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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Aug 04. 2022

함박눈이 내린 새벽 (1)

단편소설 / 


칼날 같은 바람이 지붕을 넘고 있다.

방안이 왜 이리 추울까, 연탄불이 또 꺼졌나? 두꺼운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누웠던 김 할머니는 추위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요 밑에 손을 넣었다. 싸늘한 냉기가 손끝을 따라 온몸에 퍼지자 몸은 더욱더 오돌오돌 떨렸다. 올여름 내내 날씨가 그렇게 푹푹 쪄 사람을 못살게 굴더니 겨울도 여름 못지않게 추운 날씨의 연속이었다.


기상대 예보에 의하면 올겨울은 다른 해보다 따뜻할 것이며 눈이 많아 포근한 겨울이 될 것이라던 곱상한 아나운서의 말은 빈말이 된 셈이었다. 겨우 1월 초순인데 눈다운 눈은 서너 번 밖에 오지 않았고, 기온은 연일 영하 7, 8도를 오르내려 산동네에 사는 김 할머니는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웅크리고 살 수밖에 없었다.


김 할머니는 아직 미약하나마 온기가 남아있는 이불속에 다시 누우며 생각했다. ‘번개탄을 피워 연탄을 살릴까? 아냐, 귀찮은데 그냥 자자.’ 바람 소리가 마당의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함께 단조로운 겨울밤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 그러나 너무 춥다. 탄을 다시 피울까 말까 고민을 거듭하던 김 할머니는 만사가 귀찮아 눈을 감았다.


따르릉따르릉.


요란한 벨 소리에 김 할머니는 얼핏 들었던 잠에서 깨어났다. 안방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밤하늘의 정적을 잘게 자르며 요란스럽게 흔들었다.


“여보세요! 응 영미구나, 왜?”


마루 건너 미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있는 안방에서 김 할머니의 방까지는 코 고는 소리도 들릴 만큼 지척이었다. 마흔이 넘은 안집 아들 경석은 이상하게도 밤늦게 전화를 한다. 그 전화벨 소리는 TV에서 하루 방송이 끝났다는 애국가 4절이 모두 끝난 뒤에도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든 김 할머니를 소환하기 일쑤였다.


“영미야 그게 아냐, 내가 왜 네 마음을 모르겠니, 있지. 그때 내가 네게 한 말을 그런 뜻이 아니야. 야, 이거 환장하겠네, 그게 아니라니까!”


안집 아들, 그러니까 경석의 언성이 높아졌다.


김 할머니는 몸을 뒤척이며 모로 누웠다. 마흔이 넘도록 변변한 여자 친구 하나 없던 경석이가 몇 달 전 친구로부터 동갑인 여자를 소개받았다. 그 여자와 일이 잘 진행되어 올봄 결혼식을 올릴 거라고 좋아하더니……. 무슨 일이 잘 안 되나? 김 할머니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다시 몸을 뒤척였다.


“그게 아니라니까!”


경석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콜록콜록 경석 어머니인 박 할머니의 힘겨운 기침 소리가 그 틈을 비집고 들려온다.


저 할머니도 큰일이야, 기침이 저렇게 심해도 병원에 갈 형편이 못되니…. 자식,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어. 다 저만 잘났고 부모 알기를 똥 묻은 막대기 취급도 하지 않는데.


김 할머니는 이번에는 자세를 고쳐 바로 누웠다. 그런데 무슨 놈의 날씨가 이렇게 춥다냐, 하기야 옛날에 비하면 이따위 추위야 추운 것도 아니지, 암, 아니고 말고, 소싯적에 겨울이면 강물이 꽁꽁 얼어붙고, 방 안에 있는 걸레며 물이 꽝꽝 얼었었지, 그래도 그때는 남편이 새벽에 일어나 시어머니 몰래 군불을 때 주어 훈훈했는데……. 지금은 아무리 춥다고 하지만, 그때만큼은 안 춥지. 어디 강물이 꽁꽁 어는 걸 봤어.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기를 하나, 그런데 오늘은 왜 이리 떨릴까. 죽을 때가 가까이 온 것은 아닐까? 하기야 나이 여든을 넘겼으니 이제 죽는다고 해도 아쉬울 것도 없는 일이다.


불을 피울까? 아무래도 오늘 밤은 냉방에서 그냥 자기는 힘들 것 같았다.

김 할머니는 두꺼운 이불을 밀치며 일어나 앉았다.


“그러니깐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만나서 이야기하자, 응?”


안집 아들의 전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몇 시나 되었을까? 김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지방 위 모서리를 더듬거려 형광등 스위치를 올렸다. 부신 눈을 찡그리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2시 20분. 한밤중이다. 어제 12시쯤 연탄불을 갈았을 때 분명히 밑불이 많이 있었는데 연탄불이 왜 꺼졌을까? 탄을 아낀다고 구멍을 너무 꽉 막았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두툼한 털조끼를 입고 방을 나섰다. 마루의 냉기가 맨발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무래도 불을 지피려면 뭐라도 신어야 할 것 같아 버선을 찾아 신고 밖으로 나섰다. (제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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