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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정 Oct 10. 2022

11. 고양이 까미 2.

나는 사진 속 까미를 멍하니 보았다. 짙푸른 초록을 배경으로 검은 고양이가 무표정하게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횃불 같은 눈동자 외엔 온몸이 어둠에 휩싸여 있어선지 까미는 신비스런 분위기를 풍겼다. 캣맘 말로는 2,3년 전 사진이라는데 얼마 전 보았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 XXX 아파트 공터에서 발생한 검은 고양이 흉기살해사건 목격자를 찾습니다.’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산책길 입구에 붙어있던 플래카드를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자 어머나! 아이구! 하는 소리가 에코처럼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모두들 다양한 감탄사를 뱉어내고 서둘러 지나갔지만 난 계속 까미의 사진 앞에 서 있었다. 평소 같으면 머리로 내 종아리를 들이받았을 코코가 조용해서 내려다보니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언제부턴가 코코는 세상의 모든 길들이 집인 듯 아무데서나 엉덩이를 깔고 앉곤 했다. 나는 일어나라 재촉하는 대신 같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머리는 멍하고 다리는 아프고 계속 서 있을 수도 떠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까미의 사진 옆에서 마치 장례식장 영정 사진을 지키는 상주들처럼 앉아있었다. 코코도 까미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틈틈이 까미의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이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부터 까미는 이 동네 산책길의 일명 셀럽이었다. 우리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이사 가면서 두고 간 까미는 홀로 이곳에서 몽이를 낳아 키우며 10년을 살았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늠름한 떡대를 자랑하는 거대한 덩치와 함께 묘한 카리스마를 연출했다. 그래선지 까미 집이 있는 우리 아파트 공터엔 매일 저녁 아이들을 비롯한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고양이 간식이나 군것질거리들을 들고 모여들었고 까미에게 일용할 양식을 바치느라 줄까지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까미는 주인에게 버려져 집밖에서 사는 고양이지만 길고양이로 부르기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묘한 고양이였다. 부잣집 마나님 같은 넉넉한 품과 당당함을 넘어 거만해 보이는 표정을 가진 까미에게는 세상이 아무리 구박하거나 무시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 같은 기운이 새어나왔다. 코코도 그 기운을 느꼈는지 대형견에게 짖어대다가도 까미를 발견하면 바로 꼬리 내리고 못 본 척 하면서 다른 길로 돌아갔다. 나 또한 길 위의 불친절한 공기로 반죽된 거칠고 날카로운 까미의 에너지가 부담스러웠다. 특히 인간 따위 우습게 보는, 인간의 비밀을 꿰뚫어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듯 한 까미의 눈이 불편했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까미가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재빨리 달아났다.       


다시 만난 까미는 달라 보였다. 그림자 같던 몽이가 옆에 없어서였을까. 까미도 내 옆에 코코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덕분에 까미의 눈을 제대로 찬찬히 볼 수 있었다. 까미의 눈은 첫 느낌과 다르게 깊고 서늘했다. 나는 까미의 눈 속에서 모호함이 거세된 단정한 세상, 갈등이나 혼란이 한 톨도 섞여 있지 않는 정돈된 세상을 발견했다. 그것은 멀미가 일상감각인 내게 동경의 대상인, 코코와 또 다른 달콤한 눈이었다.      


그때 까미는 매우 예민했었다. 길고양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후에 캣맘에게 들으니 그때 몽이가 실종되었을 때였다. 한 달 전쯤부터 몽이가 나타나질 않았고 여러 캣맘들이 온 동네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고 까미 혼자 매일매일 몽이를 찾고 있었던 때였다. 아 그래서 어느 날 부턴가 저녁 공터가 조용했구나. 주인공들이 없으니 쇼는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까미는 자식 잃은 어미였지만 그럼에도 자식을 찾아 헤매는 어미의 애끓는 감정들은 하나도 묻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깔끔하고 단단해보였다.    

