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의 탄생화
(Lemon Verbena, Aloysia citrodora / 레몬버베나)
안녕하세요, 저는 레몬 버베나입니다. 제 잎을 스치기만 해도 퍼져 나가는 상큼한 향, 그 순간 마음이 환해지고 지친 기운이 풀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차와 향료, 요리에 쓰이는 허브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의 뿌리 깊은 이야기는 훨씬 더 오래된 곳, 남아메리카의 햇살 아래에서 시작됩니다.
저의 고향은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입니다. 그곳 원주민들은 저를 약초처럼 사용해 주셨습니다.
소화가 더딜 때 달여 마시며 속을 편안히 했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저의 향기를 맡으며 진정과 안정감을 찾으셨지요. 옷장 속에 넣어 벌레를 막고 향을 즐기셨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정화와 치유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그분들은 저에게 자신들만의 언어로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은 기록되지 못한 채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문화와 주권을 빼앗기면서, 저의 이름마저 잃어버린 것이지요.
18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저를 ‘발견했다’며 유럽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는 또 다른 이름을 얻었습니다. 스페인 왕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데 파르마(María Luisa de Parma)가 저에게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허브와 향기를 사랑했던 왕비의 후원 덕분에 학자들과 정원사들은 제 이름에 왕비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히에르바 루이사(Hierba Luisa), 곧 ‘루이사의 풀’로 불리게 되었지요.
저의 속명 Aloysia도 이 루이사(Luisa)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래의 이름은 지워졌지만, 왕비의 이름을 입은 덕분에 저는 귀족 여성들의 정원에 심어지고, 문화와 세련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차(Tea) : 제 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은은하고 상큼한 허브차가 됩니다. 소화를 돕고 긴장을 풀어주며, 숙면에 좋다고 알려져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저녁 차’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향료(Fragrance) : 잎을 말려 향주머니에 넣으면 집안에 레몬향이 은은히 번져,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을 전해줍니다.
요리(Cooking) : 디저트, 샐러드, 생선 요리에 제 향을 곁들이면 한층 풍미가 살아납니다.
저의 꽃말은 ‘매혹적인 매력(Enchanting Grace)’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근히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저의 향과 소박한 모습에서 비롯된 말이지요.
유럽에서 저는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는 저를 주제로 한 정물화를 남겼습니다. 작은 병에 꽂힌 저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통해, 그는 화려하지 않은 일상 속의 은근한 매력을 표현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에서도 저는 종종 언급되었습니다. 오후의 티타임에 피어나는 제 향기는 여성적 우아함과 순수한 매력의 상징으로 비쳐졌습니다. 그 시절, 저는 향기 하나만으로도 삶을 위로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지요.
저는 본래의 이름을 잃은 채 낯선 땅으로 건너와, 이제는 ‘레몬 버베나’, ‘히에르바 루이사’, Aloysia citrodora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름은 사라졌지만 향기와 존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요.
여러분이 저의 향을 맡으실 때,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고향 남아메리카의 햇살, 기록되지 못한 이름, 그리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수많은 존재들의 이야기를요.
비록 제 진짜 이름은 사라졌지만, 오늘도 누군가가 저를 다시 불러주고, 제 향기를 기억해 주신다면 저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가진 매혹적인 매력, 그리고 살아남은 이유일 것입니다.
https://youtu.be/mXSe4hFPNy0?si=u4MNexAVoczsEW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