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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초를 닮은 작고 귀여운 꽃-운남국화 이야기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서울식물원에서 만난 이름의 미스터리


● 공작초를 닮은 꽃 - 운남국화 이야기

서울식물원 야외 정원의 운남국화


서울식물원 초록길을 느리게 걷던 날, 바람 한 번에 가볍게 흔들리던 흰 겹꽃 한 송이가 시선을 붙잡았다. 처음엔 공작초인가 싶었다. 하지만 익숙한 꽃임에도 모양이 조금 낯설었다. 처음에는 공작초인 줄 알았다. 그러나 뭔가 다르다.

서울식물원 야외 정원의 운남국화


국화 같으면서도 국화가 아니었고, 쑥부쟁이 같으면서도 훨씬 부드럽고 다층적인 꽃잎을 지니고 있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 앞에서 사람은 이상하게도 더 오래 머물게 된다. 사진을 찍고, 다시 들여다보고, 결국 집에 돌아와 열 개 넘는 탭을 열어가며 답을 찾았다. 서울식물원에서 본 그 흰꽃, 결국 며칠을 더 품은 끝에 이름을 밝혀냈다. 그 꽃의 이름은 운남국화(雲南菊花).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운남성(雲南省). 중국 남서부, 고산과 안개, 희귀 식물의 보고. ‘운남국화’라는 이름은 마치 그곳에서 건너온 듯한 운치를 품고 있었지만, 자료를 더 깊이 들여다보니 오히려 원산지는 일본이라는 사실이 나타났다. 이름과 실제 정체가 어긋나 있는 꽃. 바로 그런 모순이 이 식물을 더 오래 바라보게 했다. 꽃 하나에도 이야기는 있고, 그 이야기는 늘 단정적이지 않다.


● 이름이 여러 개라는 사실


흰겹쑥부쟁이, 운남소국, 버드쟁이나물 호르텐시스

운남국화는 공식 명칭보다 통용 이름이 훨씬 넓게 퍼져 있다. 학명은 Kalimeris pinnatifida ‘Hortensis’. 국화과에 속하며 버드쟁이나물의 원예종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흰겹쑥부쟁이·운남소국·운남국화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꽃잎이 층층이 흐드러지는 형태라 공작초로 오해받기도 하고, 꽃 형태는 국화류인데 생장 구조는 쑥부쟁이를 닮아 혼란을 준다.


이름이 하나로 굳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 꽃의 쓰임과 모습이 다양함을 말해준다.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되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다시 불리며, 결국 꽃은 자기 방식으로 남는다.

서울식물원 야외 정원의 운남국화


● 성실함과 진실함을 닮은 개화


흡사 무명천처럼 얇고 깨끗한 꽃잎이 둥글게 겹겹이 쌓여 있다. 중심엔 은은한 황색이 남아 있어 흰색이 차갑지 않고 부드럽게 보인다. 햇빛이 비칠 때는 잔주름 사이사이로 미세한 음영이 생겨 꽃의 결이 도드라진다. 화려함보다 오래도록 바라보는 아름다움. 이 꽃이 주는 인상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조용한 성실함’이 가장 가깝다.


개화 시기는 보통 5월부터 늦가을까지. 무려 반년 가까이 모습을 이어간다. 정원에서 일 년에 한 번 피고 지는 꽃은 많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해주는 꽃은 드물다. 여름에 키가 늘어지면 중간을 잘라주면 가을에 다시 새 꽃을 올린다. 정원에 심어두면 해마다 포기가 넓어지고, 그만큼 꽃도 더 넘쳐난다. 꽃말은 성실·진실·감사. 이 꽃앞에 서면 그 말들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식물원 야외 정원의 운남국화


● 이름은 운남, 근거는 일본


왜 일본 원산인데 운남국화일까. 추측 가능한 배경은 몇 가지다.
운남 지방에서 흔한 백겹국화의 형태와 비슷해 현지 도입설로 퍼졌을 수도 있고, 상품 유통 과정에서 명명된 이름이 굳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운남’이라는 어감이 꽃의 백색 이미지와 지나치게 잘 어울려, 설명 없이도 기억되는 명칭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 이 꽃을 바라보는 시간을 더 길게 만든다. 이름이 완전히 닿지 않은 채 남은 여백이, 오히려 하나의 이야기 공간이 된다.


● 예술 속에서의 흔적


문헌에는 드물지만 계보는 이어진다

운남국화라는 이름이 직접 언급된 전통 회화나 보태니컬 작품은 매우 희소하다. 그러나 국화·쑥부쟁이·소국류는 동아시아 예술의 핵심 모티프로 오래 존재해왔다. 사군자의 한 축이었던 국화는 고결함과 은일의 정신을 상징했고, 도연명은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꺾는다”고 노래했다.


이 청아한 백색 겹꽃은 그의 시 속 풍경과 낯설지 않다. 꽃의 겹잎이 그린 잔결은 백묘법 화선지 위에 국화가 흔들리던 모양과 맞닿아 있고, 국화술과 복을 비는 중양절 설화 또한 이 꽃의 계통을 따라 흐르고 있다.


서양 식물 삽화에서도 Kalimeris 계열은 비교적 선명하게 등장한다. 《Curtis’s Botanical Magazine》과 《Flora Japonica》에는 일본 소국류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오늘의 운남국화는 그 시각적 원형을 잇는 한 가지 가지라 할 수 있다. 이름은 다르고 시대는 멀지만, 하나의 선이 길게 이어지는 것처럼.

서울식물원 야외 정원의 운남국화


● 기르기 좋고 오래 함께하는 꽃


운남국화는 까다롭지 않다. 양지와 반음지 모두 가능하며, 배수가 심하게 나쁘지만 않으면 큰 문제 없이 자란다. 노지 월동이 가능해 겨울을 넘기고 다시 연보랏빛 줄기와 하얀 겹꽃을 올린다. 한 번 뿌리가 안착하면 해마다 그 자리에서 더 넓어진다.


화려함보다는 생활에 스며드는 빛. 정원 한 모퉁이에 흰 겹꽃이 한 송이만 있어도 바람결이 차분해지는 듯하다. 시끄러운 색이 많은 정원보다, 이런 꽃 하나가 오래 머무는 정원이 더 아름다운 날도 있다.

서울식물원 야외 정원의 운남국화


● 요약정보

학명 · Kalimeris pinnatifida 'Hortensis’
유통명 · 운남국화·운남소국·흰겹쑥부쟁이
원산지 · 일본 (이름은 운남성과 혼인된 민간 명칭)
개화 · 5~10월 (긴 개화, 컷백 후 가을 재개화 우수)
꽃말 · 성실·진실·감사 — 국화 계열 장수·복을 비는 전승 공유
예술 계보 · 사군자 국화문인화, Flora Japonica, Curtis Botanical Magazine 계열
특징 · 내한성 강함, 노지 월동, 겹꽃형, 정원 적응력 뛰어남


https://youtu.be/A972-xREm-A?si=hpW0veoU6SB3gQ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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