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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에 피는 꽃, 자금성(세시화) 보석 같은 열매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 양천성당에서 다시 만난 보석

자금성(세시화) 이야기

양천성당 작은 뜰에서 그 꽃을 다시 마주했을 때, 저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봄날 푸른수목원에서 처음 만난 뒤로 마음속에만 품어두던 그 식물, 자금성. 햇빛을 흘려보내며 흔들리던 분홍빛 꽃과 루비처럼 맺힌 붉은 열매의 잔상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히 남아 있었는데, 그 존재가 그토록 가까운 곳에서 조용히 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오래 헤맨 끝에 되찾은 한 조각의 보물처럼 마음이 찌릿하게 저려왔습니다.

푸른수목원의 자금성

· 첫 만남의 기억

푸른수목원에서 시작된 작은 전율

자금성과의 첫 인연은 올해 초 여름, 푸른수목원의 햇살 아래에서였습니다.
멀리서는 그저 은은한 안개 같던 군락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작은 꽃 하나하나가 분홍빛 눈물방울처럼 반짝였습니다. 꽃은 너무 작아 카메라 줌을 한껏 당겨야만 보였고, 그 작은 생명들이 오후 햇살을 머금고 떨며 존재를 알려오던 순간을 저는 그대로 마음에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놀라움은 꽃이 진 뒤였습니다.
잔가지 끝에 매달린 열매는 마치 빨간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선명한 채도로 빛났습니다. 루비 알갱이 같은 그 모습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강렬함을 남겼습니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그 이름은 자금성(紫金星), 혹은 세시화(三時花)라고 했습니다.

· 동네의 작은 기적

양천성당 정원에서의 '재회'

그렇게 기억 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던 꽃을 뜻밖에도 양천성당의 작은 화단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전문 정원이 아닌 평범한 아스팔트 옆, 관리가 많지 않은 흙더미에서도 자금성은 굳세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겨울의 서울을 지나 매년 스스로 싹을 틔우는 끈기 있는 생명력. 그 모습이 오히려 푸른수목원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저 ‘보이면 지나치는’ 풍경처럼 놓여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 식물은 삶의 스스로를 일으키는 힘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 이름에 담긴 기원

세시화·자금성·오파르의 보석

자금성은 여러 이름을 가집니다. 그 이름들은 이 식물의 성정과 비밀을 조금씩 비추고 있습니다.

AI가 만든 꽃과 열매 이미지

· 세시화(三時花)
오후 세 시가 되면 꽃이 활짝 열립니다. 일정한 시간에만 모습을 허락하는 식물이라 ‘시간을 거슬러 피는 꽃’이라는 별명을 갖기도 합니다.


· 자금성(紫金星)
‘자줏빛 금빛 별’이라는 뜻. 꽃의 색과 열매의 빛깔, 별처럼 흩어진 군락에서 유래한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 오파르의 보석(Jewels of Opar)
붉은 열매가 마치 작은 보석처럼 반짝인다는 의미. 원예가들 사이에서 흔히 불리는 이름으로, 그 선명한 열매빛은 누구나 한 번쯤 반해버릴 만합니다.


· 생명력의 뿌리

원산지와 성장 특징

자금성의 학명은 Talinum paniculatum.
멕시코와 중남미의 열대와 아열대 지역이 원산지입니다.

열대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내한성이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잘 자라며, 특히 자가 파종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한 번 심어두면 그 자리에서 해마다 자연스레 싹이 돋고, 작지만 성실한 군락을 만들어냅니다.


서울의 겨울을 견디고 돌아오는 그 생명력은, 꽃 자체의 미묘한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믿음 같은 것을 건네줍니다.

· 예술 속의 자금성

숨겨진 존재감을 가진 식물의 등장

자금성은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해외의 여러 일러스트·보태니컬 아트에서는 조용히 등장하는 식물입니다.

· 19세기 미국 식물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오파르의 보석’을 그리며 군집 구조와 열매의 광채를 세밀하게 표현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서구 식물도감에서는 자금성의 ‘시간을 따라 피는 개화 리듬’을 묘사하기 위해 3~4컷 연속 그림으로 소개한 사례도 있습니다.
· 고전 원예가들은 이 식물을 ‘시간의 가벼운 장난 같은 꽃(tiny whims of time)’이라 불렀으며, 오후 세 시에 정확히 피는 습성을 그림에 담아 ‘시간을 품은 정원’의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비록 대형 미술관에서 크게 조명받는 식물은 아니지만, 자금성의 존재는 오히려 조용한 오브제로서 예술 속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 꽃말

맑은 마음·깨끗한 감정·사랑의 성공

작고 순한 꽃의 모습과, 온기 어린 붉은 열매의 결실 때문인지 자금성은 다음과 같은 꽃말을 지녔습니다.

· 맑은 마음
· 깨끗한 마음
· 사랑의 성공

양천성당에서 우연히 이 꽃을 다시 보게 된 순간, 이 꽃말이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작은 기도로 남겨진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 마음에 남은 빛

개인적인 기록으로서의 자금성

매일 오후 3시 전후, 세시화를 지켜보다 보면 ‘짧은 순간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귀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한낮의 특정 시간에만 허락되는 그 아주 짧은 개화는, 오히려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작은 기적들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양천성당의 소박한 정원에서 이 꽃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은 제게 조용한 위로이자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앞으로도 산책 중 자금성을 다시 마주친다면, 그 곁에 맺힌 보석 같은 열매를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 작은 빛은 오래도록 마음속을 환하게 밝혀주는 존재이니까요.

· 요약정보

학명 · Talinum paniculatum
원산지 · 멕시코 및 중남미 열대·아열대
영명 · Jewels of Opar
별칭 · 자금성, 세시화, 오파르의 보석
꽃말 · 맑은 마음 · 깨끗한 마음 · 사랑의 성공
특징 · 오후 3시 개화 · 강한 자가 파종 능력 · 붉은 보석 같은 열매


https://youtu.be/0wM2VJ5k24c?si=mVaKWyPFLKlB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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