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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란타 -초콜릿 향을 기다리며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 초콜릿 향을 기다리며 – 듀란타, 밸런타인재스민 이야기


꽃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다림과 실망, 그리고 뜻밖의 기쁨이 교차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올여름, 그 모든 감정을 한 식물이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이름조차 달콤한 그 아이, 듀란타, 일명 밸런타인쟈스민이다.


◆ 문안 인사를 건네는 보랏빛


매일 아침, 창밖으로 시선을 두는 그 자리,
항아리 옆에서 사방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아이 하나가 나를 맞이한다.


보랏빛으로 조용히 피어오르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잘 피었구나. 고마워.”

이 듀란타는 몇 해 전, 제주도 카페 회원에게서 분양받은 아이였다.


그분은 이 식물을 제주향수선화와 함께 삽목으로 키워 판매하셨고,
당시 소개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꽃에서 은은한 초콜릿 향이 납니다. 사랑스러운 밸런타인쟈스민이에요.”


그 한 줄에 마음이 설렜다.
정말로 꽃에서 초콜릿 향이 날까?
달콤한 이름과 보랏빛 꽃을 상상하며 화분 하나를 들였다.

◆ 실망과 웃음 사이의 계절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그늘진 우리 집에선 잎만 무성했고 꽃은커녕 진딧물과 병해충만 가득했다.


애지중지하던 마음은 어느새 실망으로 바뀌었다.
결국 ‘초콜릿 향’에 마음을 빼앗긴 작은언니에게 화분을 넘겼다.


햇살 가득한 언니네 집에서는 다행히 해충은 사라졌지만,
이번엔 너무 잘 자라기만 하고 꽃은 피지 않는다며 투덜투덜.


그래서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온 듀란타.


나는 더 큰 화분으로 옮겨주고,
화단 옆 항아리 곁, 볕 잘 드는 곳에 조용히 두었다.


그리고는 물만 넉넉히 주고, 일부러 방치해 두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난여름,
그 무성하게 뻗은 가지 끝마다 보랏빛 꽃이 줄줄이 피어났고,
그 모습에 다시 집을 방문한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가지 끝에서 꽃이 피는 줄 누가 알았겠어?
나는 가지가 너무 웃자라길래, 죽어라 잘라줬는데!”


그 순간, 우리 둘은 동시에 웃었다.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에,
듀란타는 마침내 자기답게 꽃을 피워냈던 것이다.

듀란타(Duranta)

듀란타는 멕시코와 남미 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상록관목이다.


국내에서는 ‘밸런타인재스민’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보랏빛 꽃과 노란 열매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식물의 정식 학명은 Duranta erecta이며, 마 편 초과에 속한다. 영어권에서는 ‘Skyflower(하늘꽃)’, 혹은 ‘Golden Dewdrop(황금 이슬)’이라 불리며,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정원이나 테라스를 장식한다.

작고 사랑스러운 꽃은 5월부터 가을까지 줄기 끝에 수상으로 피며, 은은한 보라색과 하얀 테두리가 어우러져 청초한 인상을 준다.


꽃이 진 자리에는 반짝이는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데, 이 열매 때문에 ‘황금이슬’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다만 열매에는 약한 독성이 있어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식물은 햇빛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꽃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루 5시간 이상 햇빛을 충분히 쬐어야 하고, 반그늘에서는 꽃이 거의 피지 않는다.


물도 매우 좋아하는 편이어서 특히 더운 여름철에는 매일 아침 물을 흠뻑 주는 것이 좋다. 배수가 잘되는 흙을 사용해 물 빠짐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주의할 점은 ‘가지치기’다. 꽃은 해마다 새로 자란 가지의 끝에서만 피기 때문에, 자람이 보기 싫다고 가지를 자주 자르다 보면 꽃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작은언니처럼 가지를 자르기만 했다면, 피지 않는 꽃을 두고 속상해했을지도 모른다.

꽃말은 ‘고귀함’, ‘변함없는 사랑’, 그리고 ‘기다림’이다.


아마 이 식물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햇살을 기다리고, 꽃을 기다리며, 어느 날 예고 없이 피어난 보랏빛 꽃을 마주하는 순간, 이 작은 나무가 전해주는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 듀란타 잘 키우는 팁

햇빛: 하루 5시간 이상 충분한 햇빛을 받아야 꽃이 핀다.

물 주기: 물을 매우 좋아하므로 여름철엔 거의 매일 물 주기가 필요하다.

분갈이: 뿌리가 꽉 차기 쉬우므로 2년에 한 번 분갈이 필수

가지치기: 과도한 전지는 꽃눈 형성을 방해할 수 있으니 주의

겨울나기: 10도 이하에서는 생장이 멈춘다. 겨울철 실내 월동 권장

◆ 식물이 주는 깨달음


식물도 사람처럼

제 몫의 햇살과 숨 쉴 공간이 있어야 제 빛깔을 드러낸다.


우리가 보기 좋은 대로 가지를 자르고
키를 맞추려 하면, 꽃은 피지 않는다.


듀란타는 내게 그런 이야기를 건넨다.


가끔은 방치처럼 보이는 자유로움이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것을.


https://youtu.be/ZWtfl4piLqU?si=oXekuWjqirQvkI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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