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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문 밖 부암동 앵두나무골 이야기

삶의 단상

by 가야


♣ 앵두는 붉고, 기억은 더 붉었다


– 세검정, 부암동, 그리고 어느 산동네의 이야기

아파트 화단을 산책하던 길,
초록 잎 사이로 붉게 익은 앵두가 고개를 내밀었다.


작고 반짝이는 열매가 어린 시절 손바닥 위에 굴러가듯,
문득 하나의 멜로디가 떠올랐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오래된 유행가.
하지만 내게 앵두는 그 노랫말보다 훨씬 더 선명한 기억으로 다가온다.


자하문 밖, 부암동.
그곳의 이야기다.


서울에 막 올라왔던 어느 봄날,
나는 세검정 일붕선원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마음이 어수선했고,
어딘가 닿고 싶은 곳이 필요했다.

2016년 이전에 촬영된 서울 세검정 전경.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세검정에 처음 발을 디딘 그날,
나는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에 놀랐다.


널찍한 너럭바위 위로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복사꽃과 봄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나는 숨을 멈춘 채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릉도원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그렇게 나는 그 무릉도원에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세검정과 가까운 부암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뒤, 동네를 걷다 보니
곳곳에 앵두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하얀 꽃이 피고,
여름이 시작되면 앵두가 다닥다닥 열렸다.


나는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그 풍경을 참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암동 산동네의 한 할머니로부터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절,
가난했던 동네 아낙네들은
여름이면 앵두를 따 광주리에 담았다.


그걸 머리에 이고 자하문을 넘어
효자동과 종로로 나가 팔았다.


그 돈으로 아이들 학비를 마련하고,
하루하루를 꾸려 나갔단다.


그래서 자하문 밖 부암동 옛 이름은

그 이름도 정겨운 앵두나무골


지금은 그 마을도 많이 변했다.


낡은 집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급 주택들이 들어섰다.


그 시절 앵두나무는 자취를 감췄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날 아파트 화단에서 본 앵두는
단지 열매 하나가 아니었다.


그건 나를 세검정으로,
부암동으로,
그리고 산동네의 기억으로 데려다주는 열쇠였다.


붉게 익은 앵두 하나에
나는 수많은 계절과 사람과 이야기를 담아
다시 한번,
그 시절을 걸었다.


♣ 그리고, 앵두에 대하여


앵두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봄이면 하얗고 수수한 꽃이 피고,
초여름이면 다닥다닥 붉은 열매가 맺히는 나무입니다.


우리 민속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고,
우물가나 마당 한켠에 심어 두고 열매를 따 먹던 추억의 나무로 기억됩니다.

♣ 앵두의 일반 정보

학명: Prunus tomentosa

영명: Nanking cherry

원산지: 중국 북부, 몽골, 한국

개화시기: 4월 중순 ~ 5월

결실시기: 6월 초

열매 특징: 지름 1cm 내외의 붉은 열매, 살짝 신맛이 도는 단맛


♣ 앵두의 효능


예부터 앵두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약효가 있는 열매로 알려졌습니다.


기침과 목 건강에 좋음: 앵두는 기관지를 부드럽게 하고, 마른기침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어 민간요법으로 쓰였습니다.


피부 미용: 비타민 C가 풍부해 피부를 맑게 해 주며, 미백 효과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소화 기능 촉진: 적당량 섭취 시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식욕을 돋우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진정 작용: 마음을 안정시키고, 잠을 잘 오게 한다는 기록도 있으며, 옛 어르신들은 차로 끓여 드시기도 했습니다.


♣ 앵두에 얽힌 전설


예로부터 앵두나무는 여자아이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습니다.

조선시대엔 딸이 태어나면 앵두나무를 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작고 앙증맞고, 단단하며 예쁜 존재"로서
앵두 열매가 딸아이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또 다른 설화에서는,
앵두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 앵두꽃 꽃말

수줍음

첫사랑의 기억

기다림


작고 붉은 열매,
한입 깨물면 퍼지는 새콤달콤한 맛처럼
앵두의 꽃말에는 말하지 못한 감정과 여린 설렘이 담겨 있습니다.


앵두는 단순한 나무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가난했던 어느 시절의 여름, 우물가의 풍경,


딸을 위해 나무를 심던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못할 기억들이 함께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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