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핏줄로 이어진 채 알고 지내던 분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를 치른 후 집에 돌아오니, 코코가 뒷발을 교묘하게 들어 올린 채 옆구리를 긁어댔다. 그 자세를 볼 때마다 ‘코코 곡예 해?’ 장난처럼 말했지만 그날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잠시 희미하게 웃어주고는 침대에 쓰러졌다. 눈을 감자, 그가 묻힌 산 속 하늘이 떠올랐다. 시종일관 푸르디 푸르러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하늘에 솜사탕처럼 떠올라 있던 구름은 지금 어디에 있으려나. 그때 어디선가 둥둥둥 북치는 소리가 들렸다. 잘 못 들었나?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둥둥둥. 이번에는 좀 더 가까이에서 선명하게 들려왔다. 내가 눈을 뜨자 코코가 내 옆에 있었다. 코코는 여름의 달뜬 온도를 품은 눈으로 나를 보며 다시 예의 그 자세로 옆구리를 긁고 있었다. 둥둥둥 북치는 소리는 코코가 자신의 몸을 긁는 소리였다.
내가 인간사에 바쁜 사이, 코코는 자기 몸을 둥둥둥 치고 있었다. 북소리가 나는 코코의 몸은 농염하게 익은 과일 같았다. 나는 붉은 과육 같은 코코의 피부에 손을 댔다. 뜨겁고 몰캉몰캉했다. 피부 곳곳이 벌레 먹은 사과 껍질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내 관심이 거세된 사이, 코코는 홀로 아파하고 있었고 늙어가고 있었고 몸을 북처럼 치고 있었다.
마녀서사에 대해 생각하느라 얼마간 바빴다. 누가 마녀인지 왜 마녀인지 대체 내 생의 마녀서사는 무엇이며 바꿔 쓸 수나 있는지 생각하느라 나는 한동안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느라 세상은 물론 코코에게서 조차 유배된 채 나는 어두운 유리병 같은 내 안에 갇혀 있었다. 그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달리고 달렸다. 하늘도 공기도 바람도 달리고 달렸다. 그 덕분에 계절이 바뀌고, 나뭇잎도 피었다 시들었다. 인간 세상도 새학기 반친구들처럼 바뀌고 바뀌었다.
변함없는 것은 코코뿐이었다. 코코는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로 틈틈이 나를 세상으로 소환했다. 코코만은, 모두가 그랬듯이 자신의 생으로 달리는 대신 내 뒤처진 세상에 동참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된 유배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나에 대해, 너에 대해, 우리에 대해, 내 생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우리가 좀 더 잘 지내기 위해 혹은 행복하기 위해 숙고할 때마다 최선을 다할 때마다, 생은 나에게서 멀찌감치 거리를 두었다. 나는 유리관 속에서 태어난 죄수처럼, 생이 내게서 멀어지는 냄새를 맡았다. 그건 그냥 익숙한 패턴, 의례 같은 거였다. 그건 나도 모르게 내 생을 점령해온 어떤 힘, 어떤 관행, 어떤 악습이었다.
나는 그것을 독재라고 횡포라고 부르지 못했다. 다만 가끔씩 나는 왜 독재타도를 선언하고 내 생의 독립운동을 시작하지 않는지 궁금해 했다. 궁금함이 길어지면 집요해지면 생은 다시 내게서 멀어졌다. 그 힘은 그 관행은 그 악습은 때 되면 돌아오는 계절처럼 내 생 곳곳에서 불사신처럼 되살아났다.
나중에야 이런 생각은 들었다. 그 힘, 그 관행, 그 악습을 심어 놓은 것은 외부에서 온 드라큐라가 아니라 내부에서 온 프랑켄슈타인이 아닐까.
코코가 내 유배지에서 함께 표류하는 동안, 나는 잔병치례 한 번 하지 않았다. 난 코코가 옆에 있어서 튼튼했지만 내 옆에서 코코는 약해졌다. 유배를 잠시 끝내기로 작정한 후에야 나는 발견했다. 코코가 시도 때도 없이 두 앞발이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최선을 다해 긁기를 시도하고 있었음을. 코코가 둥둥둥 북치는 개가 되었음을.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강아지 빗을 들고 코코의 온 몸을 정성스럽게 빗어주었다. 코코의 몸은 어느새 붉은 반점들이 가랑비처럼 내려앉은 가을 들판처럼 변해 있었다. 검붉은 피딱지에서 나고 자란 반점들은 피부 긁기의 치열한 흔적이었다. 내 시선의 뒤안길에서 코코가 얼마나 열심히 북을 쳤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기록이었다. 나는 울컥 눈물이 났다. 코코, 많이 가려웠구나, 미안... 개의 몸은 인간에 비해 덜 효율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어서 스스로 긁을 수 없는 위치가 참 많다. 온 몸을 붉게 물들일 만큼 가려웠음에도 코코는 단 한 마디의 신음소리, 비명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만 홀로 북을 치고 또 쳤을 뿐이었다. 둥둥둥 그 소리만이 점차 커지고 단단해졌을 뿐이었다.
