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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
양천구청역의 버베나

삶의 단상

by 가야

《사라진 풍경 – 양천구청역의 버베나》


그 길을 다시 걷는다.
익숙한 화단이 낯설다.


누군가의 손이 멈춘 자리엔 풀들이 어지럽게 자라 있고,
그 자리에 피던 보랏빛 버베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20230528_183724.jpg

나는 그 꽃이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그 꽃을 잃어버린 내 마음이 낯설다.


햇빛이 기울던 저녁이었다.
양천구청역,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숙근 버베나가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2022년 6월 29일 양천구청역 화단


키가 훌쩍 자란 보랏빛 꽃무리가
정류장 담벼락 너머로 솟아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좋아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장면이 마지막이 될 줄은.


계절은 돌아왔지만
꽃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치가 바뀌고, 행정이 바뀌고,
그들과 함께 화단의 얼굴도 바뀌었다.


잘려 나간 건 단지 식물이 아니라,
그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풍경 속 감정이었다.


누군가는 그 꽃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테고,
누군가는 매일 그 꽃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가끔
사진을 열어 그 꽃을 본다.


가느다란 줄기 위에 옹기종기 모인 보랏빛.
바람 따라 흔들리는 잎과, 흙먼지 섞인 여름의 빛깔.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풍경.
없어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장면.

2022년 9월 양천구청역 화단


버베나의 꽃말은 ‘기억’, ‘인내’, 그리고 ‘보호’다.


어쩌면 그 화단은
우리 마음 어딘가에 여전히 피어 있는지 모른다.


돌아올 수 없는 그 여름의 끝에서
나는 오늘도 한 송이의 꽃을 꺼내어 피운다.


영상 속 흔들리는 그 장면에서
여전히 ‘나의 버베나’는 바람을 타고 있다.


"그 여름, 그 길목, 그리고 버베나."
"사라졌지만 여전히 피어 있는 풍경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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