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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Mar 03. 2023

자운영 나물의 추억 / 자운영 전설과 꽃말

가야의 꽃이야기 


자운영은 추억이 많은 식물이다.

고향에서 이 자운영 때문에 겪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자운영이 엄청 귀하고 비싼 나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커서 보니 이 식물은 논 힘을 돋우려고 녹비로 사용했던 식물이라고 하여, 잠시 놀랐다.


그 귀한 나물이 이렇게 흔한 식물이었다니...

그런데 그때는 왜 그렇게 이 자운영이 귀했었을까?

자운영 [ 紫雲英 ]


자운영은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두 해 살이 풀로 학명은 Astragalus sinicus이다.


연화초(蓮花草)·홍화채(紅花菜)·쇄미제(碎米濟)·야화생이라고도 한다. 중국 원산으로 논·밭·풀밭 등에서 자란다. 밑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져 옆으로 자라다가 곧게 서서 높이 10∼25cm가 된다. 줄기는 사각형이다.


잎은 1회 깃꼴 겹잎이고 작은 잎은 9∼11개이며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 또는 타원형이고 끝이 둥글거나 파진다. 잎자루는 길며 턱잎은 달걀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다.



꽃은 4∼5월에 피고 길이 10∼20cm의 꽃줄기 끝에 7∼10개가 산형(傘形)으로 달리며 홍색 빛을 띤 자주색이다. 꽃받침은 흰색 털이 드문드문 있으며 5개의 톱니가 있고 수술은 10개 중 9개가 서로 달라붙으며 씨방은 가늘며 길다.


열매는 협과로 꼭지가 짧고 긴 타원형이며 6월에 익는다. 꼬투리는 검게 익고 길이 2∼2.5cm로서 2실이다. 꼬투리 속에 종자가 2∼5개 들어 있고 납작하며 노란색이다.


자운영 효능


어린순은 나물로 먹으며, 풀 전체를 해열·해독·종기·이뇨의 약용식물로 사용한다.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가 붙어서 공중질소를 고정시키며 꽃은 중요한 밀원식물이다. 남쪽에서 녹비로 재배한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자운영 [紫雲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자운영 전설


자운영의 원산지인 중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다.


깊은 산골에 금슬 좋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 부부는 매우 행복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자식이 없었다.


어느 날 부부는 지나가던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했다.


나그네는 떠나면서 큰 산을 가리키며 저 산을 넘어가면 큰 폭포가 있으니, 그곳에서 정성껏 천일기도를 하면 아이가 생길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부부는 나그네가 일러준 폭포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곧 붉은 구름이 비단처럼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부부는 정성을 다해 천일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곧 태기가 있어 예쁜 딸을 낳게 되었다.

두 사람은 예쁜 딸을 붉은 구름이 가득한 폭포에서 얻었다 하여 자운영(紫雲英)이라 이름을 짓고 곱게 곱게 길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이는 고운 심성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로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가 숲에서 사냥을 하다 길을 잃고 헤매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자운영과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왕자는 궁으로 돌아가 왕과 왕비에게 결혼을 허락을 받아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나갔다.


자운영은 기쁜 마음으로 왕자를 기다렸다. 무심한 세월이 하염없이 흘러갔지만, 데리려 오겠다던 왕자에게는 소식이 없었다. 기다림에 지친 자운영은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궁으로 돌아간 왕자는 자운영에게 빨리 돌아올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왕과 왕비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여러 날 설득을 거듭한 끝에 왕자는 드디어 자운영과 결혼을 승낙받았다. 왕자는 아름다운 꽃마차를 준비해 기쁜 마음으로 자운영을 데리러 왔다.


그러나 자운영은 이미 죽은 뒤였다. 왕자는 망연자실 무덤 앞에서 몇 날 며칠을 눈물을 흘렸다. 왕자의 눈물이 떨어진 곳에 그를 위로하듯 붉고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자운영의 넋이 변해서 핀 꽃이라 하여 자운영 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자운영의 추억



어렸을 때


이른 봄

논 가득 일렁이던 짙푸른 파도


너나없는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던 자운영이었습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들기름 깨소금 넣고 조물조물 무쳐


흰 접시에서 단아한 자태를 뽐낼 때면

저절로 꼴깍 침이 넘어가곤 했었지요.


그렇지만

하찮은 계집애였던 내겐 입맛조차 다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만큼

귀한 나물이었습니다.


가끔은 쌀을 조금 넣고 자운영 죽을 끓여

맛있게 먹던 날도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너무 귀해

소나무 껍질까지 두들겨 삶아 먹던 그 힘든 시절


우리 마을 제일 부자인 대성 상회네 논은 아침마다

한바탕 소동이 일었습니다.


"어느 연놈들이 남의 논에 애써 심은 걸 비어갔는지 잡히면 손모가지를 잘라버려야 한당게"


걸걸한 대성 상회 안주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동네를 울렸습니다.


물론 자운영을 훔친 사람 중엔 우리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를 통틀어 자운영이 있는 곳은 대성 상회 논 뿐이었으니깐요.


간밤에 엄마가 몰래 뜯어온 자운영 나물


엄마가 하늘만큼 귀히 여긴 아버지와 오빠는

훔쳐 온 장물을 먹지 않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자운영 나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뜻하지 않은 횡재에

나는 엄마에게 옆구리를 쥐어 박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도

입안 가득 퍼지는 자운영 나물의 향기와 상큼한 맛에

아버지와 오빠가 마냥 고맙기만 했었지요.


비록 이따금 자운영은 훔쳐 오기도 했지만


엄마는

우리에겐 엄격하기가 비수 같으셨지요.


그리고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남의 물건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들고 오면 안 된다. 알겠지?"


행여,

우리 형제 중 누군가가 남의 것을 가져온다든지 그런 문제로 조금이라도 말을 듣는 날이면

우리는 피가 철철 날 만큼 회초리로 사정없이 종아리를 맞아야만 했었습니다.


늦은 봄 논 전체가 보랏빛 자운영 꽃으로 살랑 물결이라도 치면

설레는 마음에 논으로 내달려 앞집 순이와 반지를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어 걸곤 했었지요.


그 귀하디 귀하던 자운영 꽃이 저리도 지천으로 피어났군요.


이제 세월이 흘러

자운영 나물 맛조차 희미해졌습니다.


가족을 위해 자운영을 훔친 엄마도

그 나물을 먹지 않아 엄마 애를 태우던 아버지와 오빠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만 남았는데,


여전히 그 옛날처럼 보랏빛 자운영 꽃이 물결치고 있네요.



자운영 꽃말은 '감화', '나의 행복', '수확', '그대의 관대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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