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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Dec 21. 2022

동짓날 팥죽 이야기 / 동지의 유래

삶의 단상 


12월 22일 내일은 동짓날입니다.


동짓날 하면 어머니가 떠오르고 까마득한 기억 저편 아버지가 손수 지은 고향집이 생각납니다.

산골이라 유난히 눈이 많은 고향에서의 일들은 유년 시절 기억이 대부분 그렇듯이 아름답고 포근합니다.



살림은 옹색했고 먹을 것과 입을 것도 궁색했지만

그 시절이 그립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곳에 가족이 함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외갓집, 작은아버지, 그리고 오빠와 언니 동생들!


그 많은 사람들로 복작거리던 고향집에서의 일들은 가물가물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이 행복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동짓날의 추억도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입니다.


동짓날 때면 추수와 김장을 다 마치고, 지붕까지 새로 이은 다음이라 한가한 때였지요. 물론 이때도 아버지는 나무를 하느라 바쁘셨지만, 우리는 딱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오빠는 딱지치기를 하고 가끔 아버지가 만들어준 스케이트로 얼음을 지치고, 언니는 오재미 놀이와 뜨개질을 하거나 수를 놓느라 바쁘고 나는 언니와 오빠를 따라다니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따뜻한 아랫목에 동생들과 뒹굴뒹굴했던 것이 하루 일과였어요.

덕유산은 늘 하얀 눈으로 덮여있고 쇠로 된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어 추위에 언 손을 호호 불며 아랫목을 파고들거나 화롯불에 손을 쬐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무료할 때쯤 동지가 다가오고 집은 모처럼 활기가 넘칩니다.

엄마가 물에 담가놓은 찹쌀을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고, 새알심을 만드는 일은 우리의 즐거운 놀이였습니다. 엄마 언니는 번거롭다며 못 만들게 했지만 새알심을 만드는 재미있는 일을 안 할 리가 없었지요. 찹쌀가루를 떼어내 뭉쳐 두 손안에 넣고 굴리면 동그랗고 예쁜 모양의 새알심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찹쌀 반죽은 자꾸만 손에 달라붙어 구슬처럼 예쁜 모양의 새알심은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새알심을 만들어 놓고 엄마는 부엌으로 가 동지팥죽을 끓이기 시작합니다. 얼마 후 완성된 팥죽!


엄마는 큰 사기그릇에 팥죽 두 그릇을 담아 한 그릇은 부뚜막 위에 올려놓고, 또 한 그릇은 장독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런 다음 바가지에 팥죽을 담아 들고 집안 구석구석 다니며 팥죽을 생솔가지에 팥죽을 묻혀 뿌렸습니다.


물론 뿌리면서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입으로 무어라 정성껏 읊조리셨습니다.


가장 먼저 조왕신이 있는 부엌 네 귀퉁이에, 그다음 장독대와 헛간과 담벼락은 물론 싸리 대문에 뿌리고 마지막에 변소에 이르러 바가지에 얼마 남지 않은 팥죽은 솔가지가 아닌 바가지째 뿌렸습니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앞치마를 입은 엄마의 모습은 경건해 보였고, 어린 내게 엄마의 그 모습은 동짓날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동짓날 저녁 뜨거운 팥죽보다 모두 식은 팥죽을 선호했는데, 특히 장독대 위에 올려놓았던 팥죽을 서로 먹겠다고 싸울 정도였습니다. 장독대 위에 놓였던 팥죽은 추위로 인해 표면에 두꺼운 거죽이 생겼는데 그 거죽이 정말 맛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 팥죽에 새알심이 더 많이 들었나 찾아 헤아려보던 일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버지는 그런 우리를 보고 말씀하셨지요.


"이제 동지 팥죽을 먹었으니 한 살씩 더 먹었다."


어린 나는 한 살 더 먹은 것이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냥 좋았었네요.


고향을 떠난 뒤 더 이상 우리 집에서 팥죽을 끓이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도시에서 생활이 팍팍했다는 말일 것입니다.


동지를 맞아 새삼스럽게 어린 시절 동짓날이 생각나네요.


