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을 다 읽고

'괴로움(苦)'을 알아차리다

by 화니

『새의 선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누구 하나 평탄하거나 ‘나이스’한 삶을 살지 않는다.


진희 — 엄마의 자살, 아버지의 부재,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채 살아가는 12살의 애어른이다.
외할머니 — 딸을 허망하게 떠나보내고 외손녀를 맡아 기른다.
영옥 이모 — 절친에게 사랑을 빼앗기고, 원치 않는 임신과 중절수술, 동네 깡패의 순정에 흔들린다.
장군 엄마 — 결혼 1년 만에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하숙생 최 선생과 은밀한 관계를 이어간다.
장군 — 유복자로 태어난 어리숙하고 외로운 아이다.
광진테라 아줌마 — 남편의 폭력과 바람, 구박 속에서 명랑함 뒤의 고단함으로 버텨낸다.
그 외 인물들 역시 불륜, 폭력, 중퇴, 야반도주, 죽음… 끝없이 이어지는 거칠고 불우한 삶을 안고 있다.


모두가 짧디짧은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묻게 된다.

과연 이게 ‘특별히 불행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원래 삶이 이런 것일까?


돌아보면, 내 어린 시절 주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릴 적 기억 속 사람들은 모두 실명이 아닙니다.)


동네 이발소 아저씨는 술과 의처증, 폭력으로 아내의 비극적인 죽음을 겪었고,
이발소 아줌마는 낮에는 웃으며 손님을 맞다가도, 밤이면 맞고 도망치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옆집의 애자 언니는 실연의 상처로 얻은 병 때문에 병원, 기도원 등을 전전했고, 그 가족은 이웃과도 단절된 채 조용히 살아가야 했다.

한집 건너의 엄마 절친이었던 동철 엄마는 시어머니의 구박과 무직 남편의 폭력, 그리고 긴 병수발 끝에 남은 증오와 한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밖의 이웃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첩살이로 쉬쉬해야 했던 집, 남아선호로 딸을 차별하던 집, 애지중지 키운 아들에게 끝내 버림받은 할머니까지.

그 시절의 삶은 대체로 상처와 고단함으로 가득했다.


어려서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 떠올려 보니, 누구 하나 평탄한 삶이 없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2 때 아버지는 하룻밤 사이 떠났고,

엄마는 혼자서 2남 1녀를 대학까지 키웠다.


소설 속 삶도, 우리 삶도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쓰다. 슬프다. 힘들다.

그게 삶이다.


괴로움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기본값.


생각해보면,

잠깐의 '단맛'은 있어도 전체적으로 삶은 늘 드라마틱했다.

그 드라마가 ‘드라마라서’가 아니라

실제 인생살이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안에서 겪을 땐 괴로움이지만,

멀리서 보면,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아련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씁쓸하면서도 덤덤해진다.


쇼펜하우어도, 붓다도 '삶의 본질은 고통(괴로움)'이라고 했다.


나는 늘 여기서 멈췄다.

왜 괴로움이라 하는지, 갸우뚱하며 답답해했다.

이제야 희미하게 보인다.


나는 괴로움보다 즐거움에 더 집착했다.

잠시의 기쁨을 더 가까이 두고 싶었고,

고통은 외면하거나 부정하거나 밀어냈다.


그게 잘못이었다.

괴로움을 인정하고, 직면하고,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알아차리면 편안해진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오늘 또 한번 확인한다.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마음이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고 고요해진다.


원래가 괴로운 것이니

무슨 일이 닥쳐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게 된다.


모르면

그 진탕 속에 처박혀 슬프고 아프고 힘들지만,

알아차리면

조금은 빠져나와

지금처럼 평온할 수 있다.


바로 이것.

이게 ‘알아차림’이다.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을 평온하게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괴로움에 대한 흔하면서도 귀한 통찰.

오늘, 그걸 얻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추신: 『새의 선물』은 나에게 '선물'이었다. 은희경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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