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12월 16일, 오늘의 이야기는 저, 오리나무의 이야기입니다. 겨울 강가의 공기가 유리처럼 투명한 이 계절에도 저는 물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얼음 밑에서도 제 뿌리는 조용히 숨을 쉬며, 다시 다가올 봄을 준비하고 있지요.
제 꽃말은 ‘장엄’. 그러나 그 장엄함은 요란함 속에서가 아니라, 묵묵히 세상을 품는 침묵 속에서 빛납니다.
저는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자랍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습지에서도 제 형제들이 자라고, 유럽의 강가와 늪지에서도 또 다른 오리나무들이 숨을 쉽니다. 학자들은 저를 Alnus japonica, 그들을 Alnus glutinosa, 즉 검은오리나무라 부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대륙에 뿌리를 내렸지만, 똑같이 물을 사랑하고, 똑같이 척박한 땅을 일으켜 세웁니다. 우리 뿌리에는 미세한 균류가 살아 있어, 가난한 흙을 기름진 땅으로 바꿉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생명을 되살리는 나무’, 혹은 ‘대지의 개척자’라고 부릅니다.
한국 땅에서 저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곁에 있었습니다. 나막신을 만들던 목재도, 하회탈을 빚던 재료도, 모두 제 몸에서 나왔지요. 제 껍질은 ‘적양(赤楊)’이라 하여 해열과 지혈, 장염 치료에 쓰였고, 붉은 염료가 되어 옷감을 물들이기도 했습니다.
한때 사람들은 제 이름이 ‘오리(五里)마다 심은 나무’에서 유래했다고 믿었습니다. 길을 안내하는 나무, 삶의 이정표라는 뜻으로요. 그러나 그것은 후대의 민간설일 뿐입니다. 제 본래 이름은 ‘오랏나무’였습니다.
‘오랏’은 옛말로 ‘붉다’를 뜻하고, 제가 베일 때 속목이 공기와 닿자마자 붉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저를 ‘붉은 나무’라 불렀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오랏’이 ‘오리’로 소리 변화를 겪었고, 그리하여 오늘의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태초부터 붉은 생명의 나무였던 셈입니다.
멀리 서쪽 대륙의 제 형제들은 신화와 전설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벨 때 흰 속살이 순식간에 붉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피를 흘리는 나무’라 불렀습니다.
켈트족의 전사들은 오리나무로 방패를 만들어 전장에 나갔고, 그 붉은 피는 생명과 용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 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그 소리 속에서 신의 계시를 들었다고 말합니다. 또 요정들은 인간의 눈을 피해 오리나무 염료로 옷을 물들였다고 전해집니다.
유럽의 오리나무는 신비로운 나무이자, 동시에 문명을 떠받친 나무였습니다. 제 목재는 물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특성을 지녔기에, 베네치아의 다리와 수문, 그리고 도시의 기초가 제 몸 위에 세워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를 신화 속 나무이자 인류의 문명을 지탱한 존재로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장엄함은 소리나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가장 깊은 고요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내는 일, 그것이 저의 본성입니다. 겨울의 얼음 밑에서도 제 뿌리는 살아 있고, 봄이 오면 다시 물결을 따라 새싹을 틔웁니다. 그 어떤 시련도 저를 꺾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세상과 함께 숨 쉬며, 공생하는 나무이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제게서 위안을 찾습니다. 길을 잃은 이에게는 방향을, 지친 땅에는 생명을, 그리고 슬픔을 품은 이에게는 묵묵한 위로를 건넵니다. 오늘, 혹시 강가를 걷다 저를 만나신다면 잠시 멈추어 바라봐 주세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붉은 생명을 품은 나무, 그것이 바로 저, 오리나무입니다. 동서양을 잇는 장엄한 나무로서 저는 오늘도 조용히 세상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X7oUHvYvDgs?si=vNhDtyUusKSqM4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