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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일이 비자발적이 될 때

by Sia

일만 벌여놓고 마무리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들 중의 한 명이다. 간혹 마무리를 할 때도 있지만 못하겠다고 엄살 부리고 온갖 짜증을 다 내야만이 가능하다. 심리학에서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를 구분한다. 하지만 내 삶을 보면 이 두 가지 동기들이 뒤범벅이 되거나 순식간에 내적 동기가 외적 동기가 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여름방학 중 같은 과 박사인 베벌리의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앞으로 있을 나의 연구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총 3주간 진행되는 여름캠프인데 이젠 그만하고 싶다. 아직 일주일이나 더 남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힘들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1시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더 힘들다. 오늘처럼 역대 최고의 온도를 갱신하는 날은 더더욱 그렇다. 열기와 높은 습도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언제나 집에 도착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아예 사라진다. 며칠 전 사서 냉동실에 넣어둔 아이스크림 생각만 간절할 뿐이다. 얼음물 냉면도 아른거리고, 시원한 콩국수와 열무김치도 보인다. 설탕 한 두 스푼과 얼음 몇 조각 넣어 먹던 하얀 국수를 어렸을 때 왜 싫어했는지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기만 한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어야 했었는데 말이다.


저 멀리 중국집이 보인다. 일주일 전 삼겹살 요리를 테이크 아웃했던 곳이다. 한국식 상추를 미국 마트에서는 팔지 않기에 많이 아쉬운 미국 상추와 한인 마트에서 6개월 전에 사다 놓고 아껴먹던 된장과 함께 맛있게 싸 먹었다.


'들어가서 짜장면 먹을까? 아니야, 이 날씨에 짜장면은 아니지. 일본식 소면 먹고 싶다. 여기엔 왜 일본 가게가 없는 거야?'


중국집을 뒤로하고 시원한 마트에 들어가서 열에 혼미해진 나를 조금 돌보기로 결정했다. 마트 문이 열리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화기를 뿜는 나의 온몸을 에워싼다. 머리 주변에 맴돌던 안개들도 걷히면서 눈도 제대로 보인다. 맑게 개인 시야에 처음 들어오는 빨간 딸기 더미가 자기들을 사달라고 아우성이다.


'얼음이랑 딸기 갈아서 먹으면 엄청 시원하겠다. 비타민씨도 엄청 많이 먹겠는데. 물도 같이 넣을까? 아니야, 그냥 얼음만 넣어도 충분해. 설탕도 넣을 필요 없어.'


딸기를 사서 집으로 가는 길은 조금이나마 가벼워졌지만 가방은 더 무거워졌다. 여전히 내 두 다리는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난리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는 것에만 초집중한다.

'집에 도착하는 게 목표가 아니야. 한 걸음 떼는 것이 목표야.'


약 만개의 목표를 완성시키며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딸기를 꺼내 물에 게눈 감추듯 헹구고 바로 입에 집어넣는다. 시원하고 상큼한 딸기가 하루 종일 냉장고에 넣어둔 수박보다 더 시원하고 맛있다. 아침에 커피와 우유를 섞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라테'가 입 안에 남은 딸기 씨를 기분 좋게 없애준다.


내일도 봉사활동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정말 가기 싫다. 여기서 그만둔다면 베벌리에게 나의 연약한 의지력을 그대로 보여주게 되는데 그건 더더욱 싫다. 타인이 날 뭐라 생각할지 미리 짐작해서 행동하는 동기는 내적 동기인가 외적 동기인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이 이젠 자학 활동이 되어버린 것 같다. 좋은 동기와 마음으로 시작하는 그 첫 마음이 한결같이 그리고 끝까지 지속되는 봉사활동이 과연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 그런 봉사활동은 없을 것 같다.


내일도 가고 싶지는 않지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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