아래 사진은 몇 년 전 제가 다니는 사찰에서 동지 팥죽을 끓이는 모습입니다.


팥죽을 끓이는 순서와 과정을 살펴볼까요.

먼저 새알심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물에 깨끗이 씻은 팥을 물에 담가 불린 다음 푹 삶습니다. 그렇게 푹 삶은 팥을 으깨어 체에 거릅니다.



팥죽을 끓이기 위해 삶은 팥을 으깨어 체에 내린 앙금입니다. 체에 내린 앙금이 가라앉아 단단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커다란 가마솥에 체에 곱게 내린 팥물을 넣고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눋지 않게 젓고 있습니다.

새알심을 넣고 젓고 또 젓고, 팔이 아프도록 저어야 합니다.

아래 사진은 이렇게 정성스럽게 끓인 팥죽이 식은 모습입니다. 살얼음이 동동 뜬 시원한 동치미와 함께 먹는 팥죽 참으로 별미입니다.


동지(冬至)


동지는 24 절기 가운데 22 번째로 대설과 소한 중간에 있습니다.


동지는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24 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 하여 구분한 것으로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합니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입니다. 올해는 내일이 음력 11월 29일이므로 노동지이지요.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중국의《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중국의 주(周) 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중국의 책력과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겨 속절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동지를 신년으로 생각하는 고대의 유풍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작은설'이라 하여 설 다음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지요. 그런 까닭에 옛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전하기도 합니다.


동짓날에는 ‘동지 팥죽’이라 하여 붉은팥으로 죽을 쑤어 먹는 풍속이 있습니다. 특히 동지팥죽에는 찹쌀가루를 새 알 크기만 하게 만든 ‘새알심’을 넣습니다. 새알심을 지방에 따라서는 옹심이ㆍ오그랭이ㆍ옹시래미라고도 부릅니다.


이렇게 만든 팥죽은 정성껏 그릇에 담아 사당에 올리고, 각 방은 물론 장독·부엌·마루·우물·헛간·대문·뒷간 등 집안 곳곳의 여러 신들에게도 올렸습니다. 또한 팥죽을 큰 바가지에 담아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대문이나 담벼락까지도 흩뿌렸습니다.


붉은색의 팥은 양을 상징하는 색으로 음습한 귀신을 쫓아내는 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팥죽을 쑤어 흩뿌리거나 집안 곳곳에 놓아 나쁜 잡귀의 접근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짓날이라고 항상 팥죽을 쑤는 것은 아닙니다. 음력으로 11월의 초에 드는 동지를 ‘애동지’라고 하는데, 이때는 팥죽을 쑤면 어린아이들이 병들거나 죽는다 하여 대신 팥떡을 해 먹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 시대 천문을 관장하던 관상감에서는 동짓날에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라에서는 달력에 옥새를 찍어 관리들에게 달력을 선물하였으며, 이조에서는 표지가 파란 달력을 지방 수령들에게 선사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동짓날에는 ‘동지 부적’이라고 하여 집 안으로 들어오는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뱀을 뜻하는 한자 ‘蛇’(사)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 날씨가 따뜻하면 다음 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하고, 대신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올해는 날씨가 춥고 눈도 많이 와 내년에는 풍년이 들 거 같습니다.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는 풍속 유래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는 풍속은 중국의 풍습에서 전래되었다고 합니다. 공공씨(共工氏)의 자식이 동짓날에 죽어 역귀(疫鬼)가 되었다고 합니다. 동짓날 그가 생전에 싫어하던 붉은팥으로 죽을 쑤어 역귀를 쫓았던 중국의 풍습이 있었다네요. 그 정확한 전래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목은 집』·『익재 집』 등에 동짓날 팥죽을 먹었다는 시가 있는 것을 보면 고려 시대에는 이미 절기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조선시대의 풍속을 기록한『동국세시기』나 『열양세시기』에도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군학회등』·『규합총서』·『부인필지』 등의 문헌에는 구체적인 조리방법까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동지팥죽(冬至─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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