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탄생화
11월 22일의 탄생화 / 꽃말: 까다로움
가을의 끝자락, 산자락을 걷다 보면
붉은 구슬 같은 열매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을 만난다.
그 열매를 따라 시선을 올리면, 가시가 많은 가지 하나가 서 있다.
가을을 다 살고 난 나무, 매자나무다.
처음엔 그저 차가운 인상이다.
날카로운 가시, 정제된 형태,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
하지만 조금 더 다가가면, 그 안에 고요한 질서가 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잎, 은근한 색감, 그리고 그 끝에 달린 열매 하나의 온기.
가시와 열매, 그 모순된 조화를 바라보다 보면
까다로움이라는 꽃말이 문득 이해된다.
《동의보감》에는 매자나무의 뿌리껍질을 ‘산치자(山枳子)’라 부르며
열을 내리고, 염증을 다스리며, 마음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약으로 적었다.
가시는 몸을 지키지만, 그 속살은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약이 된다.
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아름다운 성정인가.
옛 시인들도 이런 나무를 사랑했다.
조선 후기의 화가가 그린 ‘화조도’ 한켠에
붉은 열매들이 흩어져 있다면, 그것은 매자나무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국화나 매화의 곁에서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는 그 붉은 점 하나가
계절의 무게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나는 때때로 매자나무를 한 폭의 그림처럼 본다.
검은 먹으로 그린 가시와
수묵으로 스민 가지,
그리고 마지막에 붉은 점으로 찍힌 열매 하나.
만약 누군가 이 나무를 그린다면,
그 붉은 열매 하나를 찍기 위해
몇 번이고 붓을 들어 올렸다 놓았을 것이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섬세해야만 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서양화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매자나무는 ‘빛과 그림자 사이의 긴장’이다.
노란 꽃과 붉은 열매, 가시의 회색빛이 만들어내는 대비.
그 까다로운 구성이 바로 아름다움의 본질이다.
사람들은 흔히 ‘까다롭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쓴다.
하지만 매자나무를 보면 그 말이 다르게 들린다.
까다로움이란,
섣불리 물들지 않으려는 마음,
자신의 질서를 잃지 않으려는 단단함이다.
겨울이 오기 전, 매자나무는 끝까지 잎을 지키다 마지막 순간에야 놓는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랜 사랑을 끝내는 사람 같다.
미련이 아니라, 품격 있는 작별처럼.
매자나무는 결국 이런 말을 건넨다.
“나는 쉽게 가까워지지 않지만,
한 번 마음을 내어주면 오래 기억될 것이다.”
가시를 두른 까다로움 속에
타인을 배려하고 세상을 품는 깊은 마음이 숨어 있다.
그것이 매자나무의 꽃말이고,
인간이 배워야 할 사랑의 방식이 아닐까.
◆겨울로 향하는 길목에서
나는 매자나무 앞에 잠시 멈춰 선다.
그 가시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내 안의 어설픈 욕심과 불안이 함께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붉은 열매 하나가 남는다.
가시 속에서도 스스로 빛나는 존재,
그것이 매자나무의 품격이다.
“매자나무 – 까다로움은 품격의 다른 이름.”
11월의 끝, 나는 그 나무 앞에서 오래 머문다.
https://youtu.be/daqzd_xRoGg?si=Ipnn2RtXMxpj2z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