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야 Jan 04. 2023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삶의 단상 


지척에 언니가 살고 있다.


새 아파트로 이사한 후 아는 이웃이 없어 심심하다고 했지만 언니의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 탓에 이웃과 아주 친하게 잘 지낸다.


두 명의 조카와 초등학교 6학년인 수아와, 근처에 사는 남동생까지 모이면 대가족이 된다.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언니네 집에 모여 한 달에 한두 번은 식사를 하게 된다. 


지난주는 만두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만두의 양은 엄청난데, 각각의 집에 나누고, 물론 복도식 아파트 옆에 사는 세 집까지 꼼꼼히 챙긴다.


언니가 사는 아파트에는 유독 독거노인이 많다. 70의 언니도 고령이고 독거지만...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이 어항에 관한 것이다.


언니가 이사할 당시에 옆집엔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젊은 60대 초반의 부부가 살았었다. 아파트 복도에 다육이 화분을 어찌나 많이 늘어놓았는지 처음 이 집에 와 보고 깜짝 놀랐다. 사람이 다니지 못할 정도로 많은 다육이들이 언니네 집 현관문 앞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언니는 며칟날 이사를 오니까 치워달라는 부탁에 언니네 집 현관문 앞에 있던 다육이는 치워졌지만 여전히 많은 다육이들이 3단 진열대 위에 남아있었다.


택배 아저씨들은 그 다육이 화분 때문에 배송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곤혹스러워했고, 근처 상가며 마트에서는 배달을 꺼릴 정도였다.


그런데 며칠 전 언니네 집을 방문했을 때 난 순간 집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복도에 늘어선 다육이가 깨끗이 치워졌기 때문이었다. 층수를 다시 확인하고서야 212호 아저씨가 다육이를 치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언니, 옆집 화분 다 치웠네?"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내가 언니에게 물었더니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연은 이러했다.


언니의 옆집 212호 아주머니가 작년에 갑작스럽게 암으로 입원을 하셨고, 몇 달 병원 신세를 졌는데 안타깝게도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예순 초반의 아직 젊은(?) 아주머니가....


아주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저씨가 변한 것이다. 그 많던 다육이를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버렸다.


우리는 복도가 깨끗해졌을 뿐만 아니라 통행에 불편이 사라져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TV 옆에 어항이 있었다.


"어항은 언제 샀어?"


"안 샀어!, 옆집 아저씨가 반강제로 갖다 놓고 갔어."


오잉,


옆집 그러니까 212호 아저씨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치운다는 것이 찜찜하다.

갑자기 어지러운 상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왜?"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언니와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하듯

어항 속 작은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212호 아저씨가 걱정되어 언니와 통화를 할 때마다 안부를 묻게 된다.


부디 이별의 상흔을 잘 이겨내시기를.....







작가의 이전글 1월 4일 탄생화 히아신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