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를 글로 배웠어요.
얼핏 보기에 검도는 돈 많이 드는 운동처럼 보이고(돈 많이 든다),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 보이는 무술이다(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기능과는 별개로 더 멋있어 보이기 위해 열 배, 스무 배 비싼 장비를 갖추는 사람도 있다. 장비 욕심 많은 골퍼가 퍼터와 드라이버, 아이언을 브랜드별로 사 모으듯, 검도를 하는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다 헤질 때까지 도복을 입거나 쪼개지지 않은 대나무 살을 모아 자기가 쓸 죽도를 조립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하며, 안빈낙도의 삶을 살아간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 고하와 관계가 없다. 그저 취향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우선 필요한 것부터 챙겨보자. 검도는 쉽게 말해서 칼싸움이다. 그러니 칼이 필요하다. 강철로 만든 진짜 칼은 보호 장비를 갖추더라도 사람을 상대로 연습하기엔 위험하다 (그냥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위험하다. 하지 말자). 그리고 경찰서에 가서 도검소지 허가증을 받아야 가지고 다닐 수 있다. 따라서 진검은 패스. 나중에, 10년 정도 후에나 생각해 보자. 지금은 필요 없다. 비싸기도 하고.
필요한 것은 대나무 칼과 그냥 나무 칼이다. 줄여서 죽도(竹刀), 목검(木劍)이라고 부른다. 왜 어떤 칼은 검(劍)이고 어떤 칼은 도(刀)라고 하느냐면, 검은 날이 양쪽에 있어서 찌르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것이고, 도는 날이 한쪽에 있어서 베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부른다고 들 한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청동검과 환두대도를 떠올려보자. 청동기 시대 때 만들어진 청동검은 약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베려다가 부딪히면 칼날이 상하고 휘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찌르는 용도로 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날이 양쪽에 있으니 벨 수도 있겠지만. 철기시대에 만들어진 환두대도는 손잡이 부분에 동그란 고리가 있는데 여기에 끈을 묶어 손목 또는 팔뚝에 감고(칼을 놓치더라도 손에서 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말을 타고 달리면서 휘두르기 좋게 했다고 한다. 위력도 강했을 것이고 단단해서 이가 빠져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날이 한 개 또는 두 개 있는 걸로 칼을 구분하는 것은 적어도 검도장에서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실제 죽도는 날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검도장에서 볼 수 있는 목검은 날이 (두 개가 아니라) 한 개이기 때문이다. 검도를 배우는 곳에서는 관용적으로 그렇게(죽도와 목검으로) 부르고 있으며, 이러한 검과 도의 구분을 검도와 달리 실제로 정확하게 하는 곳은 대표적으로 중국무술을 꼽을 수 있다. 즉 중국무술에서는 칼의 생김새와 용도에 따라 검법(劍法)과 도법(刀法)을 달리 배우고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검도의 검(劍)이라는 이름과 달리 죽도(竹刀)로 배우다니! 아이러니하다.
죽도는 성별과 나이에 따라 길이와 무게가 다르다. 36부터 39까지 죽도의 손잡이에 숫자가 쓰여 있는데 20세 이상의 성인을 기준으로 39(3척 9치-120cm 이내) 치수, 무게는 남자의 경우 510g 이상, 여자는 440g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죽도는 세로로 길게 잘린 대나무 네 조각을 모아 손잡이 부분의 가죽(병혁)에 넣고 맨 앞의 칼 끝부분의 가죽(선혁)에 끼워 가운데 부분의 가죽 끈(중혁)으로 묶은 형태인데, 선혁부터 병혁까지 끈으로 연결해 대나무 조각이 빠지지 않도록 팽팽하게 고정한 부분을 등줄이라 해서 칼등(칼날의 반대 부분)으로 삼는다. 그리고 손잡이(병혁) 쪽에서 손목을 방어하기 위한 손 방패(코등이)를 꽂아 넣으면 흔히 볼 수 있는 죽도의 형태가 된다.
죽도가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준비물이고 하니, 죽도에 대해 몇 가지 더 알아보자. 가장 먼저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죽도가 “소모품”이라는 것이다. 소모품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소모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주유에 신경 써야 하는 것처럼 검도를 하는 사람은 죽도를 소모한다. 죽도는 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대나무가 깨지고 갈라진다. 또 칼자루에 때가 타고 등줄은 느슨해지며 오랜 시간 수련을 게을리하면 안쪽과 칼자루에 곰팡이가 생기기 쉽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죽도 한 자루의 내구연한은 3개월을 넘기기 힘들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기준이다. 죽도를 사고 바로 첫 연습 때 깨지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힘 조절이 어려운 초보자나 젊은 남성의 경우, 연비가 좋지 않은 자동차를 마구 운전하면 (급출발, 급제동, 드리프트 등) 주유를 자주 해야 하는 것처럼, 죽도 역시 자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그리고 때로는 정속주행을 하더라도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주유해야 하듯, 검도 수련도 열심히 하는 만큼 죽도를 자주 교체해야 한다. 검도 실력도 운전처럼 자주 할수록 는다. 죽도값도 기름값만큼이나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많은 검도 수련생이 ‘죽도 리폼’을 한다. 즉, 죽도를 해체해 깨진 댓 살을 꺼내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것이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내구성이 좋은 플라스틱 소재의 ‘카본(carbon) 죽도’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 가격이 일반 죽도의 열 배 가까이 비싸고(그 대신 10배 이상 오래 쓸 수 있다), 타격감이 일반 죽도보다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다(직접 써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취향의 문제다). 그리고 카본 죽도 역시 영구적인 것은 아니기에 깨진 부분을 교체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검도용품점에서는 카본 죽도도 팔지만, 카본 죽도의 댓 살도 판다.
죽도의 칼자루는 보통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두께가 얇으며, 모양은 대개 원통형이다. 이것을 ‘동장형(胴張型)’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동장형 칼자루를 가진 죽도를 사용한다. 물론 취향의 문제이긴 한데 대부분의 죽도가 동장형으로 판매되기에 동장형 죽도가 대부분이라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취향의 문제이긴 한데 동장형 죽도 중에서 유난히 두꺼운 원통형 칼자루를 가진 것을 쓰는 사람도 있다. 악력이 좋고 손이 큰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이 경우 칼의 무게 중심이 뒤에 있게 되어 죽도가 좀 더 가볍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죽도의 칼자루로는 ‘동장형’ 외에 ‘고도형(古刀型)’도 있다. 고도, 즉 옛날 칼이라는 뜻이니 진검의 손잡이와 비슷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고도형을 사용하면 휘두를 때 손가락과 손목의 힘을 집중시켜 좀 더 강한 타격을 할 수 있다. 단점으로는 연속 공격이나 죽도의 방향 전환이 어려운 것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역시 이것도 취향이나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선택하면 될 것이다. 취향이나 스타일은 대개 6개월에서 1년 정도 검도를 수련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때까지는 그냥 평범한, 아주 평범한 일반 동장형 죽도를 쓰면 된다.
요약해보자.
1. 칼싸움을 배우는 것이니 칼이 필요하다. 진짜 칼은 필요 없고 대나무칼(죽도)을 준비하자.
2. 자신의 성별과 나이에 맞는 규격을 선택해야 한다.
3. 가능한 한 많은 죽도를 잡아보고 이거다 싶은 느낌이 오는 것으로 고르자.
4. 죽도는 재질이나 원산지(중국, 인도네시아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죽도가 마우스나 키보드 같은 소모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