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누나의 무릎 위엔 나만 있어야해

by 홍시언

낙산공원으로 가는 길은 매일 같지만, 늘 새롭다.
누나는 내 목줄을 손에 쥐고, 나는 그 옆에서 발을 맞춰 걷는다.
계단이 많아도 누나는 힘든 기색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땐 나도 일부러 뛰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우린 서로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보폭을 나눈다.


그날도 우리는 여느 때처럼 공원 벤치를 향해 걸었다.
누나는 오늘따라 조금 피곤해 보였다. 요리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는 모르지만, 누나의 숨결이 살짝 길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더 얌전했다. 잔디밭도 덜 뛰었고, 평소보다 일찍 누나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
벤치 아래에서 낯선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였다.
이름도,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눈빛은 분명했다.
‘여긴 내가 먼저 있었다’는 듯한 태도.


나는 멈춰 섰다.
발밑에서 흙 냄새가 피어오르고, 고양이의 털은 햇살 속에서 은빛으로 반짝였다.
고양이는 조용히 눈만 껌뻑였다.
나는 ‘왈!’ 하고 소리를 냈다.
고양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잠깐 하품까지 했다.


누나는 그런 고양이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구부려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 왔네? 너 여기 자주 오는구나.
지난번에도 이 벤치 밑에 있었잖아. 기억나?”


그 말에 나는 놀랐다.
지난번에도?
그러니까… 누나는 저 친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고양이는 조용히 누나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누나는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등을 쓰다듬었다.
그 손은 분명…
늘 내 등을 토닥이던 손이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앞발로 누나 무릎을 툭 건드렸다.
누나는 “땡아” 하고 반가워했지만, 여전히 고양이에게 손을 얹고 있었다.


“질투났어?”
누나의 목소리는 웃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웃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등을 돌리고 벤치 아래에 앉았다.

풀잎이 내 발에 닿았지만,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산책을 마친 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는 평소보다 한 걸음 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땡이, 기분 상했어?”
“그 고양이 친구가 싫었어?”
“아니면 누나가 그 애를 쓰다듬어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소파 밑으로 들어가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거기 있으면 누나 손도 안 닿고, 고양이 냄새도 안 난다.
잠깐이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콕콕 아팠다.


밤이 되자, 누나는 나를 침대 위로 올려 안았다.
팔 안에서 나는 고양이 냄새를 맡았다.
그건 오늘 낮의 냄새였고,
누나가 내게 숨긴 다른 이야기 같았다.


“땡아, 오늘 그 고양이 말이야…”
누나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며칠 전부터 자꾸 따라오더라고. 아마 근처 사는 애 같은데, 목줄도 없고.
계속 벤치 밑에 앉아 있어서… 그냥 나도 인사한 거야.”


나는 그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뭔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누나와 ‘계속’ 함께 있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며칠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누나와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그 벤치를 볼 때마다 조금씩 긴장이 되었다.
혹시 오늘도?
또 나보다 먼저 와 있을까 봐.


그리고 어느 날,

그 고양이가 정말 또 나타났다.


이번엔 누나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조그만 생선맛 간식.
고양이는 아주 익숙한 듯 그것을 받아먹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간식은 원래…
내 거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왈왈!’ 짖었다.
고양이는 그제야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누나는 깜짝 놀라 고양이를 살짝 밀어내고, 나를 바라봤다.

“땡아, 너 진짜 질투하는구나…”


그날 저녁, 누나는 내 옆에 누워 긴 한숨을 쉬었다.
나는 조용히 누나 품에 안겨, 머리를 누나 배 위에 얹었다.
누나는 말없이 나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나는 땡이랑 있는 게 제일 좋아.”
그 말은 조용히, 진심처럼 들렸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아마도 세상에는 나 말고도 누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중엔 사람도, 고양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땡이다.
누나와 가장 많은 산책을 했고, 가장 먼저 아침을 맞이한 존재.


그래서 괜찮다.
내가 몰랐던 마음을 오늘 알았고,
내가 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새삼 느꼈다.


내일 또 고양이를 만나면,
오늘처럼 짖진 않을 거다.
대신 조금 멀찍이 앉아서,
그 애가 누나 무릎에서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줄지도 모른다.


그럼…

그다음엔 내가 올라가야 하니까.


누나의 무릎 위엔,
결국 나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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