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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꽃향기의 대명사 프록스 / 프록스 이야기

가야의 꽃이야기

by 가야


여름의 정원을 피워낸 향기, 프록스 이야기


– 해마다 다시 피어나는 기억의 꽃


여름이 깊어가면 꽃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초록이 지배하는 계절이 찾아옵니다.
그런 계절 한복판에서 은은한 향기를 머금은 채 조용히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햇살 아래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그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은 꽃.
바로 프록스, 정원 속의 불꽃같은 존재입니다.


이름부터가 눈길을 끕니다.


‘프록스(Phlox)’는 그리스어로 ‘불꽃’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만큼 강렬하고 생기 있는 색감을 지닌 꽃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프록스는 그 이름과는 다르게, 화려함보다는 차분한 아름다움과 따뜻한 향기로 다가옵니다.


그 조화가 오히려 이 꽃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듭니다.


프록스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마전과의 식물로, 정원에서는 ‘가든 프록스(Garden Phlox)’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립니다.


이 가든 프록스는 다년생 숙근초로, 한번 심어두면 해마다 스스로 되살아나 여름이면 풍성한 꽃을 피웁니다.
어느 해엔 한 송이, 어느 해엔 무더기로 피어나며, 해마다 조금씩 그 존재를 넓혀가는 정원 속의 반려자 같은 꽃이지요.


내가 가꾸고 있는 화단의 프록스도 처음에는 아주 작고 여린 묘목이었습니다.


햇빛이 더 잘 드는 곳을 찾아 자리를 몇 번이나 옮겼고,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조금씩 뿌리를 내리더니
몇 해를 거쳐 마침내 이 여름, 키는 어느덧 내 무릎을 훌쩍 넘고, 향기로운 꽃송이들을 다발처럼 피워 올렸습니다.


이 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오랜 기다림과 손길,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묵묵히 견뎌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합니다.


화단 한쪽에 피어난 이 꽃은 단지 식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야기를 지닌 존재이자 계절의 기록입니다.

프록스에는 한 편의 신화 같은 전설도 전해집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하세계를 지나 인간 세상으로 되돌아온 영웅들이 들었던 횃불의 불빛이 스친 자리에
불꽃처럼 붉은 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그 꽃이 바로 프록스였다고 하지요.
불길에서 태어난 꽃,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
프록스는 단순한 여름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생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이 꽃의 꽃말 또한 아름답습니다.


‘화합’, ‘온화한 마음’, ‘사랑의 유대’, 그리고 ‘함께 있음의 소중함’.
모두가 다정하고 따뜻한 감정들입니다.


아마도 한 줄기에서 여러 송이가 다정하게 모여 피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 누군가와 조화를 이루며 시간을 보내는 일.
그 모든 것이 이 작고 향기로운 꽃을 닮았습니다.


프록스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장소와 배수가 좋은 흙, 그리고 겉흙이 마를 때마다 주는 물이면 충분합니다.

봄과 가을에 뿌리를 나누거나 건강한 줄기를 꺾어 심으면 쉽게 번식도 가능합니다.


다만, 꽃이 지고 나면 꽃대를 잘라주면 더 오랜 시간 동안 꽃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키가 크기 때문에 지지대를 세워주는 것이 좋다는 점만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프록스는 봄에 피는 낮고 기는 종류인 ‘모스 프록스(Phlox subulata)’와도 자주 비교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름 화단에서 마주하는 프록스는 대부분 키가 크고 향이 짙은 가든 프록스로,
그 존재감만큼이나 정원의 분위기를 바꾸는 힘이 있는 꽃입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해마다 기다리지 않아도 알아서 제 자리를 찾아 피어나는 것을 보면
자연의 질서와 계절의 흐름이란 것이 얼마나 정직하고도 은혜로운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프록스는 그저 피고 지는 여름꽃이 아니라,
시간을 품고 자라며, 우리 곁에 조용히 머무는 다정한 생명입니다.


그 향기와 색,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마음이
당신의 정원에도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MdO2xc1Nzxc?si=HB01og6rF_dzRNx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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