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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를 그리며– 옥환에게 보내는 편지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8월 1일, 양귀비를 그리며

– 옥환에게 보내는 편지


옥환,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오늘도 한 송이 양귀비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대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꽃, 그대의 이름으로 오해받은 꽃.


사람들은 아직도 이 꽃을 ‘양귀비’라 부르며,
붉디붉은 꽃잎에 당신의 얼굴을 겹쳐 봅니다.


하지만,
정작 당신이 좋아했던 꽃은 복사꽃이었다고 들었어요.


장한궁 후원에 흐드러졌던 연분홍 복사꽃 사이를
하늘하늘 걸어가던 그대의 자태를,


현종은 그토록 사랑했고,
세월은 그 사랑마저 한 송이 꽃처럼 흩뜨려 버렸지요.


그대가 떠난 지 천 년이 넘었지만,
여름의 끝자락,


이 강렬한 빨간 양귀비 앞에 서면
사람들은 다시 그대를 떠올립니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당신의 이름을 딴 이 꽃은 사실, 당신의 꽃이 아니에요.
이 꽃의 진짜 이름은 개양귀비랍니다.


유럽 들판에서 피어난 작은 야생화였죠.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은 마약을 만드는 양귀비의 이름을 빌려


이 꽃을 ‘양귀비’라 불렀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꽃도, 사람도,
진짜보다 이름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어쩌면 ‘꽃’이 아니라 ‘신화’였는지도 모르겠어요.


현종은 당신을 ‘태진’이라 불렀지요.


궁정 음악은 당신을 위해 연주되었고,
군왕은 당신의 눈물 앞에 무너졌고,
한 나라의 궁정은 당신의 향기에 취했어요.


하지만 마침내
말 한 필과 함께 강물 너머 떠나야 했던 그 순간,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은밀히 지켜보던 복사꽃은
그 슬픔을 기억하고 있었을까요?


옥환,
이제는 복사꽃이 아니라
양귀비 앞에 그대의 이름이 남았습니다.


꽃은 언제나 억울하게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살아가니까요.

양귀비는
기억을 지운다고 해요.


수면과 망각의 꽃, 전사자를 위한 꽃.


그러나 나는,
이 꽃 앞에 서면 당신을 더 또렷이 떠올리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름이 바뀌고,
역사가 이야기의 옷을 입고 나를 속여도
이 붉은 꽃은 언제나 누군가의 그리움을 품고 피어나니까요.

오늘은 8월 1일,
당신의 꽃이 탄생화로 이름을 올린 날입니다.


그 날개처럼 가벼웠던 꽃잎 하나를 조심스레 떼어,
이 편지 끝에 붙여봅니다.


내 마음도 함께 접어,
그 시공간 너머 그대에게, 전합니다.


– 누군가의 오늘로부터.

◆ 양귀비(Poppy)


학명은 Papaver rhoeas (개양귀비)이며,

영문명은 Common poppy, Red poppy, 양귀비과(Papaveraceae) / 한해살이풀인

양귀비는 5월 ~ 8월에 꽃이 피며, 원산지는 유럽, 서아시아입니다.


주요 품종으로는 개양귀비 (관상용), 아편양귀비 (Papaver somniferum)가 있습니다.

잠의 신 히프노스

◆ 양귀비에 얽힌 전설


양귀비는 고대부터 꿈, 수면, 망각의 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잠의 신 **히프노스(Hypnos)**와 죽음의 신 타르타로스가
이 꽃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지죠.


현대에 이르러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플랑드르 전선에서 피어난 양귀비를 노래한


시 *“In Flanders Fields”*로 인해
양귀비는 전사자 추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매년 11월,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에서는
양귀비 배지를 달고 전몰장병을 기립니다.

◆ 양귀비의 꽃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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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위엄

전사자에 대한 추모

사랑의 유혹 (빨간 양귀비의 경우)



이 꽃의 진짜 이름은 개양귀비랍니다.
유럽 들판에서 피어난 작은 야생화였죠.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은 마약을 만드는 양귀비의 이름을 빌려
이 꽃을 ‘양귀비’라 불렀습니다.


물론,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어요.


우리가 아는 그 ‘양귀비’—당나라 현종의 연인이었던 양옥환과
이 꽃의 이름은 사실 직접적인 관련은 없답니다.


꽃 이름은 ‘서양에서 온 귀한 풀’이라는 뜻의 한자적 의역일 뿐이에요.


하지만 묘하게도, 붉은 꽃잎과 요염한 아름다움이
그 옛날 비극의 여인과 겹쳐 보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두 ‘양귀비’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지요.


언어의 착각이 때로는 더 강렬한 상징을 만들어내는 법이니까요.

참, 이상하지요.
꽃도, 사람도,
진짜보다 이름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


https://youtu.be/88MWHtJ8_84?si=RLSckZMNtcubeO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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