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잘못된 선택

Day 1

by Sia

타라는 초등학교에서 졸업하고 중학교로 갓 넘어온 8명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내 수업에 온 걸 환영한다 애들아. 기존에 학생들도 처음엔 너희처럼 '애개, 우리만 이게 뭐야"하면서 불평했지만 나중엔 내 수업을 엄청 기대하고 좋아했단다. 너희들도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야."


자신의 수업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첫날부터 장담하는 타라가 참 부러웠다. 난 거의 10년 넘게 교단에 섰지만, 설 때마다 항상 의문이 든다. 내 수업을 통해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의문.


이 8명의 영어 학습자 아이들은 원래반에서 분리되어 아침 20분을 타라와 함께 공부한다. (원래반에 속한 아이들은 이 시간 동안 자습을 한다.) 아이들은 이미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도 있고 처음 보는 사이도 있었다. 학기 시작 첫날이라 타라는 아이들이 자기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적도록 종이를 주고 색연필로 예쁘게 꾸미라고 한다. 그리고 한 명씩 교실 앞으로 불러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한쪽 벽에 걸린 세계지도에 자신이 태어난 곳에 실 달린 압정을 박고 실의 끝에 학생의 사진과 이름을 박는다.


한국 중학생 아이들과 달리 자신의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는 학생들은 한 명도 없어서 참 신기했다. 모두 함박웃음을 지으며 따근 하게 나온 폴라로이드 사진을 부채질하기 바쁘다.


어느 순간 20분이 후딱 지나고 타라는 아이들을 다시 원반으로 돌려보낸다.


"1교시는 영어와 사회수업시간이에요. 초등학교 때는 담임교사 한 분과 거의 모든 수업을 들었던 아이들이라서 중학교 1학년에는 이렇게 통합수업이 많아요. 과학과 수학도 통합되어 있어요. 저는 영어 사회시간에 들어가서 보통 영어학습자 아이들의 학습을 도와줘요. 몇 주전에 미국으로 온 슈 엔유라는 중국 학생을 돕는 게 가장 큰 일이에요. 선생님은 자유롭게 수업 관찰하시거나 아이들 도와주셔도 돼요."


수업은 영어수업 먼저 시작됐다. 특수교육을 전공했다는 영어교사 스텔러는 매우 자상한 어머니 인상이다. 이 수업도 학기 첫날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활동이 주였다. 하지만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파트너를 인터뷰해서 짝의 소개를 대신 만들고 패들렛에 공유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각자 크롬북을 가지고 파트너를 찾아 이동했다. 나는 여름방학 캠프에서 만났던 브라질 소년 크리스티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의 관심은 영어학습자와 비 영어학습자가 수업시간에 하는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마침 크리스티안의 짝은 비 영어학습자 소녀였다.


처음 5초간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아마 서로에 대해 잘 모른 상태고 남학생과 여학생이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옛날 나의 한국 중학생 학생들의 모습이 떠 올랐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인간의 기본 정서는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놀랍다.


난 이 5초간의 적막을 참는 게 참 힘들었다. 선생의 본성이 발끈해서 "애들아, 너희 지금 뭐 해야 하는지 알아? 누가 먼저 할 거야?"라고 질문하고 싶은걸 참느라 엄청 힘들었다. 나의 역할은 아이들의 활동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라는 계속 되뇌었다.


마침 크리스티안이 짝꿍 여학생에게 "가장 좋아하는 거 3가지 뭐니?"라고 묻는다. 난 솔직히 여학생이 먼저 질문할 줄 알았다. 크리스티안의 주도적인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다시 난 왜 내가 그의 주도적인 모습에 놀랐는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나의 편견이 작용했던 것 같다. 영어학습 자니까 주도성이 비영 어학 습자보다 더 떨어질 거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티안은 여학생의 외모를 묘사하는데도 참 신사적으로 행동했다. 밤색 같은 머리에 녹은 다크 초콜릿 눈을 가졌다고 묘사했다. 우리말로 해석하니까 약간 어색한데, 크리스티안이 쓴 영어는 너무 멋있었다. 여학생도 크리스티안의 묘사에 엄지 척을 해주었다.


크리스티안 팀은 일이 일사천리로 끝났다.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것도 스텔러 선생님이 준 학습지에 있는 질문이 전부였다. 난 너무 허무해졌다. 내가 보고 싶었던 학생 상호작용이 너무 천편일률적이었던 것이다. 내 연구 주제를 바꾸어야 하나 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짝꿍 활동을 하고 있던 터키 소년 에네스가 자신의 짝꿍 비영 어학 습자 여학생이 그린 그림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엄청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짝꿍을 소개하는 항목 중에 짝꿍의 꿈의 애완동물 사진을 넣는 곳이 있었다. 크리스티안은 그냥 구글에 검색해서 끝냈는데 에네스는 자기 짝꿍에서 자신의 애완동물을 상세히 설명해 주면서 그대로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돼지, 염소, 토끼, 말 기타 동물들의 특징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동물이었다. 이것을 보면서 난 나의 골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알았다. 크리스티안이 아니라 에네스를 택했어야 했다.


다음번에는 나의 팀을 선택할 때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서 결정해야겠다. 성질 급한 나의 성격이 많이 바뀌어야만 할 것 같다.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인간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연구를 하면서 나의 편견에 놀라고 좋지 않은 성격이 고쳐진다면 정말 지금보다 더 좋은 인간이 될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낯선 미국 중학교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