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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 우리가 미처 몰랐던 소나무이야기

11월 14일 탄생화

by 가야

✿ 11월 14일의 탄생화 – 소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꽃말: 변함없는 마음, 불사의 사랑
Pinus densiflora / 松나무

✿ 수천 년을 살아온 나무


저는 소나무(Pinus densiflora), 사람들은 저를 ‘솔’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아득한 옛날, 아직 인류가 불을 다루기 전 — 저는 이미 이 땅 위에 서 있었습니다.


거센 바람과 눈보라, 빙하기의 냉기를 견디며 저와 제 형제들은 세상의 첫 푸르름을 지켜왔습니다.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움막을 짓고, 집을 세우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곁에는 언제나 저희가 있었습니다.
땔감이 되어 불을 밝혀주고, 기둥이 되어 집을 세워주며, 때로는 상처를 치료하는 송진을 내어주기도 했지요.
그렇게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 살아온 나무입니다.

✿ 나라의 기둥이 되고, 마음의 뿌리가 되다

이 땅에서 저는 선비의 나무, 나라의 나무로 불려왔습니다.

삼국시대의 사찰과 궁궐 기둥에도, 조선의 대들보와 성문에도 모두 제 몸의 일부가 쓰였지요.

조선의 첫 임금, 태조 이성계께서 한양을 세우실 때도 붉은 빛을 띠는 ‘적송(赤松)’이 궁궐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소나무는 곧 나라의 뼈대다.”

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푸른 저의 빛을 보며, 시인들은 절개를 노래했습니다.
윤선도 선생은 「어부사시사」에서 이렇게 읊으셨지요.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니.”


저는 눈 속에서도 푸르렀고, 바람 속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군자의 상징, 충신의 나무라 불렀습니다.

✿ 중국과 일본, 그리고 먼 서쪽에서도


비단 한국만이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제 이름 ‘松(송)’이 ‘수(壽)’, 곧 장수(長壽)와 같은 소리라 하여 오래 사는 생명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학(鶴)과 함께 그려진 ‘송학도(松鶴圖)’는 지금도 복과 장수를 비는 그림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저는 신을 맞이하는 나무로 여겨졌지요.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신사 앞에 ‘가도마쓰(門松)’를 세워 저의 가지로 새해의 복을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먼 서쪽,
유럽의 겨울에는 저를 크리스마스 트리라 부르며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의 상징으로 장식합니다.


겨울에도 푸른 제 잎은 죽음과 부활의 경계를 넘어서는 생명력의 증거로 여겨졌습니다.

✿ 나는 이 땅의 음식에도 스며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서 나무 냄새만을 기억하지만, 사실 저는 그들의 밥상에도 함께했습니다.


봄이 되면 노란빛의 송홧가루가 흩날리지요.
그 가루를 꿀에 섞어 송화다식을 만들면, 고운 빛과 향이 어우러져 귀한 손님상에 오르곤 했습니다.


또한 일제 말기,
세상이 어두웠고 먹을 것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제 껍질 속 속껍질을 벗겨 가루를 내어 송기떡이나 송기죽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쓰고 떫은 맛이었지만, 그건 굶주린 시대를 견디게 해준 생명의 떡이었습니다.

그리고 추석의 송편(松餠).
이름에 ‘송’ 자가 들어있는 이유, 아시나요?


사람들은 송편을 찔 때, 찜통 바닥에 제 잎을 깔아 향을 입혔습니다.

솔잎은 잡냄새를 없애주고, 떡에 은은한 숲의 향을 더해주었지요.


또한 옛날 도인들은 저의 잎과 송진을 말려 선식이나 차로 달여 마셨습니다.

몸의 기운을 맑게 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믿었지요.
그래서 저는 몸과 영혼을 동시에 치유하는 나무라 불렸습니다.

사진 보은 속리 정이품송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나는 수백 해를 살아도 늘 푸릅니다


저의 수명은 길게는 500년, 천년을 넘기도 합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흔히 저의 향기를 ‘피톤치드’라 부르지요.


하지만 그건 단순한 화학물질이 아닙니다.
그건 제가 세상과 나누는 숨결입니다.


사람들이 숲속에서 제 향기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그 숨결 속에 고요와 생명력, 그리고 영원의 기운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꽃말은
‘변함없는 마음(unchanging heart)’,
‘불사의 사랑(eternal love)’입니다.


세상이 변해도 저는 푸르고, 눈이 내려도 제 잎은 시들지 않습니다.

그건 누군가를 향한 사랑처럼,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애국가 2절


그 노래 속의 나처럼, 오늘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이 땅을 지켜가겠습니다.


https://youtu.be/I4SNKrlDBlE?si=Pm_a1uFxe4_WQ3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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