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탄생화
나는 메리골드. 사람들은 나를 ‘성모 마리아의 황금꽃’이라 부릅니다.
나의 꽃말은 열정, 창의, 희망.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슬픔과 이별을 뜻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나는 기쁨과 슬픔, 시작과 끝을 함께 품은 꽃입니다.
나는 햇살을 닮은 노랑과 주황빛으로 피어나,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의 마음을 환히 밝힙니다.
화단에서는 해충을 막아주는 벗이 되고, 제단 위에서는 신에게 바쳐지는 꽃이 되지요.
또한 나의 꽃잎은 차가 되고, 음식의 장식이 되고, 때로는 염료가 되어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잘 아실 거예요. 나는 결코 낯선 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나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이미 나를 노래했지만, 나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이어져 온 문화와 풍습 속의 메리골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나는 어떻게 태어났고, 또 어떻게 세계 곳곳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품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프리칸 메리골드는 크고 둥글게 피어나는 황금빛 꽃으로 당당한 자태를 뽐냅니다.
프렌치 메리골드는 붉은빛과 주황빛이 섞인 작은 불꽃 같은 꽃으로 화단을 수놓습니다.
시그넷 메리골드는 섬세한 잎과 데이지 같은 작은 꽃, 짙은 향기로 요리에도 쓰입니다.
멕시코 메리골드는 허브로, 약용으로, 의식의 꽃으로 오래도록 사랑받아 왔습니다.
오래 전 멕시코에는 소년 우이치린(Huitzilin)과 소녀 소칠(Xóchitl)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태양신에게 꽃다발을 바치며 사랑을 맹세했지만, 전쟁은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
우이치린이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소칠은 태양신에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와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
그 기도가 닿았을 때, 나는 황금빛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내 향기와 빛깔이 죽은 이들의 영혼을 불러들이고, 길을 안내한다고 믿게 되었지요.
그래서 지금도 죽은 자의 날, 나는 제단 위에, 길 위에, 영혼을 맞이하는 꽃이 됩니다.
나는 지금 전 세계 곳곳에서 피어나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남미 안데스의 소년 우이치린(Huitzilin)과 소녀 소칠(Xóchitl)의 넋이 고요히 숨쉬고 있다고 느낍니다.
내 황금빛 잎마다, 그들의 사랑과 기다림이 함께 깃들어 있지요.
미국 메릴랜드의 작은 마을.
한 늙은 여인의 정원에 가득 핀 메리골드를 아이들이 짓밟았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훗날 깨닫습니다.
그 꽃이야말로 가난과 절망 속에서 피어난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문학 속에서 깨달음과 성장의 상징으로 살아왔습니다.
안데스 고원의 사람들은 내 잎을 차로 마시며 속병을 다스렸습니다.
마야인들은 제단에 나를 올려 태양과 인간을 잇는 매개체로 삼았지요.
과테말라와 페루에서는 내 향기가 악령을 쫓고, 영혼을 정화한다고 믿었습니다.
나는 화려한 책 속보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더 진하게 살아남은 꽃입니다.
혹시 궁금하시지 않나요?
왜 나는 인도에서 결혼식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지?
나의 노랑과 주황빛은 태양과 황금을 닮아, 밝은 미래와 부, 번영을 기원하는 색입니다.
사람들은 신랑 신부가 태양처럼 빛나며 부유하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며 나를 화환으로 엮습니다.
또한 나는 힌두교에서 비슈누(Vishnu)와 락슈미(Lakshmi) 신에게 바치는 꽃이기도 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뿐 아니라 두 가문의 연합이기에, 신성한 꽃인 내가 신들의 축복을 불러온다고 믿지요.
게다가 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녔습니다. 가뭄에도, 장마에도 시들지 않고 꿋꿋이 자라는 꽃.
사람들은 이 모습 속에서 결혼 생활의 상징을 발견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서로 의지하며 굳건히 살아가라.”
그래서 인도에서 나는 신성하고 기특한 결혼의 꽃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나는 멕시코에서 태어났지만,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의 손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지요. 사람들은 나를 Mary’s Gold, 성모 마리아의 황금꽃이라고 불렀습니다.
비싼 황금 대신 나를 바쳐, 신앙과 기도의 마음을 드러냈던 것이지요.
그래서 중세 수도원 정원마다, 나는 늘 성모의 곁을 지키는 꽃으로 심겨 있었습니다.
나는 또 약초로 쓰였습니다. 사람들은 내 꽃잎을 달여 상처를 씻고, 발열을 낮추었지요.
특히 여성들의 건강을 돌보는 데 자주 쓰였기에, 여인의 꽃이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금잔화라는 이름으로, 나는 여전히 치유의 꽃으로 살아 있습니다.
문학 속에서도 나는 빛났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나를 두고 “태양을 따라 피고 지는 꽃”이라 불렀고, 이는 변치 않는 충성과 순수함을 뜻했습니다.
밀턴 역시 내 이름을 시 속에 불러, 아침 햇살을 기다리는 한 송이 꽃의 모습으로 찬미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결혼식에서 나는 영원한 사랑과 헌신을 상징하는 장식이 되었지요.
그 덕분에 나는 신부의 곁을 지키는 축복의 꽃으로 오랫동안 쓰였습니다.
나는 멕시코에서 사랑과 죽음을 품은 꽃이었고, 인도에서 신성한 결혼의 꽃이 되었으며, 유럽에서는 성모의 꽃, 충성과 헌신의 꽃으로 다시 피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대륙을 건너며 새로운 의미를 덧입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또 다른 얼굴을 가진 꽃이 되었지요.
나는 멕시코의 전설에서 태어나, 인도의 결혼식에서 신성한 축복의 꽃이 되었고, 북미의 소설 속에서는 가난 속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이르러서는 또 다른 의미를 얻었지요. 남아프리카에서는 상처를 치유하는 꽃, 동아프리카에서는 해충을 막는 신성한 꽃으로, 서아프리카에서는 집안을 지켜주는 보호의 상징으로 살아왔습니다.
나는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했지만, 각 대륙과 문화마다 다른 얼굴을 가진 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꽃이 세계사를 건너며 전해지는 방식 아닐까요?
인류의 삶 속에서, 나는 늘 새로운 의미를 입고 다시 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메리골드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그 민족과 함께 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어 그냥 스쳐갈 수 있는 꽃, 메리골드.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으신가요?
이 글을 계기로 메리골드를 만나면 말없이 웃어주세요.
“나는 너를 많이, 아주 많이 이해하고 알고 있어.”
그렇게 나를 바라봐 주신다면, 나는 황금빛 미소로 다시 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케이팝의 열풍처럼 우리만의 메리골드 이야기도 세계의 이야기로 퍼져 나가길 바랍니다.
https://youtu.be/PDOnvVnxzHg?si=dvsW3U9ovY3JZC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