코코의 온 몸을 정성을 다해 긁어주는 사이, 너무 좋아서 귀까지 활짝 벌어진 코코의 입을 보는 사이, 코코 몸 위로 내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며칠간의 장례식에서 한 번도 나지 않던 눈물이, 마치 소낙비처럼 한꺼번에 떨어졌다.
한 존재가 이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의 슬픔을 나는 뒤늦게 코코 앞에서 미친 듯이 느끼고 느꼈다. “미안해 코코야.” 코코가 응? 하는 눈으로 나를 힐끗 보았다. 나는 급기야 코코의 몸을 끌어안고 오열하듯 울어재꼈다.
“미안해. 미안해.” 코코가 행복한 웃음을 거두고 부담스러워하면서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나는 코코를 놓아줄 수가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코코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기어이 내 몸에서 벗어났지만 나는 계속 ‘미안해’ 중얼거렸다. 나는 누구에게 사과를 하고 있는가. 내가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모든 존재들에게?
그러고 보니 누군가의 이별식에서 나는 한 번도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내가 너무 많아서? 어느 한 순간도 순순히 텅 빈 채 타인을 초대한 적이 없어서? 늘 나와 나 사이에 전쟁을 벌이느라 바빠서? 확실한 건 내 곁에 머물다 간 수많은 사람들을 난 한 번도 제대로 품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막이다. 오로지 코코만이 예외였다.
그런 코코마저 내 무관심 속에서 둥둥둥 급기야 북을 쳤다. 나의 눈물을 한심하게 보던 코코가 무심하게 몸을 돌렸다. 코코는 단 한순간도 나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다. 구걸은커녕 귀찮아한다. 그러면서도 늘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그냥 자신의 자리이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 것일지도. 우연히 그 곁에 내가 있을 뿐.
나는 또 내 멋대로 코코를 안고, 코코의 시쿰한 냄새에 얼굴을 박았다. 코코는 잠시 꿈틀거렸지만 이내 체념한 듯 가만히 있었다. 거참 성가신 인간! 그럼에도 코코는 고요했고 거부하지 않았고 맞대응하지 않았다. 그 덕에 나와 코코의 시간은 평화로웠다.
어느 날 코코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니 생이 시끄럽고 어수선한 건 니가 그렇게 만들어서야. 세상은 어쩌면 조용히 니 옆을 스쳐 지나고 싶어 했는데 니가 끌어 들인거지.
나는 그 말을 사실 잘 이해하지 못했다. 미친놈. 뭐래.
내게 안긴 채 코코가 둥둥둥 또 북을 쳤다. 그러자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도 둥둥둥 북을 쳤다. 자신의 몸으로. 하지만 코코처럼 위태로운 자세로 곡예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몸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그저 손을 살짝 대기만 해도 둥둥둥 북소리가 났다. 그녀의 몸은 암이 오래 점령한, 인간의 몸에서 한참 변질된 어떤 것이었다. 인간의 부드러운 피부는 애초에 사라진, 각질이 당당하게 내려앉은, 사물도 아니고 생명의 것도 아닌 묘한 그것은 미세하게 닿는 순간에도 둥둥둥, 진짜 북 같은 소리를 냈다.
“재밌어.” 그녀는 씨익 웃으며 툭하면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두들겨 댔다. “너도 해봐. 이거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경험 아니잖아.” 망설이는 내 손을 잡아끌어서 자신의 딱딱한 팔을, 배를, 다리를 치게 했다. 둥둥둥 정말 북소리가 나서 나는 깜짝 놀랐다. “더 해 줘 시원해. 니가 치니까 더 시원한 거 같네.”
