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3> 우월적 지위 #2

#2. 연장근무

by 말랑

김우진대리는 숙소에서 찬 캔맥주를 마시며 읽던 소설책을 내려놓았다. 카톡으로 이상훈 과장이 연락을 해 왔다.

‘ 뭐 해 김대리, 법인장님이 사케 한잔 하자고 하시는데, 택시 타고 칸나이로 와’

김우진대리는 안 가면 안 되냐고 문자를 쓰다가 지우고 옷을 챙겨 입었다. 회사에서 얻어준 아파트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입사동기의 충고에 따라 직접 발품을 팔아 집을 찾았다. 회사에서 정해준 월세 금액만 맞추면 되기에 최대한 회사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싶었다. 이렇게 저녁시간에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거기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접대, 회식, 모임 등으로 침대에 등을 대는 그 순간까지 회사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택시를 타고 칸나이역 앞에서 내렸다. 화려한 불빛을 내뿓고 있는 소고백화점을 지나 뒷골목 쪽으로 걸어갔다. 조그마한 선술집이 모여 있는 골목은 백화점의 화려함에 대조적으로 그들만의 안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오고 가는 샐러리맨들이 잠시 하루를 내려놓고 가는 정거장 같은 곳이다.

김우진대리는 즐비한 선술집 중 한 곳의 낡은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법인장의 단골집이었다. 여기도 샐러리맨들로 북쩍이고 있었다. 늙은 가게 주인은 우렁차게 인사를 하며 공손하게 두 손으로 2층을 가리켰다. 이미 술이 취한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다들 각자의 하루를 풀어놓고 있었다. 그들의 말은 뿌연 담배연기와 뒤엉켜 가게 안을 맴돌고 있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취객들의 목소리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김우진대리는 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누가 일본사람들은 조용하고 매너 있다고 했어, 여기 와서 보면 그런 말이 싹 사라질 거야.’

김우진대리는 맨 구석에 앉은 이상훈 과장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하루가 멀다고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도 업무가 되어버렸다.

법인장의 술을 받으며 김우진대리는 구겨진 짜증이 보일까 봐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잔을 들었다.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법인장은 이상훈과장에게 시선을 던지며 오늘 회의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 겐지오에서 답이 나오기는 힘들어. 여긴 일본이야 닦달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아”

일본에서만 10년을 넘게 지내온 법인장은 마치 일본사람을 대변하듯 말을 했다.

“ 절대 자신들이 책임지지도 않을뿐더러, 결정도 절대 하지 않을 거야”

법인장의 말에 이상훈과장은 불만스러운 듯 술잔만 쳐다보았다.

“ 네, 제가 내일 본사 연구소와 다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진동전문업체에서 온다고 하니 잘 진행해 보겠습니다.”

이상훈과장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미 취한 법인장은 똑같은 이야기를 또 꺼내었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옆테이블에서 넘어왔다. 김우진대리는 손으로 담배연기를 좌우로 날려 보냈다. 음식을 먹는 건지 담배연기를 먹는 건지 음식맛을 느낄 수 없었다. 일본은 식당에서 담배 피우는데 제약이 없다. 주변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는 걸 조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담배에 관대할 수 있을까, 김우진대리는 뭐에 골이 난 사람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는데 한국말이 들렸다. 가게 안은 온통 일본말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사이를 비집고 한국말이 귀에 들어왔다. 한국말이 들리는 쪽으로 쳐다본 자리에는 6명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 음 저 두 사람은 한국사람이군’

김우진대리는 대번에 알아봤다. 일본인 샐러리맨들은 모두 똑같은 복장이다. 마치 교복처럼 모두 검은색 또는 남색 정장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다. 그 사이에 끼여 있는 한국사람 2명은 남방에 재킷을 입고 있어 확연히 구분되었다.

김우진대리는 좁은 의자사이를 통과해 화장실을 갔다가 이내 1층으로 내려갔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신주쿠의 어두운 골목길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는데 호주머니에 없었다. 불을 빌리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2층에서 봤던 한국사람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김우진대리는 그 옆으로 가서 말을 건넸다.

“저 죄송하지만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 남자는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라이터를 건넸다.

“ 아 네 여기….갑자기 한국말이 들려서 좀 놀랐네요”

“ 그렇죠 요코하마는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 아니죠, 한국에서 바로 오는 교통편이 없어 불편한 곳이라...거의 안 오죠”

“ 보통은 일본말밖에 안 들리는데, 한국말이 들리면 신기하죠. 출장 오셨나 보네요”

김우진은 라이터를 돌려주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 네, 이틀 전에 왔는데 다른 일이 하나 더 생겨서 며칠 더 있다가 돌아갈 것 같네요. 출장 오신 건가요?”

김우진대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아닙니다. 저는 여기에 주재원으로 나와 있습니다.”

남자의 인상이 너무 좋아 자연스럽게 몇 마디 더 나누었다. 이내 다 타들어간 담뱃불을 끄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올라오는 취기에 김우진대리는 법인장과 이상훈과장의 상태를 살피며 연신 하품을 삼켰다. 결론 없는 잔소리와 상투적인 대답이 오고 가는데 한 시간이 더 흘렸다. 취한 법인장을 겨우 택시에 태워 보내고 한잔 더 하자는 이상훈과장을 억지로 택시에 밀어 넣었다. 아무 생각없이 김우진대리는 멍하니 멀어져 가는 택시를 쳐다보았다. 택시를 타기 위해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머뭇머뭇 쳐다보는 게 느껴져 택시승강장에서 급하게 빠져나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하철방향으로 분주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취기가 올라 비틀거리며 걷는 김우진대리의 걸음으로는 그 무리에 스며드는 건 무리였다. 이 도시에서 배제된 이방인처럼 터덜터덜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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