   

다만 까미에게는 짙은 피로가 묻어있었고 늘 깊은 시선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이 숲 저 숲 돌아다니던 때여서 우리는 곳곳에서 예기치 못하게 마주쳤다. ‘우리 아파트 마스코트라더니 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거야’ 생각하며 무심코 보았던 까미의 뒷모습은 순간 눈물이 핑 돌게 할 만큼 쓸쓸해보였다. 절박해보였다. 길고양이는 실종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 있는 개, 고양이는 실종만으로도 추적이 이루어지지만 길고양이는 죽지 않고서야 그것도 살해 정도 돼야 사람들의 행동을 끌어 낼 수 있다. 그래서 몽이를 찾는 일은 계속 까미 혼자의 몫이었다. 당시 나와 까미는 다른 이유에서 ‘길 위를 떠도는 존재들’ 이었고 그 공통점을 통해  틈틈이 잠시나마 ‘길 위의 순간’을 공유했다. 마치 동지처럼.      


당시 예민했던 건 까미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내 오랜 비밀을 들킬까봐 초조했다. 애지중지하던 노심초사하던 나의 생존전략이 발각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누설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 내가 내 생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내 생을 지도에 없는 비포장도로에 유기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허둥댔다. 무엇보다 이 사실이 나 자신에게 까발려 지는 것에 대해 미친년처럼 갈팡질팡했다. 그래서 내 관심을 딴 곳에 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백구도 소환되었다. 갑자기 백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고 너무 걱정된 나는 백구를 찾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내 앞에 까미가 나타났다. 까미는 백구만큼 지치고 배고파 보였고, 백구에게 줄 물과 사료를 내밀면 까미는 기다렸다는 듯 맛있게 받아먹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긴 했지만 까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나는 알았다. 까미의 눈빛은 그녀를 닮지 않았다는 걸. 까미의 눈빛은 내 안 어딘가에 숨겨진, 내가 아직 나라고 승인하지 않고 있는 눈빛, 아마도 그녀를 보던 나의 눈빛을 닮았다는 걸. 그녀를 향해 있던 나의 거칠고 차가운 눈빛,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이 담긴 음산한 눈빛을 닮았다는 걸. 그 눈빛은 내가 너로 그녀로 떼 내어 놓아버린, 내 사악한 살점들 중 하나였다. 나는 당황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진실이 서둘러 도착한 느낌. 가라앉고 있던 속이 울렁거렸다     

까미와 눈이 마주쳤다. 까미의 눈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니가 버려졌다고? 사랑받지 못했다고? 너도 알잖아 그게 아니란 걸. 그냥 니가 그 서사를 선택한 거야. 너에게 허락된 무수한 서사 중에 니가 버려짐의 서사를 원한 거라고. 넌 비극의 여주인공, 잔혹한 운명에게 상처입고 고통 받는 가련한 공주 역할이 좋았던 거야.’     

그 후 부터였던 것 같다. 까미가 미워진 것이. 까미는 늘 어딘가를 주시하느라 바빴다. 나 말고 딴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나에게 결코 집중하지 않는, 나는 잠시 흥밋거리에 불과한. 그래서 그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까미를 피했다. 고양이 주제에 도도하기는 잘난 척 하기는. 더럽고 냄새나는, 몸에 병균이나 잔뜩 묻히고 사는 길고양이 주제에시건방 지기는. 없이 사는 것들이 다 그렇지 뭐 빌어먹고 사는 주제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상대해 주니까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나는 무시하고 폄하했다. 결핍이 만드는 남루함, 불쌍함의 냄새, 살기 위해 끓임 없이 구걸해야 하는 의존의 냄새, 실은 내 감춰진 그림자에서 나는 냄새. 나는 까미를 경멸했다.         


그때 나는 발견했다. 너로 유배 보낸 줄 알았던 오만하고 비열한 나를. 나는 변함없이 사악했고 여전히 배가 고팠으며, 빛나게 이기적이었다. 그 후 나는 까미를 완벽하게 모른 척 했다. 나는 ‘너’ 라는 시스템이 고장 난 후 내 안에 오물처럼 쌓이고 있던 너를 까미에게 투사했고 너를 버린 방식으로 까미를 내 세상에서 몰아냈다. 덕분에 내 생은 근근이 유지되었다.    