그때는 생각했다. 저건 마녀의 몸에서 나는 소리라고. 그녀가 마녀라서 저런 북소리가 난다고. 그녀의 죽어가는 몸은 마녀 이상으로 그로테스크해서 나는 오랫동안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그녀의 마녀서사에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녀의 마녀신화 역시 늘 그렇듯 왜곡과 변질과 중상모략 같은 누군가의 죄와 누추함을 감추기 위한 사악한 의도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로인해 그녀는 날이 갈수록 내 생에서 마녀로 숙성되었고, 그녀가 마녀로 있는 한 내 생은 순결해졌다. 그녀가 죽고, 내 불행의 주된 원인이 제거되었으니 이제 나는 행복해 질 거란 기대가 배반되자, 나는 다시 분주해졌다. 그녀가 없는데 나는 왜 평화롭지 못할까. 생은 왜 전쟁을 그만두지 않는가. 전면전이 끝났는데 왜 여전히 시끄럽고 요란하고 사방에서 북소리가 둥둥 울려대는가.
마녀는 사라진 것이 아닌가?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마녀스러웠다. 그래서 내게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진정 그녀는 마녀였다고 나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그렇게 쉽게 한방에 쿨하게 사라지는 것은 마녀가 아니지. 내가 순진했군. 나는 그녀의 불행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의 생에서 이루지 못한 수많은 염원과 희망에 대해, 절망과 좌절, 고통과 상처에 대해.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그녀의 불멸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의 불멸에 혹시 내가 간택된 것인가. 나는 몸서리를 쳤다.
자신의 생이 실패로 강렬하게 전사하게 된 것, 그 운명을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에 대한 반항. 그렇지, 그게 마녀스러운 짓이지. 그녀의 벽돌도 아닌 대리석도 아닌, 플라스틱 같으나 아닌, 어쨌든 그 자체로 하나의 집이 되어 버린 이상한 몸. 그 몸 안에서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생이 남겨진 생명에게 옮겨않아 어떤 형태로든 계속 되기를 기획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자신의 몸에서 북을 치던 나는 가장 좋은 타겟이었을 것이다.
나와 그녀는 핏줄로 매어져 있고, 그녀는 어린 시절 나를 잠시 키웠으며, 우리는 얼굴도 성격도 닮았고, 욕망도 슬픔도 불안도 두려움도 때로는 기쁨의 색깔도 닮았었다. 그저 그녀의 휘익~!, 휘바람 소리에도 먼 길을 눈썹 휘달리며 달려오는 쉽디 쉬운 존재...
그 생각이 나를 습격한 이후, 자는 순간에도 어디선가 둥둥둥 북소리가 들렸다. 둥둥둥.. 맥박이 힘차게 뛰는 소리, 열심히 걸어 먹을 것을 구하는 소리, 온 마음을 다 바쳐 누군가를 찾고 부르고 손을 잡는 소리, 생을 이어가는 소리, 생을 견디는 소리, 생을 이고 지는 소리, 생을 껴안은 소리, 생을 품는 소리 혹은 생을 두들기고 두들겨서 끝내는 소리.
그녀는 생을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소유하려는 야망이 있었다. 자신의 생에서 자신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어야 하는 원칙. 그래서 생은 그녀로부터 철저히 달아났다. 그것을 그녀만 몰랐다. 그녀는 생을 철통같이 움켜쥐고자 늘 날이 선 눈으로 세상과 경쟁하며 세상을 자신의 생 속에 가두려 했다. 그래서 그녀의 몸은 서둘러 산화했다. 생명을 버리고 대신 사물이 혹은 돌이 혹은 집이 혹은 북이 되었다.
그녀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미친년처럼 웃었고, 죽어버려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몸에 칼을 들이댔다. 하지만 그녀는 제법 잘 버텼다. 나중에 생각했다. 그녀의 몸에서 북소리를 들은 후. 그녀의 몸은 북이 되어서 그녀의 모든 자해를 슬픔을 저항을, 반역의 몸짓들을 품어 주었던 걸까.
그녀는 떠났음에도 여전한 나는 내 생의 마녀서사에 그녀를 끌어들였다. 그건 내가 그 방법 외에는 다른 수습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것만은 우린 분명 닮았다.
그래서 ‘너’가 태어났다. 둥둥둥 코코가 다시 북 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마녀서사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너’의 탄생서사에 대해서는 알 것 같다고. 그렇게 알고 싶던 ‘너’의 정체에 대해 알 길이 생겼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그치?” 나는 코코를 돌아보았다.
코코는 대답하듯 북을 쳤다. 코코의 북소리가 붉은 깃발처럼 커져갔다. 둥둥둥! 둥둥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