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2>당신이 내민 손

6. 선순환

by 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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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지영아, 니가 왠 일이꼬, 니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무슨 일 있니?”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따뜻함이 묻어났다.

“엄마 여기 봉명동에 예전에 살았다고 했었지. 내가 학교랑 가깝다고 여기 집 구했다고 하니깐 엄마가 그랬잖아. 내가 어렸을 때 이 동네 살았는데, 기억도 못 하냐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영은 엄마에게, 자신이 몇 살 때까지 여기 살았는지, 왜 서울을 떠나 청도까지 내려간 건지 재차 물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설명은 앞뒤가 잘 맞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화통화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영은 전화를 끊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엄마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야간고속버스를 타고, 청도로 내려갔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 지영은 녹슨 철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나 왔어.”

지영은 현관문을 두드렸다. 꺼진 거실등이 켜지고, 엄마가 놀란 듯 문을 열었다.

“야야, 지금이 몇 신데, 진짜 내려왔쁜네. 어여 들어온나.”

엄마는 지영의 손을 잡아 끌었다. 지영은 엄마를 꼭 껴안았다.

“엄마 놀랬지. 근데 나 꼭 알고 싶은 게 있어.”

엄마를 껴안은 채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엄마와 마주 앉은 지영은, 조심스럽게 엄마의 과거기억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엄마는 느릿하게, 오래된 과거를 소환하였다.

“그때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니 아빠랑 만났지. 니를 가지게 됐고, 우리는 봉명동에 신혼집을 차렸제. 산동네 비탈길에 작은 단칸방이었지만, 니 아빠랑 나는 행복했다. 잘 자라는 널 보며, 밤낮으로 일했어. 매일 야근에, 철야를 하던 니 아빠가 그날도 늦게까지 일하고, 너 준다고 단팥빵 사서 집에 오다, 뺑소니 차에 사고를 당했제. 너무 늦은 시간이라 주변에 사람도 없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아저씨가 길에 쓰러진 니 아빠를 보고, 엎어서 병원까지 데려다 주어서 겨우 목숨은 건졌제. 그때 사고로 니 아빠가 평생 다리를 절어지만, 목숨은 건졌제. 근데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하노.”

말을 마친 엄마는 지영을 쳐다보았다. 지영은 엄마 손을 잡으며 말을 했다.

“아빠 사고 난 이야기는 예전에 삼촌에게 들었어. 그건 아는데 그때가 20년 전이야. 그러니깐 내가 5살, 6살 이 정도 되었을때…..맞지 그지.”

다그치듯 말하는 지영에게, 엄마는 잠시 당황한 듯 지영을 쳐다만 볼뿐 말이 없었다. 지영은 동네에서 보게 된 김씨라는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영은 그 사람의 과거에서 우리 가족과 연결되는 고리가 보였다고 말하였다. 지영의 이야기에 엄마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고개 숙여 흐느끼기 시작한 엄마는 한동안 말없이 울기만 하였다.

“그래, 그 사람인가 보네. 니 아빠를 살린 사람. 니 아빠는 여러 번 수술 끝에 위험한 고비를 겨우 넘겼거든.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사고였어.“

괴로운 듯 울먹이는 엄마를 지영은 꼭 안았다. 엄마는 지영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엄마는 지영에게 아픈 가족사를 알려주었다. 뺑소니 사고로 보상도 못 받고, 집 전세금도 병원비에 모두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어린 지영을 데리고, 병원에서 간병하고 뺑소니 사고 목격자를 찾기 위해 길에서 전단지 나누어 주며, 그렇게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걸어 나와야만 했다. 아빠를 도와준 사람을 당장 찾아갈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러 퇴원한 아빠와 함께 그 남자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전해 들은 소문에, 사고가 있었던 날, 그 남자 딸이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활터전이 모두 날아가버린 지영의 부모는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도망치듯 청도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며칠 뒤 지영은 움막을 찾았다. 하지만 움막은 그 자리에 없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듯, 너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지영은 그 남자를 찾아 주민센터를 찾아갔지만, 행방을 알지 못했다. 산불감시원, 자원봉사자를 만나봤지만, 그 남자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없었다.

지영은 마지막 술잔을 내려놓으며,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꽁꽁 얼어있던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열어보이지 못했던 이야기는 그렇게 모두 쏟아져 나왔다. 한결 홀가분한 얼굴로 지영은 박기자에게 2차로 맥주를 마시러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기자는 지영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네가 내 후배라 자랑스럽다.’

두 사람은 화려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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