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를 글로 배웠어요.
자, 검도를 배우기로 결심한 당신. 박수를 보낸다. 좋은 선택이다. 검도는 내가 생각하기엔 좋은 운동이다. 그 이유는 조금 뒤에 말하기로 하고,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다. 검도를 왜 시작하는지, 굳이 검도를 배우려고 하는 이유가 뭔지.
내가 검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검도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은 “멋있어서요”였다. 사실, 나도 그렇다. 멋있어 보여서 검도를 시작했다. 당신은 어떤가?
간혹 어떤 사람들은 검도의 운동량이 다른 어떤 운동보다도 많다는 속설을 들어 체중 감량이나 근력 강화를 목적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맞다. 검도는 힘든 운동이다. 도복과 보호 장비의 무게가 3~5kg 정도이고, 죽도는 보통 500g 정도 되니 쉽게 말해 2L 생수통 두 병을 넣은 가방을 메고 500ml 생수병 하나를 두 손으로 든 채 한 시간 동안 뛰어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흘린 땀은 도복에 흡수되어 운동 끝날 무렵엔 등에 멘 가방에 1L 생수 한 병만큼 더 무거워진다. 하지만 굳이 당신이 힘든 운동을 찾아 검도에 입문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차피 세상엔 힘든 운동으로 넘쳐난다. 아마 당신도 나처럼 고통을 즐기는 피학적인 성향은 없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호신술(!)로 검도를 배운다는 사람도 본 적 있다. 으음…. 검도는 호신술로 사용하기엔 상당히 까다로운 무술이다. 우선 도구가 필요하고, 대부분은 보호 장비를 갖추고 있지 못하며, 무엇보다도 하다못해 주변에서 막대기라도 찾고 있노라면 상황이 종료되어 있기 일쑤다. 혹시 도구를 사용해서 상대를 때리게 되면 (내가 먼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맞은 상대의 상태에 따라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가중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검도를 배우면 첫째, 체력이 좋아지고, 둘째, 동체시력이 향상되며, 셋째, 흉기를 들고 나를 위협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요령이 생긴다. 적어도 배우지 않은 사람보다는 낫다. 그렇다고 해서 흉기로 맞거나 찔렸을 때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호신술로서 검도의 효용은 딱 그 정도다. 흉기를 든 상대와 마주쳤을 때 조금 덜 당황하는 정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흉기를 들고 백주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혹시나 마주쳤다 해서 맨손으로 맞상대하는 사람도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무술을 배우느니 이왕이면 정신 수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검도를 배운다는 사람도 보았다. 하지만 모든 운동은 정신 수양에 도움이 된다. 몸이 건강하면 이미 받았던 스트레스를 극복하기도 쉽고, 면역력이 높아져 스트레스에 저항하기도 쉬워진다. 달리기를 통해 황홀감을 맛보았다는 사람들도 많고(runner’s high), 등산이나 낚시 등 정신 건강을 고양하기로 유명한 고전적인 운동들도 많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선 몸도 건강해야 한다. 그러니 검도가 딱히 정신 수양을 대표하는 운동이라고 할 특별한 근거는 없는 셈이다.
이런저런 이유 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나면,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검도는 멋있어 보이는 운동이다. 그래서 나는 검도를 시작했다.
옆에서 보는 검도는, 무거운 보호 장비를 갖추고 죽도를 휘두르는 운동이기에 엄청나게 땀을 흘릴 수밖에 없는 힘든 운동이다. 하지만 때로는 힘든 수련이 끝나고 호면을 벗으며 땀을 닦는 것도 얼마든지 멋있을 수 있다.
또, 검도는 간합(間合-상대와의 간격)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운동이기에 육체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습관을 익힐 수 있다. 위기 상황이 닥치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럴 때 적절한 대응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리고, 모든 운동이 다 그렇지만 검도야말로 “자세”가 중요한 운동이다. 어느 정도냐면 시합 때 상대보다 먼저 공격을 성공시켰더라도 자세가 나쁘다면 득점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점이 다른 운동과 다르다. 태권도나 펜싱이나 사격은 자세까지 판정의 대상이 아니다. 즉, 표적을 맞히거나 공격을 성공시키기 전에 짝다리를 짚고 코를 후비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혹은 표적을 맞히거나 공격을 성공시킨 후에 짝다리를 짚고 코를 후비더라도 역시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표적을 맞히거나 공격을 성공시킨 점수는 인정되고, 승패가 결정된다. 깔끔하다. 그러나 검도는 다르다. 검도는 상대를 앞에 두고 불량한 자세를 취하면 심판의 지적을 받게 되며 상대에 대한 공격이 성공하더라도 그 뒤에 불량한 자세를 취하면 득점을 인정받지 못한다. 검도는 시합에 있어서 여느 다른 종목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재량을 심판이 갖고 있으며, 판정에 대한 시비를 가리는 일도 드물다. 비디오 판독조차 하지 않는다. 심판은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얼마나 바른 자세로, 타격 부위를, 적절한 강도로 쳤는지 판단하며, 결정적으로 치고 나서 존심(存心)이 있는지까지 확인한다. (존심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 이야기하자) 결국 검도는 흔히들 말하는 ‘간지나는’ 운동이며 ‘간지나게 해야 하는’ 무술이다. 멋있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심지어 맞을 때도 멋있게 맞아야지 피하거나 주춤거리다 맞으면 시합에서 지고 나서 주변으로부터 무시를 당한다. 깔끔하게 승부에서 진 것을 인정하고 반성을 통해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검도인의 자세다. 멋있다!
요약해보자.
1. 검도는 멋있는 운동이자 무술이다.
2. 검도를 (잘)하면 멋있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