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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탄생화 -향쑥

오늘의 탄생화

by 가야

◆ 향쑥, 쓴 향 너머의 기억


7월 26일.

이 날의 탄생화는 ‘향쑥’이다.


마음이 조금 놀란다. 향쑥이라니. 쑥의 향, 그 익숙한 풀내음일 줄 알았는데—이 식물은 생각보다 먼 곳에서 건너왔다.


차가운 회녹빛 잎을 달고, 기억 속 그림자를 더듬는 듯한 향을 풍기며.


그 이름은 Wormwood.


영문으로 적으면 더 선명해지는 고전의 잔상. 쓰디쓴 약초, 마녀가 태우던 연기, 고흐가 홀로 마셨던 잔 속의 녹색 광기.


하지만 이 쓴 식물의 처음은 여신의 손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이다.
나는 이 쓴 풀을 너에게 내어주려 한다.
이 풀은 고통을 담고 있지만,
그 향기는 너를 보호할 것이다.”

◆ 여신 아르테미스가 남긴 풀잎


전설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냥과 치유의 여신, 달의 신비를 품은 아르테미스는 인간에게 병과 통증을 이겨내는 작은 은빛 풀잎 하나를 선물했다.


그것이 바로 향쑥이었다.

여신은 말했다.


“이 풀의 쓴맛은 시련을 상징하지만, 향은 너희를 보호할 것이다.
잊지 말라. 고통은 지나가고, 향은 기억으로 남는 법이다.”


그래서였을까. 향쑥은 그저 풀잎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중성을 지닌다.
향은 맑고 짙지만, 맛은 쓰고 묵직하다.


햇살을 은은히 머금은 회색 잎사귀 아래에는, 여신의 손길처럼 아련한 무언가가 숨어 있는 듯하다.

◆ 마녀와 순례자의 풀


시간이 흘러 중세 유럽.
사람들은 향쑥을 문 앞에 걸어 악귀를 막는 부적으로 삼았다.


지친 순례자는 신발 속에 향쑥 잎을 넣고, 발끝부터 마음까지 보호받길 바랐다.
그리고 마녀는 그 풀을 불에 태워 어두운 세상의 균형을 회복하고자 주문을 속삭였다.


향쑥은 빛과 어둠, 이성과 직관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과 안식을 동시에 새기는 약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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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 요정과 예술가의 슬픔


19세기 프랑스 파리.
향쑥은 또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술. 그것도 ‘녹색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은 독특한 술, **압생트(absinthe)**의 주재료로.
그 술을 사랑했던 이는 고흐, 보들레르, 랭보, 로트렉...


예술가들이었다.


누군가는 그 술을 마시며 불멸의 그림을 그렸고,
누군가는 사랑의 시를 쓰다가 귀를 자르고, 정신을 놓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이 사랑한 건, 술이 아니라 술 너머의 향쑥의 기억이었는지도 모른다.


쓴맛의 끝에서 비로소 보이는 평온,
무너짐 속에서 건져 올리는 고요한 정신의 한 조각.

◆ 기억은 쓴맛을 닮았다


향쑥의 꽃말은 ‘기억’이다.


왜 하필 기억일까.
그 향 때문일까, 쓰디쓴 여운 때문일까.


사람은 달콤한 것보다, 때론 쓴 것을 더 오래 기억한다.


한때 아팠던 사랑, 지나간 계절, 고통을 이겨낸 나날들.
그 모든 기억은 향쑥처럼 깊고 쓰며, 끝내 마음 어딘가를 따스하게 감싼다.


7월의 끝자락에서, 나는 오늘 향쑥을 기억한다.


마녀의 풀, 여신의 선물, 예술가의 술—
그 쓴 풀 하나가 품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를 느끼며,
문득, 잊고 있던 내 안의 오래된 기억 하나를 조용히 되새겨본다.


◆ 향쑥의 식물적 특성, 전설 속 유래, 압생트와의 관계 등 더 자세한 정보는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https://youtu.be/u3EtteauL1c?si=6ePV4XOiUJkBL8IT


◆ 향쑥에 대하여 – 식물 정보

이름: 향쑥 (Wormwood, 학명 Artemisia absinthium)

속명 유래: ‘Artemisia’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의 이름에서 유래

분류: 국화과(Compositae), 여러해살이풀

원산지: 유럽, 중앙아시아

형태: 키 약 1m, 잎과 줄기에 은빛 털이 많고 부드럽다

개화시기: 7~9월, 노란빛을 띠는 작고 둥근 꽃이 줄기 끝에 핀다

향과 맛: 쌉싸래하고 강한 향과 매우 쓴맛

용도: 고대에는 약초와 부적으로, 중세에는 마법과 방어의 식물로, 근대에는 ‘압생트’라는 술의 주재료로 사용됨

꽃말: 평온, 보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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