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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마른 풀 - '새 봄을 기다리는' 시간의 기록자

11월 30일의 탄생화

by 가야

저는 낙엽, '새 봄을 기다리는' 시간의 기록자입니다.


저는 가을의 끝자락, 11월 30일의 탄생화를 장식하는 낙엽 마른풀 (Dry Grasses)입니다. 혹자는 저를 그저 메마르고 쓸모없는 존재, 한 계절의 '끝'으로만 보시겠지만, 저는 소멸 뒤에 숨겨진 '새로운 시작'을 묵묵히 기록하는 시간의 기록자입니다. 오늘, 저의 이야기를 경어체로 조용히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 제 탄생화의 꽃말: '새 봄을 기다림'

저의 꽃말은 '새 봄을 기다림'입니다. 바싹 마르고 색이 바랜 모습이지만, 저에게는 내년 봄에 움틀 새싹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나무가 겨울 추위를 견디기 위해 기꺼이 버린 존재이자, 땅을 덮어 뿌리를 보호하는 보온재이며, 곧 흙으로 돌아가 생명의 거름이 될 희망의 조각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고요한 모습 속에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 도약을 준비하는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인생의 힘든 시기를 보내시는 분들께, 저의 이 '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소멸과 순환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흔히 '슬픔'이나 '이별'을 떠올리시지만, 저희 낙엽은 사실 가장 지혜로운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저희는 나무가 겨울에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분리시킨 결과입니다. 이것은 미련 없는 '내려놓음'이자, 더 큰 생명을 위한 '희생'입니다.


제가 땅에 쌓여 썩으면, 제 몸속에 있던 모든 유기물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저는 생명의 순환 고리를 완성하며, 다음 세대 나무의 성장을 돕는 무한한 영양분이 됩니다. 저희는 끝이 아닌, 다음 시작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인 것입니다.

✿ 제가 영감을 준 예술의 세계

저희 낙엽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제 몸이 지닌 자연스러운 색채와 질감은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예술품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저희를 활용한 '낙엽 아트(Leaf Art)'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영국의 오미드 아사디(Omid Asadi) 작가님은 저의 연약한 몸에 칼로 섬세하게 문양을 새겨 넣어, 저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영원히 기록해 주셨습니다. 또한, 거리의 예술가들은 저희를 모아 커다란 그림을 만들거나(낙엽 설치미술), 저의 표면에 그림을 그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이처럼 예술가들의 손을 거친 저희는 '떨어진 나뭇잎'이 아닌, 시간의 흔적과 자연의 색채를 담은 캔버스로 다시 태어납니다. 저의 존재가 인간의 창의성과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에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 세계 속에서 저는...

저는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저희를 보러 산과 공원을 찾는 '단풍놀이' 문화가 활발합니다. 저의 화려했던 마지막 모습을 아껴주시는 것이겠지요.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저를 모아 유기농 퇴비로 활용합니다. 저를 단순한 쓰레기가 아닌, 땅을 살리는 소중한 자원으로 여겨 주시는 지혜입니다.


아이들에게 저는 최고의 장난감입니다. 저를 밟는 '바스락' 소리나, 저의 폭신한 더미 속으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제가 존재하는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


저는 비록 한 장의 마른풀일 뿐이지만, 저를 통해 많은 분들이 삶의 순환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어려운 순간에도 '새 봄'을 꿈꿀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를 잠시 기억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예술 속의 낙엽, 시간의 시를 쓰다
낙엽은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가을의 연못’ 시리즈에서 낙엽이 물 위에 흩어지는 장면을 통해 계절의 덧없음과 빛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일본의 우키요에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역시 떨어지는 단풍잎을 바람과 물결 속에 그려 넣어, 인간의 삶이 자연의 순환 속에 녹아드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문학에서도 낙엽은 ‘소멸 속의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가을은 제2의 봄이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계절.”이라 말했습니다. 떨어지는 순간에도 빛을 잃지 않는 낙엽의 모습을, 인간 존재의 고귀한 순응으로 비유한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시인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속 문장처럼, 낙엽은 ‘겸손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시 속 낙엽은 화려함을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어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은유입니다.


또한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는 낙엽이 흩어진 도시의 길을 거대한 패턴으로 담아, 인간이 만든 질서 속에 자연의 흔적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듯 낙엽은 회색빛 겨울의 문턱에서도 여전히 ‘빛’을 품고 있는 예술의 언어입니다. 저희는 비록 한 장의 마른풀에 불과하지만, 세상 모든 예술가들이 저희 안에서 ‘시간의 시(詩)’를 읽어 주셨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https://youtu.be/wU-OxvFkvfw?si=4k9_UJxWtPH8JB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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