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그 길을 다시 걷는다.
익숙한 화단이 낯설다.
누군가의 손이 멈춘 자리엔 풀들이 어지럽게 자라 있고,
그 자리에 피던 보랏빛 버베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꽃이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그 꽃을 잃어버린 내 마음이 낯설다.
햇빛이 기울던 저녁이었다.
양천구청역,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숙근 버베나가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키가 훌쩍 자란 보랏빛 꽃무리가
정류장 담벼락 너머로 솟아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좋아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장면이 마지막이 될 줄은.
계절은 돌아왔지만
꽃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치가 바뀌고, 행정이 바뀌고,
그들과 함께 화단의 얼굴도 바뀌었다.
잘려 나간 건 단지 식물이 아니라,
그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풍경 속 감정이었다.
누군가는 그 꽃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테고,
누군가는 매일 그 꽃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가끔
사진을 열어 그 꽃을 본다.
가느다란 줄기 위에 옹기종기 모인 보랏빛.
바람 따라 흔들리는 잎과, 흙먼지 섞인 여름의 빛깔.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풍경.
없어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장면.
버베나의 꽃말은 ‘기억’, ‘인내’, 그리고 ‘보호’다.
어쩌면 그 화단은
우리 마음 어딘가에 여전히 피어 있는지 모른다.
돌아올 수 없는 그 여름의 끝에서
나는 오늘도 한 송이의 꽃을 꺼내어 피운다.
영상 속 흔들리는 그 장면에서
여전히 ‘나의 버베나’는 바람을 타고 있다.
"그 여름, 그 길목, 그리고 버베나."
"사라졌지만 여전히 피어 있는 풍경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