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산책 Day 8
틈새만 파고드는 추위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은 겨울 롱코트 주머니 속에 있어도 춥다고 난리다.
달랑 겨울 바지 하나만 입은 다리는 무릎 아래까지 타고 올라오는 추위에 제 구실을 못하고 삐걱거린다. 겨울의 맛이 이 정도 강해야 겨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만, 눈물, 콧물, 안경에 서린 김까지 제대로 볼 수도 없다. 안경에 낀 김은 금세 얼어 서리가 되어 버렸다.
기숙사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플라자를 둘러보자고 어젯밤에 생각했는데, 이렇게 추운 날인 줄은 몰랐다. 결국 중간에 산책은 포기하고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이 이렇게 포근한 곳인 줄은 겨울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플라자에는 다양한 상점들이 있었지만, 그 아무도 피망을 팔지 않았다. 피망과 소고기가 주 재료인 음식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포기해야 하나. 결국엔 피망 없이 만들기로 했다.
다시 돌아오는 길.
차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국 도로는 건널목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반대편 도로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지그재그 여러 번 걸어가야 건널목을 볼 수 있다. 그냥 무단행단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왼쪽 오른쪽으로 쌩쌩 달려오는 차들은 유일한 보행자인 나를 비웃기만 하는 것 같다.
결국 당당하게 건너가기로 마음먹고 바쁘게 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하품에 몸이 나른해진다. 남극인가 북극을 탐험하던 길 잃은 탐험가들이 서로에게 잠들지 마라고 깨웠다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글로 읽을 때는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빙산의 일각의 체험을 하고 나니 더 이해가 되었다.
겨울다운 날씨에 산책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