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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Aug 04. 2022

함박눈이 내린 새벽(2)

단편소설 / 

겨울밤을 가른 찬바람은 매서운 기세로 쌩쌩 분다. 부엌으로 들어가 솥뚜껑을 만져보니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 김 할머니는 혼자 들기에 버거운 물 솥을 들어냈다. 두꺼비집을 열어보니 연탄은 어제저녁 갈았을 때 그대로 조금도 타지 않은 채 까맣게 죽어 있다. 번개탄을 연탄집게에 끼어들고 성냥을 찾아 불을 붙였다. 피식거리면서 번개탄을 감싼 비닐이 타오른다. 동시에 연기와 함께 작은 불꽃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날렸다. 좁은 부엌은 곧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찼다. 김 할머니는 불이 붙은 번개탄을 아궁이에 집어넣으며 연신 기침을 하였다.


지겹기도 하지. 꼭 추운 날만 골라서 불이 꺼진다니까. 굴뚝이 막힌 것은 아닐까? 날 좋을 때 손을 봐 두었으면 좀 좋아. 김 할머니는 주인집을 원망하면서 타다만 연탄을 번개탄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두꺼비집을 덮었다. 솥에 있는 미지근한 물을 한 바가지 퍼 마당에 있는 수돗가로 나와 손에 묻은 검댕을 씻었다. 수돗가는 밤새 흘러내린 수돗물이 꽁꽁 얼어붙었다.


김 할머니는 쭈그리고 앉아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옛날 그대로야.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건만. 어쩌면 저렇게 초롱초롱한 빛을 낼까? 나는 이렇게 늙어 몸을 가누기도 힘들 지경인데.


북두칠성에 눈이 멎는다.


칠성아! 그 이름을 속으로 부르면서 김 할머니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김 할머니가 아들 칠성이를 잃은 것이 벌써 30년이 넘었지만, 그녀는 한 시도 아들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김 할머니가 열여섯에 손이 귀한 집에 시집을 와 첫째로 얻은 아이가 바로 칠성이, 아니 태성이었다. 그 아이 등에 선명하게 있던 일곱 개의 점이 흡사 북두칠성을 닮아, 칠성 님이 점지해준 아들로 굳게 믿어 어릴 적 이름을 칠성이로 불렀다. 시아버님은 큰 인물이 될 거라며 클 태(太), 별 성(星)인 태성(太星)이란 이름을 지어주셨다.


그 아이가 태어난 것이 섣달 열 하룻날 초저녁이었으니 오늘 같은 날이었다. 그날 밤도 몹시 추었고, 초저녁부터 눈발이 하나둘 날리기 시작했었다. 아직 산일이 한 달이나 남아있었지만, 저녁을 먹고 결혼을 앞둔 시누이 횃댓보에 수를 놓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였다. 심한 외풍으로 방안의 호롱불이 깜박거렸다. 문풍지는 낮은 피리 소리로 달달 떨었고 점점 더 심하게 배가 아팠다. 어찌나 통증이 심했던지 진땀이 이마에 성글 걸렸다. 건넌방에서 시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외딴 산골 동네를 가볍게 흔들었고, 싸락 싸락 눈이 내렸다.


삼경이 좀 지났을 때 마실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머리와 온몸에 눈을 흠뻑 뒤집어쓴 남편은 배를 부둥켜안고 끙끙대는 아내인 김 할머니(그때는 새색시였다)를 보고 깜짝 놀라 머리의 눈을 털 생각도 않고 쏜살같이 방으로 들어와 김 할머니를 붙들고 말했다.


“아니, 임자 왜 그러는 거요. 응?”


김 할머니는 그때 남편의 놀란 표정을 생각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얼굴 가득히 떠올렸다. 그날 밤 시부모님과 남편의 정성스러운 간호를 받으며 등에 일곱 개의 선명한 푸른 별을 가진 아들 칠성이가 태어났다. 산통도 별로 없었다. 남들이 그토록 심하다는 입덧 한번 하지 않았다. 태몽 또한 남달랐다. 시아버님이 대신 꾼 태몽은 수염이 허연 노스님이 일곱 개의 영롱한 보석을 던져주었고 시아버님이 저고리로 조심스럽게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남들보다 한 달이나 먼저 태어난 그 아이는 영특했고 생긴 것도 번듯했다. 진주 강 씨 은열공파 문중의 32대손으로 태어난 자랑스러운 아들, 그 뒤로 딸 태희가 태어나 김 할머니는 그렇게 남매를 두었다.


