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탄생화
그늘에서 피어나는 사랑, 잎으로 말하는 꽃
한여름,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계절.
햇빛은 세상의 이목처럼 정면에서 식물을 겨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은,
대개 높이 자라고 크고 화려한 꽃들로 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작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그늘 아래 피어나는 작은 존재들이 아닐까.
어쩌면 오늘, 7월 9일의 탄생화인 비비추도 그런 식물일지 모른다.
비비추는 백합과의 숙근성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의 깊은 산이나 숲 속 반그늘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학명은 Hosta minor.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호스타(Hosta)’ 속 식물들 중에서도
비교적 잎과 키가 작고 아담한 편에 속한다.
넓은 타원형 잎은 잎맥이 뚜렷하고 광택이 나며,
그 자체로 이미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 사이로 여름이 깊어질수록
연보랏빛의 작고 섬세한 꽃들이 조용히 올라온다.
줄기 위로 한 송이씩 고개를 숙인 듯 피어나는 모습은
마치 “나는 말 없는 애정이다”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비비추의 꽃말은 ‘조용한 사랑’.
그늘을 좋아하고, 시끄럽지 않으며,
늘 잎을 넓게 펴고 있지만 누군가를 가리는 법도 없다.
말하자면 비비추는 ‘스스로 밝지 않아도,
다른 존재에게 그늘을 내어줄 수 있는 식물’이다.
어쩌면 그 점에서 가장 품위 있는 사랑을 닮았다.
내리쬐는 햇살보다
그 햇살을 받아주는 나뭇잎의 품처럼.
우리는 종종 비비추를 옥잠화와 혼동하곤 한다.
둘 다 ‘호스타’로 불리는 백합과 식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다른 종이다.
비비추(Hosta minor)는 한국 자생종으로
작고 단단한 잎, 연보라색 꽃, 향기 없는 꽃이 특징이다.
반면 옥잠화(Hosta plantaginea)는
중국 원산으로 순백색의 큰 꽃과 강한 향기를 지닌다.
개화 시기도 옥잠화가 한 달가량 늦으며,
잎은 훨씬 크고 두껍고 윤기가 강하다.
겉모습은 비슷할지 몰라도,
생김새와 향기, 분위기, 정서는 전혀 다르다.
비비추가 조용한 숲의 느낌이라면,
옥잠화는 무대 위에 선 고전 무용수 같은 인상이다.
비비추는 키우기도 쉽고 정서적 만족도도 높은 식물이다.
그늘이나 반그늘을 좋아하며,
한여름 직사광선 아래선 잎 끝이 타기 쉽지만
나무 아래나 건물 북향 화단 같은
‘사람이 외면한 자리’에서 의외로 잘 자란다.
토양은 유기질이 풍부하고 배수가 잘되는 흙이면 충분하다.
겉흙이 마르면 물을 듬뿍 주고,
봄이나 가을에 포기나누기로 번식시킬 수 있다.
병충해에도 강하고, 일 년 내내 잎을 피워내며,
겨울엔 지상부가 없어져도 봄이면 다시 살아난다.
이처럼 비비추는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존재하는 식물’**의 미덕을 갖고 있다.
꽃을 앞세우기보다 잎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거창한 메시지 없이도 무심한 듯 내 곁을 지켜주는 식물.
그런데, 이런 비비추에게도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있다.
그것은 그 번식력이다.
처음엔 그저 한 뿌리였다.
그늘지고 메마른 화단의 한 귀퉁이에
어디서 들여온 건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묘목 한 포기.
그렇게 조용히 자라던 식물이
계절이 한두 번 바뀌는 사이,
화단 전체를 뒤덮을 만큼 영역을 넓혀갔다.
해마다 봄이 되면 더 넓게 퍼지고,
분주하지 않아도 땅 밑에서 성실하게 뿌리를 내렸다.
결국 어느 해에는 화단의 절반이 비비추로 가득해져
모두 뽑아낼 수밖에 없었다.
삶이 그렇듯,
자라길 바란 건 그것뿐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주인이 된 듯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비추는 그런 식물이다.
티 내지 않고 자라고,
말없이 자리를 넓히며,
어느 순간 삶에 깊이 들어와
당연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이 조용한 식물이
사실은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였는지를.
당신의 마음에도 조용히 자리 잡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비비추 같은 존재일지 모릅니다.
말없이 곁을 지키는 사람,
빛나지 않아도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당신 스스로가 그런 존재이기를.
#비비추 #7월 9일 탄생화 #탄생화 #오늘의 꽃 #호스타 #Hosta #비비추꽃말 #조용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