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3> 우월적 지위 #3

#3. 줄다리기

by 말랑

아침부터 이상훈과장과 김우진대리는 법인장실 소파에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일본 설계사로부터 회의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미라 씨 말로는 갑작스러운 회의 일정 통보는 곤란하며, 회의결과를 보내주면 검토하여 의견서를 제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우진대리는 한국과 다른 건축법도 머리가 아프지만, 그들의 속성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싼 설계비용에 시공도 같은 회사가 시행하여 높은 이익이 보장되는 프로젝트이다. 그런데 발주처의 조그마한 요구에도 무리라고 대답하고, 비용 추가를 요구하는 게 얄밉게까지 했다. 앞에서는 친절하게 웃으며, 뭐든지 될 것 같은 분위기인데, 막상 진행되면 안 되는 이유가 열 가지도 넘는다. 자신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검토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과도한 안전율이 포함된 검토 안은 결국 비용으로 연결되어 답이 없는 씨름이 되었다. 일본에서 기술연구소를 만들어 과연 얼마나 기술적인 이득이 있을런지 모르지만 설계업무만 끝나며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스스로를 타이르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법인장이 직접 나서서 일본 설계사 대표에게 회의참석을 요청하였다. 본사의 질책에 법인장도 긴장한 듯 회의에 직접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어떻게든 결정이 날 것 같다. 김우진대리는 회의 1시간 전에 한국에서 온다는 진동전문업체의 담당자를 기다렸다. 아침에 관련 자료를 받았으나,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직접 설명을 듣고 싶었다.

1층 로비에서 서서 회전문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이 보았다. 참석하기로 한 한국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건넸다.

“저 혹시 나노이엔지에서 오신 분들 아닌가요?”

김우진대리는 엊그제 선술집에서 만난 남자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엊그제…” 김우진대리의 말에 그 남자도 알아본 듯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내왔다.

김우진대리는 두 사람을 데리고 게이트를 통과하여 14층 회의실로 안내하였다. 이미 앉아 있던 이상훈과장은 일어서며 법인장을 소개하였다.

명함 교환을 끝내고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노이엔지의 박지훈박사는 동일 노광장비의 설치사례와 문제가 생겼던 사례를 말하며 설계사의 설계안에 대해 물었다.

김우진대리는 도면을 열어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다시 강조하였다. 서로 간에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본 회의시간이 다 되어 장소를 옮겼다.

설계사 직원 3명이 더 합류하여 7명, 시공사 직원이 3명 참석하였다. 회의실은 가득 찬 사람들로 의자가 부족하였다. 약간의 웅성거림 속에 웃음기 없는 나가타상의 굳은 표정을 느꼈는지 이상훈과장은 과장된 몸짓으로 맞은편 테이블의 설계사 대표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제 결론이 나야 한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김우진대리는 본능적으로 절벽 끝에 서 있음을 직감하였다.

짧은 인사와 함께 회의가 시작되고 법인장이 먼저 현 상황의 시급함을 강조하였다. 부드럽게 달래는 말투 속에 오랜 경륜이 풍겼다.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법인장의 말이 끝나자 바로 일어서는 나가타상은 회사 대표의 눈치를 보았다. 딱딱한 말투 속에 나가타상은 짐짓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한 점을 강조하였다. 여기는 일본이고, 지반 환경조건, 법적 규제등을 한국과 다름을 강조하며 밀어붙이기식 진행은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은근히 비꼬는 투로 말을 내뱉었다. 통역할 틈도 없이 주고받는 사이에 일본어를 못 하는 이상훈과장은 분위기를 감지하고자 연신 눈동자를 좌우로 돌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속에서 박지훈박사는 준비한 사례를 발표하며 설계사에서 인지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였다. 굳어진 인상의 나가타상은 그제야 다른 컨셉이 있었지만 비용문제로 고려할 수 없었다며 대답하였다. 박지훈박사는 본 문제에 대해 검토하고 대책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3주의 시간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마무리하였다.

모두가 긴장하며 듣던 중 대책을 검토하여 제안하는데 3주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의미 없는 줄다리기식 회의로 흘려보낸 시간에 대해 모두가 공범이었다.

일단은 서로의 접점을 찾은 것만으로 만족하고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회의실에 남겨진 사람들은 2시간 넘게 이어진 회의로 모두 피곤함에도 길을 찾은 안도감에 표정은 밝았다.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야 하니 숙소로 돌아가 쉬겠다는 박지훈박사 일행을 이상훈과장은 저녁을 꼭 대접하고 싶다며 붙잡았다. 김우진대리도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저녁만 먹기로 하고 박지훈박사 일행을 회의실에 잠시 머물게 하고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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