김 할머니는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은 채 반짝이는 북두칠성을 마치 아들을 보듯 눈물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이 어두워져서 그런지 밤하늘의 별들마저 깜빡깜빡 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동네에 살고 있어 날씨가 흐린 날만 빼곤 항상 또렷한 별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몇 해 전에 언덕을 오르내리기 불편하여 산 아래 동네로 이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사를 한 집은 기름보일러였고, 방도 따뜻했지만,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한 달을 채 못 넘기고 다시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얘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차구나. 이제 에미가 네 곁으로 갈 때가 다 되었는지 자꾸만 정신이 가물거린다. 하기야 금쪽같은 너를 잃고 죄 많은 내가 너무 오래 살았지 뭐냐.”


김 할머니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일어서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연탄불이 붙어 두꺼비집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김 할머니는 방안이 조금 따뜻해지고 난 뒤에 연탄을 갈려고 공기구멍을 활짝 열어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너, 자꾸 이럴래. 싫으면 관둬. 관두면 되잖아!”


경석이는 한밤중이라는 것도 잊고 있는 듯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린다.


“얘, 지금 몇 신데 왜 그렇게 악을 쓰냐?


박 할머니가 참다못해 아들을 나무랐다.


“어머니는 자식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가고 있는데 지금 잠이 와요? 씨팔……. 가르치기를 제대로 가르쳤나, 돈이 많기를 하나, 그러니 어떤 골 빈 년이 나 같은 놈한테 시집을 오겠냔 말이에요. 어머니 같으면 그러겠어요? 변변한 직장도 없는 막일 일꾼에게 시집을 오겠느냐고요?”


“남들은 너만 못해도 잘만 가더라. 그래도 너는 하꼬방이긴 하지만 집은 있잖아. 저 못나서 장가 못 간 것은 생각 안 하고, 그래 이 자식아! 어떤 부모가 제 자식 안 가르치고 싶어서 안 가르쳤겠니? 원수 놈의 돈이 없어서 못 가르쳤지. 아이고 기가 막혀서. 내 그 소리 할 줄 알았지. 지 애비 일찍 여의고 알탕 갈 탕해서 저만치라고 힘들게 키워놓으니 뭐라고?”


박 할머니 훌쩍거리며 말했다.


“시끄러워요. 이젠 정말 지겹다 지겨워. 왜 알탕 갈 탕해서 가르친 형네 집에 가서 살지. 나 같이 싸가지없는 놈하고 살면서 내 속을 뒤집어요?”


“어이구 저 못된 자식.”


김 할머니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며 혀를 끌끌 찼다. 자식이란 게 다 애물단지여. 암 애물단지고 말고. 그래도 박 할머니는 어쩌다 먹을 것이 생기면 경석이 준다고 먹지 않고 챙겨두곤 했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주지 못해 한인데 자식 놈들은 부모를 귀찮은 물건 보듯 하여 서운하게 하니, 원.


“그래도 할머니는 상팔자지요. 어찌 보면 외롭다 싶지만 그래도 할머니 아들이 효자지요. 어떤 자식이 아무리 잘 살아도 부모 용돈 그렇게 넉넉하게 준답디까?”


마실 올 때마다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김 할머니를 부러워하던 박 할머니가 떠올랐다.


“하긴 그렇네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김 할머니는 맞장구를 쳤지만, 우리 아들 칠성이만 살아있다면, 나를 이렇게 살게 놔두었나, 암, 절대로 내 아들은 나를 이런 산동네에 두지 않았을 거야. 만약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훌륭한 중년 신사가 되어 있을 텐데……. 김 할머니는 이런 생각들로 간신히 마음을 다독이며 ‘칠성아, 내 아들 칠성아!’를 목으로 삼켰다. 동구 밖 팽나무 밑에서 면에 다니던 아버지를 기다리며 두 오누이가 촐랑거리고 뛰어놀던 모습이 어제인 듯 눈에 선했다.


김 할머니는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앉았다. 가슴속에 불이 나 도저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맡에 있는 주전자에서 컵 가득히 물을 따라 꿀꺽꿀꺽 마셨다. 차가운 물이 뱃속에 들어가니 좀 살 것 같았다. 안방은 잠잠하다. 연탄불을 갈기 위해 조심스럽게 미닫이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연탄을 불이 잘 붙었다.


낡은 지붕에 덧씌운 비닐 장판 위로 바람이 팔랑거리며 지나간다. 별들은 아직도 추운 밤하늘을 지키며 총총히 반짝인다. 김 할머니는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었다. 왜 이렇게 오줌은 자주 마려울까. 나이 들고 날이 추운 탓이겠지.


