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의 탄생화
꽃말: 성실(誠實)
숲속을 걷다 보면, 햇살이 닿지 않는 그늘 속에서도 언제나 푸른 잎을 펼치고 있는 식물이 있습니다.
꽃도 피우지 않고 향기도 없지만,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생명.
그것이 바로 양치식물입니다.
나무 그늘 밑이나 바위틈, 계곡의 물기 어린 곳에서,
양치식물은 세상의 소란과는 무관하게 고요한 푸름을 이어갑니다.
그 모습은 마치 말없이 제 일을 다하는 사람의 성실함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양치식물의 꽃말은 ‘성실’ —
빛이 없어도 푸름을 잃지 않는 마음을 뜻합니다.
양치식물은 씨앗 대신 포자(胞子) 로 번식하는 고대 식물입니다.
공룡이 지구를 누비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식물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이들은 햇빛이 닿지 않아도,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그저 고요히 잎을 펼칩니다.
그 생명력은 꾸준함과 겸손함,
그리고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양치식물 열풍(Fern Fever, Pteridomania)’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이 식물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도자기, 자수, 벽지, 장식품에는 양치식물의 곡선무늬가 자주 등장했지요.그들은 이 식물을 ‘은밀한 미(美)’와 ‘정숙한 자연의 품위’로 보았습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어린 양치잎의 나선형을 ‘코루(Koru)’라 불렀습니다.
그 모양은 새로운 시작과 조화, 생명의 순환을 뜻하며,
오늘날까지 뉴질랜드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양치식물은 단지 숲의 초록빛이 아닙니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새순을 식탁 위에 올려왔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고사리와 고비의 포자 잔해를 발견했습니다.
인류가 이미 만 년 전부터 양치식물을
봄철 식량으로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지요.
우리 조상들은 봄이 오면 산에 올라
눈이 막 녹은 습한 땅에서 돋아난 고사리와 고비를 채취했습니다.
삶아 말려두었다가 긴 겨울에 꺼내 먹으며
계절의 순환을 입 안으로 이어갔습니다.
특히 고사리(Pteridium aquilinum) 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양치식물입니다.
명절 음식인 잡채나 제사상의 나물로 빠지지 않고,
고향의 냄새, 어머니의 손맛으로 기억되는 존재지요.
또 북미나 유럽에서는 고비(Matteuccia struthiopteris) 가 대표적입니다.
이른 봄, 새순이 바이올린 머리처럼 말려 돋는 모습 때문에
‘피들헤드 퍼른(fiddlehead fern)’이라 불립니다.
데친 후 버터에 볶아 먹는 봄철 별미로,
캐나다와 북유럽에서는 계절 한정 식재료로 인기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쇠뜨기(Equisetum arvense) 를 약용과 차로,
석위(Pyrrosia lingua) 를 한방 약재로도 이용합니다.
즉, 양치식물은 식용·약용·관상용을 아우르는
인류의 오래된 동반자였습니다.
이민 가신 분들이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 산에 가면 고사리가 무지무지 많아요.
근데, 신기하게도 그걸 따는 사람은 우리뿐이에요.”
정말 그렇습니다.
북미 대륙은 고사리의 낙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브라큰 퍼른(Pteridium aquilinum)은
산불이 지난 땅이나 비탈진 숲에 군락을 이루며 자라죠.
하지만 현지 사람들은 거의 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문화와 인식의 차이에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고사리를
‘가축을 중독시키는 잡초’, ‘독성 식물’로 분류했습니다.
그들은 고사리 속의 프타킬로사이드(Ptaquiloside) 성분이
위험하다고 여겼고, 삶거나 말리는 ‘해독의 기술’을 몰랐습니다.
반면 한국과 일본, 중국은
그 독성을 조리로 제거하는 지혜를 일찍이 터득했습니다.
끓는 물에 데치고, 햇볕에 말리고, 다시 불려 조리하는 과정 속에
수천 년의 경험이 스며 있었지요.
서양인에게 고사리는 ‘숲의 잡초’였지만,
우리에게 고사리는 ‘봄의 나물’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동양은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고사리를 먹는 일은
단순한 채식이 아니라,
계절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태도,
즉 ‘성실’의 철학이 담긴 행위였습니다.
양치식물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늘에서 자라며, 소리 없이 푸름을 이어갈 뿐이지요.
그러나 그 조용한 생명력은 세상의 어떤 꽃보다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매일 빛을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의 시간을 지키는 식물,
그것이 양치식물의 본모습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꽃말은 ‘성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을 다하는 마음입니다.
https://youtu.be/jpxUDIGNKN0?si=AUTSnhr6NYZxLS6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