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8 00:11
노트북이 들어있던 가방에서 물이 샜다. 텀블러 뚜껑이 열린 모양이다. 황급히 내용물을 꺼냈다. 햇볕에 수첩을 말렸다. 기기 겉면 물방울을 닦았다. 문제가 없길 바라면서. 몇 시간 뒤 열어보니 결국 맛이 갔다. 화면이 켜지질 않았다. 서비스 센터는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다. PC방에 들르기도 아쉬워 휴대폰으로 붙잡아 둔다. 빠르게 날아가는 생각을.
세 학교 교육학과가 교류하는 학술 행사에 다녀왔다. 오늘은 신촌. 기다랗게 뚫린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왜 우리 학교에는 건물 번호가 없을까? 이렇게 길 찾기가 수월한데. 이곳 건물은 네모 반듯한 모양이 세련되었다. 차갑다. 이공계 학생들이 좋아하겠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인 캠퍼스를 떠올렸다. 세련보단 위엄이다. 따뜻하다. 낭만이 있다. 서관 앞에 피는 목련처럼.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 학교에 현판도 건물 번호도 없는 이유를. 숫자는 편리하다. 맥락을 지우니 단순하다. 그 안에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없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산물이다. 우리 학교는 그런 사조에 어울리지 않는다.
다양한 이들과 연을 맺었다. 작년 행사에서 본 얼굴이 낯익었다. 국제고등학교로 나를 데려다줄 귀인과 같은 조였다. 내가 그리던, 우수한 학업 역량을 가진 특수교육 대상자를 목격했다. 아이디어가 범람했다. 보편적 학습 설계를 소개했다. 줄탁동시를 설명했다. 단번에 알아듣지 못하더라. 그나마 얼굴을 찌푸리고 열중하던 학우가 절반은 이해한 것 같다고, 그런데 현실에 실현 가능한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글쎄, 여기 증거가 있지 않은가. 이 말은 삼켰다. 더 세심하게 언어를 골라야겠다.
행사를 정리하는 시간,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교육 환경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학교 교(校)를 언급했다. 사귈 교(交)도 가르칠 교(敎)도 아닌 학교 교. 학교(校)는 둘로 나뉜다. 나무(木) 그리고 사귐(交). 사귐이야 인간 사이 상호작용이겠다.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더 나아가 학부모나 직원, 정책가, 사회 전체도 포함할 수 있고. 남은 부수는 나무다. 나무는 우리나라 고유 건축인 한옥을 짓는 재료다. 철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오늘날 건물과 달리 한옥은 나무로만 짜 맞추어진다. 별도 나사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옥은 고층 빌딩이 서로울 정도로 견고하다. 미묘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어쩌면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속 인간상은 나무 같은 이가 아닐까.
발언에 몰두하느라 자기소개를 잊었다. 꼭 내 이름을 지운 이 블로그 같다. 잠시 자책하다 다른 분들 소감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의견이었다.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조원들이 짚어주어 좋았다, 이게 바로 협업 아닐까. 개론 수업에 갇혀 있다가 더 열린 논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계가 참 밝다. 교육 학도로서 내 신념을 고민해 보겠다. 우리 학교는 첫 해 첫 학기에 전공을 배울 기회가 없다. 그래서 뜻깊었다. 동의한다.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한 만큼 불꽃이 자주 일었다. 학교별 풍토나 문화, 호칭, 전공 상황이 달랐다. 가정 배경, 학습 성향, 심지어 체력이 달랐다. 행사에 참석한 분들은 대체로 새내기였음에도 주관이 뚜렷하여 배울 점이 많았다. 다들 내로라하는 학교에 오신 이유가 있을 터. 그들에게 빛이 났다. 아직 정제되진 않았지만, 앞으로 쭉 숙고하시면 좋겠다. 원석은 닦을수록 빛나니까.
하굣길을 시작했다. 나만 뒤풀이에 가지 않는 듯했다. 빨리 귀가하여 폭풍이 휩쓸고 간 잔해를 줍고 싶었다. 생각을 쏟아낸 자료집을 준비 위원에게 넘겨주긴 했지만, 실제 자산은 머릿속에 있다. 나에게 말이다. 글은 이를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큼지막한 걸음으로 캠퍼스를 세로 질렀다. 시동을 걸기 전 옆 학우님께 물었다. 가방이 열려 있나요. 아니란다. 그때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하고 나를 부르는 그들 손에는 교통카드가 들려 있었다. 주인이 누구인지는 뻔하다. 오른쪽 바깥 주머니에 넣었는데 함께 있던 휴대폰을 꺼내면서 빠진 모양이다. 고맙다고 인사했다. 가방을 확인해 주던 학우님이 말했다. 열린 가방보다 더 중요하게 있었네요.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챙겨도 놓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주변에 도움을 구하지도 못하는 그런 사각지대. 사람들에게 딱 붙어 있어야겠다. 그들이 나를 챙김을 감사히 여겨야겠다. 교육학도, 인간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