방으로 들어온 김 할머니는 텔레비전 밑에 넣어둔 손때 묻은 앨범을 꺼냈다. 생전의 아들 모습이 그 속에 담겨있다. 앨범을 펼치자 흑색의 돌사진. 백일사진. 발가벗은 아들이 고추를 내놓고 하얗게 웃고 있다. 건장한 모습의 남편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하고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 그 옆에 수줍은 새색시의 모습을 한 젊은 날의 김 할머니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서 있다. 보고 또 보아도 가슴 뿌듯한 아들은 커서도 공부를 잘했다. 물론 지나간 날들은 아름답고 그립다지만 칠성이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잃자, 충격이 컸으련만 등록금에 보탠다며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생군사교육단(ROTC) 학비 걱정을 덜어준 아들이었다.


교복 차림의 사진들을 넘기자 학군단 정장 차림의 늠름한 아들의 모습이 김 할머니의 뇌리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니 앨범 속에서 선연히 살아 웃고 있다. 김 할머니는 노쇠하여 핏기 없고 주름살 투성이인 오른손으로 앨범 속 아들을 쓰다듬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장교로 임관하여 꼬박꼬박 월급을 보내주어 여동생 태희의 학비를 대었다. 그런 금쪽같은 아들을 잃은 것은 순전히 딸 태희 때문이었다. 아들은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고 태희가 아직 졸업 전이라 군대에 남아있었다. 그때 이미 결혼을 약속한 여자도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불거진 태희의 결혼문제로 월남에 지원한 것이다.


“제 오빠를 잡아먹은 원수 같은 년…….”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김 할머니의 얼굴은 금세 굳어진다.


태희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지금의 사위와 연애를 한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인 셈이었다. 물론 태희의 그때 나이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으나, 문제는 상대가 인천에서 손꼽히는 부잣집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위 쪽 집안에서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원했다. 만약 그에 응하지 않으면 다른 혼처를 찾겠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당사자인 며느리는 마음에 들지만 사는 형편과 편모슬하에서 오빠에 의지해 살아가는 태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시어미가 태희가 알아서 물러나 주기를 바라고 한 말이었다. 제 실속만 차린 태희는 몇 날을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김 할머니는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직 제 오빠도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저를 가르치고 있는데, 정말 염치도 없이 어쩌면 저렇게 철이 없을까 싶었다. 김 할머니는 속으로 가슴만 끓이고 있었다. 그때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제 걱정은 마세요. 동생이 먼저 혼례 올리는 건 아니라지만 여동생이니 별문제가 되겠어요? 제가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우리 형편에 태희가 김 서방 같은 사람에게 시집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번 일이 잘못되면 태희는 평생 후회하며 살 텐데, 저는 절대 태희를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어머니 저만 믿고 결혼시켜요. 태희 혼수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련할 테니까요.”


아들의 그 말에 김 할머니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혼수가 한두 푼 드는 일도 아닌데, 어떻게 네가 그 큰돈을….”


그 얘기가 있고 난 뒤, 한 달이 채 못 되어 아들이 파월장병으로 월남으로 떠났다. 김 할머니는 그 사실을 월남에서 온 아들의 편지를 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님 전상서


어머니 미처 인사 말씀도 여쭙지 못하고 떠나온 것을 용서하십시오. 이곳은 상하(常夏)의 나라 월남입니다.


어머님이 아시면 못 가게 할 것이 뻔하여 그냥 떠나왔습니다. 저는 장교이니까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계십시오. 이곳에서 1년만 근무하면 태희 혼수비용은 물론 우리 집 형편도 많이 나아질 것입니다.


어머님, 모쪼록 만나는 그날까지 몸 건강히 계십시오.


월남 사이공에서


어머님의 자랑스러운 아들 태성 올림


그 편지를 받은 김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어떤 아들인데 강 씨 문중의 독자로 집안을 이어갈 귀한 자손이 아닌가, 그런데 다른 집으로 출가하면 그만인 여동생을 위해 전쟁 중인 그 무더운 나라에 지원하다니…….


태희의 대학 진학을 앞두었을 때도 김 할머니는 반대했다. 그런데 아들은 달랐다.


“어머니, 태희 학교 보내주세요. 학비는 제가 댈게요. 태희 대학에 안 보내면 저도 학교 못 다닙니다. 군대에 지원해서 가버릴 겁니다.”