          

얼마 전, 플래카드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캣맘을 만났다. 목격자가 여럿 있다고 다들 한 사람을 지목한다고 범인은 우리 아파트 주민이라고 했다. 범인은 공터 바로 앞 동에 살고 있으며 한 목격자는 열대야가 심한 날 한밤중에 담배 피러 나왔다가 마침 가로등이 그들 사이에 놓여있어서 분명하게 범인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놀랐고 한동네 주민이라 혹시 피해를 당할까봐 직접은 아니고 건너 건너서 제보했다고,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그래도 이런 사건의 범인은 꼭 잡힌다고 경찰이 말했다고 했다.      


캣맘도 의심 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검은 옷, 검은 모자를 즐겨 착용하는 키 크고 마른 남자가 동네 길고양이 집들을 배회하는 걸 여러 번 봤다고. 까미가 유독 싫어했다고. 근처에 오기만 해도 몽이를 뒤로 보내고 하악질을 했다고 했다. 대체 그런 인간들은 왜 그러고 사는 건지 성토하는 캣맘과 맞장구를 치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나도 진심으로 궁금했다. 나는 코코에게 따지듯 말했다. “그런 짓 하는 인간은 대체 뭘까. 왜 안전하고 쾌적한 지 집 놔두고 남의 작고 허술한 집 주변을 배회하며 괴롭히는 걸까. 하이에나처럼 먹이를 찾아다녔나? 그랬다면 마음이 고파서겠지.” 나는 가끔 생각했다. 신에게 가장 골치 아픈 피조물은 인간일거라고. 인간은 만족시키기가 어렵고 그 만족을 지속시키기는 더더욱 어렵고, 아무리 줘도 트집을 잡고 불만을 찾아내고 갈등과 문제를 만들고 파국을 연출하고 불행과 고통을 기어이 창조하는 존재, 가장 많이 가졌으면서 가장 만족 못하는 생명체일거라고.       


‘인간은 맛 중독자들이잖아. 끊임없이 맛, 살맛을 추구하지.’ 나의 정성스런 빗질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님 까미의 죽음 이후 내가 툭하면 질질 짜서, 무엇보다 내가 우리 동네 모든 남자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삐딱하게 쳐다봐서 그런지 다시 말해 내가 티 나게 불균형 상태로 빠져든다고 판단해서 인지, 코코가 옛다 대답 하면서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살맛은 생존과 상관없는 욕망, 자극적인 쾌락이야. 근데 인간은 그것에 목숨을 걸어. 금지된 것이면 더더욱 정신 못 차리고. 또 욕망은 성취된다고 끝이 아니잖아. 계속 새로운 먹이를 갈구하고 자극의 강도는 점차 세 져야 해. 생의 진정한 맛은 무맛인데, 심심한 걸 조용한 걸 못 견디는 인간들은 정서적 불구자들 같아. 그래서 그런 인간에겐 악이 더 매혹적일거야. 선은 심심하잖아. 자극적이지도 않고. 악은 짜릿하고 재밌어 보이잖아. 살맛이 무궁무진 저장되어 있는 것 같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도 ‘맛’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살맛 중독자라는 것을. 코코가 오기 전까지 내가 중독된 맛은 불행이었다. 불행은 여러 자극적인 맛들을 품고 있었다. 고통과 미움, 분노와 두려움 외에도 지루함, 지겨움, 초조, 불안, 불만, 권태, 슬픔, 우울 등등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어서 각 감정별로 옮겨 다니다보면 생이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대가로 마음이 죽을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행이 일상 정서가 되면 자기 자신이 생이라는 극적인 드라마의 한 복판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존재하는 듯한, 묘한 느낌이 공급된다고나 할까. 불행은 내가 원하는 살맛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생을 버티게 하는 힘을 가진 것은 분명했다. 그러다 너무 견디기 힘든 불행은 너로 차출되어 일시적으로 버려졌다. 영원히 버렸다 나를 속이면서. 


