도면이 나와야 하는데 3층 연구실 내 설치될 노광장비 진동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본사 연구소에서 진동으로 인해 고가의 장비가 제대로 작동 안 될 수 있다고 보고를 하는 바람에 임원회의에서 난리가 났다.

김우진대리는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데 저 사람들은 회의에 7명이 들어와야 하는 거야,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답도 못 주면서 그냥 앉아서 노트에 뭘 저리 적고 있는 거야’

김우진대리가 일본지사에 온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손쉽게 진행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문화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게 너무 많았다. 대학시절 우연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자연스럽게 일본어 학원까지 연결되었다. 주변인으로 일본을 바라볼 때와 그 속으로 들어가 직접 살아보니 완전히 달랐다.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지만 눈치껏 알아듣고 대충 말할 수 있어 일본지사에 쉽게 발령이 났다. 주변 동기들의 부러운 시선에 우쭐했었는데, 지금은 본사로 돌아갈 방법만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회의는 결론 없이 끝났고, 이상훈과장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말을 했다

“내일모레 오후 2시에 다시 회의할 테니 들어오세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통역을 하던 여직원은 나카타상에게 다시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과장님 저희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이 어렵습니다. 가능한 날짜를 확인해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재일동포라는 들었던 여직원은 어눌한 한국어를 내뱉고는 짐짓 곤란하다는 것을 얼굴 표정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일본사람일 뿐이다. 한국의 기업문화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은연중에 여기는 일본이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초반 회의 때부터 설계사 직원들은 김우진대리를 가르치려고 들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법적으로 문제가 되어서 안된다. 그러니 초기에 제안한 게 최선이다.

김우진대리가 지쳐갈 때쯤 추가 투입된 이상훈과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발주처로서의 요구사항은 주저 없이 내놓았다.

“나가타상, 아시다시피 노광장비는 아주 민감하고 고가의 장비입니다. 진동문제가 발생하면 장비를 운영할 수 없어요. 진동문제를 해결할 컨설팅 전문업체를 한국에서 불렀어요.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장비 위치를 변경하면 모든 장비의 동선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 맞추어 설계된 구조도 변경되어야 하고요. 더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이상훈과장은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쓰는 6살 아들을 달래듯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했다.

통역을 들은 나카타상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나카다상의 입술은 답을 잃은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상훈과장은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천천히 일어나 노트를 들고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김우진대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군거림이 들렸지만 모르쇠로 돌아섰다.

이번에 차장진급에서 밀려난 이상훈과장은 해외근무 실적이 부족하다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 일본 법인으로 지원하였다. 불협화음 나지 않게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는 게 최선이다. 어차피 8개월 안으로 착공만 시작되면 시공감리팀과 임무교대를 하면 본사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김우진대리에게 세뇌시키듯 항상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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