당시는 독자는 군대도 면제되던 그런 때였다. 아들의 간청으로 태희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때 정말 잘못했어. 태희를 대학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김 할머니는 두고두고 그때 일을 후회했지만, 아들은 이미 멀고 먼 월남 땅에 가 있었다. 아들이 월남에 간 뒤로 김 할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정화수를 떠놓고 아들의 무사 귀국을 빌고 또 빌었다. 아들이 월남으로 떠난 지 3개월이 채 못 되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위 강태성 군 복무 중 전사」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아들은 하얀 천에 싸인 상자에 한 줌의 재가 되어 김 할머니 곁으로 돌아와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김 할머니의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 시도 때도 없이 아들은 떠올랐고 김 할머니의 가슴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그년! 태희 그년이 전생에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길래 내 자식이 되어 금쪽같은 오라비를 잡아먹었느냐며 악을 쓰며 통곡하던 많은 날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거의 실성한 김 할머니는 원호대상자가 되었고, 거액의 보상금도 지급되었다. 오빠의 죽음과 상관없이 태희는 그 이듬해 봄 결혼을 하였다. 김 할머니는 태희의 결혼식장에 가지 않았다.


“어미가 못나서 자식을 죽인 거나 진배없지. 진작에 내가 장사라도 할걸. 자식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다가 결국에는 아들을 죽게 했어….”


아들이 죽은 뒤 한 달을 김 할머니는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전사한 까닭에 소령으로 승진하였고 태극 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유족인 김 할머니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되었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 더 큰 죄를 짓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마음에 평정심을 가졌을 때, 김 할머니는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고 아들을 따라 죽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 할머니는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하여 조상들의 묘를 새롭게 정비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훌쩍 고향을 떠났다. 창신동 꼭대기 낙산, 봉천동 등 판잣집을 전전하며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며 먹고살았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통장에 넣었다. 돈은 차곡차곡 김 할머니 통장에 쌓였고, 아무리 아파도 병원은 고사하고 약 한 봉지 사 먹는 법이 없었다. 보다 못한 사람들은 말했다.


“아니, 할머니 그렇게 악착같이 돈 모아서 뭐 하려고 그러세요?”


그럴 때마다 김 할머니는 ‘나 같은 죄인이 병원엘 가서 뭘 해요.’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쓸쓸히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이제 연로하여 남의 집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김 할머니가 비원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원서동으로 이사를 온 것이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딸 태희와 연락이 끊긴 것도 오래전이다. 김 할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한 요기를 하고 비탈길을 내려가 현대건설 뒷길부터 샅샅이 살펴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박스나 빈 병들을 주워 고물상에 내다 팔았다. 그렇게 판 돈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아직 움직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추운 날은 추워서, 더운 날은 더워 힘이 들었지만, 아들을 죽인 죄인이 강 씨 문중의 대를 끊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일이라 믿었다. 아들이 살아있다면 예순 살이 되었을 것이다.


김 할머니는 미지근해진 방 안에 앉아 평소 잘 피지 않던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어느새 눈동자가 촉촉해진다. 윗목에는 어제 낮에 동네 교회에서 가져다 놓은 쌀과 밀가루 포대가 덩그렇게 놓여있다.


“사람의 목숨이란 참으로 모질고 질긴 것이여. 안 질기고말고.”


안집 박 할머니는 다달이 김 할머니 통장으로 입금되는 유족연금을 부러워했다.


“할머니는 복도 많아요. 나 같은 년은 복이 없으니 자식을 다섯이나 두었지만, 용돈 몇만 원 주는 놈 하나 없는데…. 자식 놈들 힘들게 키워놓으니 다 저 잘나서 잘되고 저절로 큰 줄 알지. 제 어머니 알기를 제 발샅에 때만큼도 여기지 않으니, 근데 할머니는 왜 그렇게 청승을 떨어요? 나이가 팔십도 넘은 노인이, 솔직히 말해서 할머니나 나나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돈은 벌어서 뭐 하려고 그렇게 애를 써요? 죽으면 줄 자식도 없으면서…. 나도 자식새끼들만 없으면 할머니 따라서 고물이라도 주워 용돈이라도 마음 놓고 쓸 텐데, 자식들 얼굴 때문에 그 짓도 할 수가 없으니….”


“우두커니 집에 앉아있으면 아픈 데만 생겨요.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아픈 것도 잃어버리죠.”


김 할머니는 겉으로 태연한 듯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자식이 죽어서 나오는 연금을 어떻게 함부로 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통장의 돈이 점점 쌓이고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요즘 부쩍 그 돈을 어디에 써야 가장 값진 것일까 골똘하게 생각하는 날이 많았다. 태성이 이름으로 그 아이가 나온 대학교에 기부할까? 아니면 절에 시주할까? 그도 아니면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기부해야 하나?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어쨌든 천금 같은 아들의 목숨과 바꾼 피 같은 돈이 아닌가. 태희 년이 알았으면 벌써 빼앗아 갔을지도 모른다. (3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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