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야 Jun 07. 2023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 아름다운 이별일지라도

삶의 단상 


아침 화단에 내려가 꽃들과 눈 맞춤 인사를 한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과 묵례로 인사를 주고받는데 검은 상복 차림의 소녀 두 명이 차에서 내린다.

단정한 두 소녀의 머리에 살포시 흰나비 모양의 핀 이 꽂혀있다. 나는 얼른 키가 큰 아나벨 수국 옆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그녀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터라 너무 잘 안다.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보아본 4 자매 들이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요양원에서 요양 중이던 그들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 들의 외할머니는 지금 그 소녀들의 행동거지처럼 단아하셨고 언행은 품위가 있었다.


나는 그분과 친한 이웃이었다. 분리수거 날이면 가장 먼저 나와 수거에 동참하시면서도 한 번도 찡그리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분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물론 이런 분들은 간혹 있기 때문에 감동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그분을 좋아하게 된 것은 바로 손녀들을 대하는 그분의 태도 때문이었다.


이 아파트에서 20여 년을 넘게 사는 동안 아침마다 손녀딸의 가방을 직접 들고 등굣길을 함께 하셨다. 첫째 때에도 둘째 때에도 셋째 때와 막내인 넷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웃으면서 손녀의 손을 잡고 학교까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배웅해 주고 귀가하시는 그분의 모습에서 나는 참 사랑을 느꼈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당연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의 아름다운 등굣길을 보는 것은 화단을 관리하고 보살펴야 하는 봄부터 늦가을까지다. 일 년 중 겨울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동행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하교 시간이 임박하면 마트에서 손녀들이 좋아하는 음료며 아이스크림 과자를 한 아름 사다 놓고, 다시 손녀들 학교에 가 그렇게 차례대로 손녀들의 책가방을 받아 들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돌아오신다.


그렇게 꼬박 15년도 넘은 시간을 나는 그들과 동행 아닌 동행을 한 셈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게는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꿈에서라도 좋으니 그분의 손녀가 되어 단 하루 만이라도 함께 등교를 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꿈꾸게 된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그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다.


언젠가 내가 그분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하교를 함께하실 수가 있어요? 너무 부러워요."


그때 그분이 하신 말씀이 이랬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요. 조금이라도 함께 있어 사랑해 주고 싶은데."


"너무 아름다우세요. 훗날 손녀들이 할머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그럴까요? 그랬으면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어요."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 때문인지 네 명의 손녀들은 옷 차람도 머리 모양도 얼굴 표정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네 명의 손녀들은 할머니와 함께 성장을 하였고, 하나 둘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였고, 막내까지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할머니의 등굣길 동행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딸에게 물어보니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모셨단다. 나이 들고 건강이 여의치 못하면 당연한 수순인데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요양원에 계시면서도 마음은 온통 네 명의 손녀딸을 향하고 있을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리고 가끔 만나는 딸에게 그분의 안부를 여쭈면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라고 하더니 결국 돌아가신 것이다.


며칠이 지났다.


오늘 저녁 운동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분의 따님과 손녀를 만났다. 따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분이 떠나가셨다는 것을 내게 알렸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노라고, 며칠 전 새벽 상복을 입은 두 손녀를 보고 직감했었다고.

생전에 곱고 아름다웠던 그분의 임종 순간은 평온했고, 시신은 고인이 오래전 사후 기증을 약속해 대학병원으로 가셨단다. 사후 시신 기증을 신청한 나도 그 문제가 궁금했었다.


6개월 후 화장을 하여 다시 유족에게 되돌려준단다.


생전에 고왔던 그분이 아름답게 살다 가셨다고 나와 따님 그리고 생전에 그렇게 사랑했던 손녀는 그렇게 믿는다. 이제 대학생인 곱게 자란 손녀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아름다운 이별도 마찬가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