코코가 온 후, 긍정적 감정들이 내 생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내 생은 좀 건강해졌다. 코코의 생을 지켜보는 일은 재밌었다. 코코는 생을 지루해하지 않았다. 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즐거운 일 하나 없어도 잘 지냈다. 평온했다. 나는 신기했다. 나는 코코의 생을 지배하는 무심함, 심심함, 무덤덤함, 고요가 좋았다. 그들 속에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가 누구든 괜찮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자 불행에 짓눌려 있던 내 안의 다른 세력들이 힘을 얻었다. 때로는 의식 바깥으로 걸어 나왔고 발언권도 세졌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갈등 서사에서 롤러코스트 같은 감정 게임에서 벗어나 안정되고 담담하고 무미건조한 생을 사는 거야. 세상이 사람들이 뭐라 그러든지 말든지 코코처럼 일명 시큰둥한 생을 살아 보는 거야. 이것이야말로 내가 정말 원하는 살맛인 것 같아. 나는 기뻐서 탄생까지 질렀다.


그런데, 바보가 나라는 걸 승인한 후, 나는 기운 없이 중얼거렸다. 중독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다고. 나는 곧 언짢고, 불편하고 못마땅한 불행 중독자의 정서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도 함께 왔다. 불행에 순종하는 것 외에 내 문제에 대해 파헤치고 싶은 욕망이 여름 모기처럼 번식했다. 나는 불행과 놀아주는 틈틈이 내 위대한 오해의 출발점에 대해 생각했고 두 가지 결과를 얻어냈다. 하나,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과 나의 본질은 다를 수 있음을, 다른 차원일 수 있음에도 나는 그 둘을 같은 걸로 오해했다. 또 하나, 내가 원래는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일거란 확신에 찬 믿음은 다음과 같은 불문율을 만들어냈다. 내가 이상한 짓을 미운 짓을 했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라는. 그로인해 내 생의 서사들은 대부분 내 생의 불행에 관해 나의 책임을 면피시키려는 본능적인 몸짓 곧 내 생의 마녀는 나였다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일 수 있다. 이는 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괜찮지 않다는 반증이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내가 괜찮지 않으면 내가 설정해놓은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나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본능적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오해의 핵심적 지점을 알아내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기대했는데 최소한 내 안의 소란스러움은 사그라들거라 기대했는데, 그 대신 힘이 빠지고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듯 온 몸 여기저기가 아팠다. 내 생의 어두운 비밀, 마녀의 민낯을 나름 죽을힘을 다해 밝혀냈는데 포상은커녕 벌을 받는 기분이랄까. 그 기분에 속절없이 휘둘리고 있다가 코코의 대답을 들은 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진실을 손에 쥔 대가로 살맛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코코가 온 후, 생이 비교적 순조롭게 전진하고 있었는데, 코코가 준 생의 안정감, 사랑의 힘으로 내 생을 사랑하기로 그래서 너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는데, 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내 생은 험악해졌다. 단정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더 엉망진창이었다.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서 내 생을 불행에서 구하기로 결심하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내가 내 생의 숨은 빌런이고 내 생의 서사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각색하기 위한 내 욕망의 야심찬 작품이라니. 이 무슨 종달새 슬피 울다 통곡을 넘어 팔짝 뛰며 환장할 이야기인가.  

       

코코조차 자리를 비우자, 나는 불안이 정장을 차려입고 다가오면 꼼짝없이 환대했고 고통을 우울을 뒷문으로 불려들어 내 밤의 왕좌에 몰래 모셨다. 까미는 그 시기에 내 옆에 있었다. 나는 까미에게 물었다. ‘까미, 나는 애초에 잘못된 답안지였나. 그럼 내가 나라고 믿었던 것, ‘너’와는 다르다고 믿었던 것, 내가 추앙해마지 않던 ‘나’는 누구지? 내가 만든 환상? 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어떤 얘기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다 들어주는 코코와 달리, 까미는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나는 몹시 거슬렸다. 길고양이 주제에 재수 없었다.       


까미를 피하기 시작한 후 어느 날. 집에서 좀 떨어진 등산길에서 까미와 딱 마주쳤다. 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난 외면하려 했지만 까미를 안고 병원으로 갔다. 까미가 내 앞에서 주저앉았고, 검은 다리 사이로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까미를 안고 뛰느라 까미의 피가 내 옷에 묻었다. 나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넌 대체 왜 그러냐?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데? 몽이가 돌아와도 니가 없으면 뭔 소용이야. 니 몸부터 챙기라고.” 내 소리를 들었는지 까미가 눈을 뜨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난 안 피곤해. 그리고 내 생이 어때서. 난 좋아. 난 나를 내 생을 사랑해.”     


