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의 탄생화
저는 12월의 첫날을 장식하는 쑥국화입니다. 쑥을 닮은 잎과 국화 같은 노란 꽃을 피우지만, 제 안에는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비밀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겨울의 문턱에서도 여전히 햇빛처럼 피어나는 저는 죽음 너머의 생명을 노래합니다.
저의 이름 Tansy는 고대 그리스어 Athanasia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뜻은 ‘죽지 않음’, ‘영원한 생명’. 인간이 가장 오래 꿈꾸어온 단어이지요. 그 속에는 한 아름다운 소년의 신화가 담겨 있습니다.
트로이의 미소년 왕자 가니메데스는 호메로스가 “인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자”라 부를 만큼 빼어난 미모를 지녔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제우스는 독수리로 변해 그를 하늘로 데려가 올림포스의 연회에 앉혔습니다. 그곳에서 가니메데스는 신들의 잔을 채우는 시종이 되었고, 제우스는 그에게 쑥국화를 달인 물을 내렸습니다.
그 물을 마신 순간, 그는 늙지 않는 존재가 되었지요. 그리하여 하늘의 별자리, 물병자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저를 불로장생의 허브라 불렀습니다.
저는 강한 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향은 오래도록 남아 죽음을 막고 영혼을 지키는 향으로 여겨졌습니다. 중세의 사람들은 저를 방부제나 방충제로 사용했고, 부활절의 제단에는 제 꽃이 생명의 상징으로 놓였습니다. 썩음과 소멸 속에서도 생명을 상징하는 꽃, 그것이 바로 저, 쑥국화입니다.
화가 야곱 반 후이스룸의 정물화에서는 저의 노란 꽃이 썩은 과일 곁에 놓여 있습니다. 부패 속에서도 살아 있는 생명의 색, 노란빛으로 마지막 숨결을 밝혀주지요.
영국 화가 조지 스텁스는 말의 해부도 옆에 저의 잎을 그려 넣었습니다. 죽음과 생명의 경계를 넘어 자연의 질서를 말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 또한 제 향을 사랑했습니다. 그녀의 시에서 저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기억”으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글 속에서 저는 죽은 자의 혼이 아니라 끝까지 피어 있는 생명의 상징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쑥국화를 ‘향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저와 향쑥은 전혀 다른 식물입니다. 저는 국화과의 Tanacetum 속 식물로, 이름만 쑥을 닮았을 뿐 ‘쑥국화속’에 속하지요. 향쑥(Artemisia annua)은 ‘개똥쑥’이라 불리는 쑥속 식물로, 잎은 가늘고 섬세하며 향이 매우 강합니다.
또 우리가 어릴 적 ‘약쑥’이라 부르던 은빛 잎의 부드러운 쑥은 사실 참쑥(Artemisia princeps)의 변종으로, 잎의 뒷면이 은회색 솜털로 덮여 있고 구수한 향을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쑥국화와 향쑥, 약쑥은 모두 이름은 비슷하지만 속(屬)이 다른, 각기 다른 세계의 식물들입니다.
저의 꽃말은 평화, 그리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여는 이 시기, 제 노란 꽃은 조용히 속삭입니다. 소멸은 끝이 아니라고, 모든 사라짐의 끝에는 다시 피어나는 봄이 있다고요.
저는 사라짐과 부활, 죽음과 영생 사이를 오가는 꽃입니다. 12월 1일에 태어나신 분들이여, 저처럼 평화롭고 오래도록 향기로운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겨울의 첫날, 저는 그대를 위해 다시 피어납니다.
저는 문득, 어린 시절 마을 언덕에 피던 ‘약쑥’을 떠올립니다. 봄이 오면 논둑마다 부드럽게 흔들리던 그 쑥잎은 은빛 솜털에 햇살이 닿을 때마다 살짝 윤기가 돌았습니다. 손끝으로 만지면 보들보들하고 따스했지요. 어른들은 그것을 ‘약쑥’이라 불렀습니다. 쑥보다 향이 짙고, 잎이 더 넓으며, 삶의 냄새가 배어 있는 쑥이었습니다.
그 잎을 따서 마른 뒤 불을 붙이면 은은한 향이 피어올라 집 안 구석구석을 채웠습니다. 그 향기 속에는 봄의 냄새, 흙의 냄새, 그리고 어머니의 손길이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약쑥’은 단순한 약초가 아니라 시간의 향기였던 것 같습니다. 계절의 첫 숨결을 품고, 한 해의 시작을 알려주던 은빛 잎사귀. 쑥국화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면, 그 약쑥은 ‘기억 속의 생명’을 간직한 식물이었겠지요.
— 12월의 첫 아침에, 쑥국화 드림
https://youtu.be/YaZgTuI4pM0?si=IOHHnVOBuV_0XC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