다친 다리에 붕대를 감은 까미를 집에 넣어두고 오려는데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까미의 집이 텅 비어 보였다. 나는 코코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나도 텅 비어 있다는 것을. 나는 나도 모르게 물었다. “까미, 어떻게 하면 돼?” 내 목소리가 절박했는지 까미가 눈을 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받아들일 수 있어?” 까미는 별 시답잖은 소리 다하네 하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고 이내 잠이 들었는지 더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날 밤, 꿈에 까미를 만났다. 낯선 길에서 나는 도망가는 까미를 쫒아갔다. “말해달라고. 어떡하면 나는 날 받아들일 준비가 될까? 마녀인 나를 빌런인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망할 놈의 너를 어떡하면 사랑할 수 있냐고. 사랑할 수 있긴 한 걸까? 대체 그 빌어먹을 방법이 뭐냐고 응? 제발 도와 줘 도와 달라고!!!”  

갑자기 까미가 딱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거참 되게 시끄럽네.”

“... 그러니까 그 방법이 도대체 뭐냐고? 응?”

“방법 따위 없어. 방법부터 버려. 방법은 핑계야.” 

“뭐?”

“인간은 뭐 그리 필요한 게 많아. 그냥 해 그냥 하는 거야. 방법은 이 순간 하지 않기 위한 핑계야. 지금 하지 않겠다는 내 선택의 명분, 도망가는 구실.”

“헐......”

당황하는 나에게 까미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너 같은 족속들 진짜 밥맛이야. 그렇게 특혜를 받아놓고 감사할 줄 모르고, 좀만 부족하면 좀만 불편하면 좀만 손해보면 징징징. 그냥 만족하면 끝나는 걸. 아무 문제도 아닌 걸. 역겨워.” 

나는 불현듯 까미에게서 그녀를 봤다. 나를 봤다. 지겨움과 권태, 환멸이 가득 담긴 우리의 익숙한 얼굴을.    

 

나는 까미 플래카드 앞에 출근하듯 출몰했고, 캣맘에게 목격자 사례금에 보태라고 틈틈이 돈을 전했고, 까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까미의 집 옆 정원에 까미의 화장한 몸이 담긴 작은 나무상자가 묻혔다. 까미의 소지품은 혹시 몽이가 돌아올지도 모른 경우에 대비해서 까미 집 안에 보관하기로 했다. 흙이 다 덮이자 우리는 나뭇잎들을 주워서 그 위에 이불처럼 덮어주었고 몇몇 아이들이 까미가 좋아한 간식이라며 꽃처럼 던졌다. 몇몇 어른, 아이들은 울었다. 모두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어느 순간, 갑자기 코코가 멍멍 짖었다. 이놈이 이렇게 눈치 없는 놈이 아닌데, 당황하며 코코를 바라보자 코코가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남자가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지한 우리와 달리 그는 웃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광경을 본 듯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자제하는 중이었다. 내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와 저 인간을 태워버리면 어쩌지 걱정하면서 그를 빤히 보다가 문득 그가 검은 옷, 검은 모자에 키 크고 마른 남자란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 코코가 더욱 맹렬하게 짖으며 그에게 달려갔다. 놀라면서 따라가 코코를 안고 일어설 때였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 마스크 위로 바둑알처럼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눈은 어디서 본 듯 친숙했다. 그는 매우 흥미진진한 장면을 관람하듯 나를 코코를 우리 뒤의 사람들을 차례로 응시했다. 


그를 노려보다가 나는 알았다. 그가 친숙해 보이는 이유를. 그의 눈은 ‘살맛’ 중독자의 눈이었다. 그 눈을 보자 꿈속에서 까미가 나를 왜 그렇게 쳐다봤는지 알 것 같았다. 다음 순간 뜬금없이 몽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목덜미의 작은 흰 반점을 빼고는 까미와 똑같이 생겼던 몽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까미, 몽이 찾는 일 내가 계속할게. 그러니 몽이 걱정 말고 편히 가. 이제 편히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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