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해본 삶

변화하는 나

by 화니

영화 〈세계의 주인〉, 〈국보〉, 〈석류의 빛깔〉을

연이어 보고

나오려고 입구에서 밀어대는 마음을,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들어오게 허락해 본다.


세 편의 영화를 7일에 걸쳐 봤다.
영화 후기를 남기고 싶은 건 아니다.
이 영화들을 통해 나에게서 무엇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1.〈세계의 주인〉은 하나의 해프닝이다.

어릴 때 삼촌에게 당한 성폭력을
삶의 치욕이자 주홍글씨처럼 짊어져야 할 굴레로 규정하는 타인들의 시선에 저항하면서도,
그 사건을 보듬은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여고생의 당당하면서도 담담한 이야기다.


그 사건을 교통사고처럼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하나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이고,
이후의 삶을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소녀로

캐릭터화한 감독의 시선이 참으로 신선하고 반가웠다.


여자의 순결, 정절, 정숙을
목숨처럼 지켜야만 한다는 가부장적 규범의 틀을
만들어 온 시대적 관념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성’은 왜 여성에게 그토록 엄격하게 적용되어 왔을까.
존재의 가치를 나누는 이 위계는
오래도록 굳어 온 사회적 관습이 아닐까


어떤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우리가 생명과 존재에 대해
그동안 쌓아 온 인식의 구조를 드러낸다.


그래서 인간다움의 최소한은,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일일 것이다.
동물이든, 여자든, 남자든
그 앞에서 다를 게 무엇이 있을까.

그 시대가 무엇을 규정하든,
본질을 알아차리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있는 그대로 보라’는 가르침에
나를 한 발 더 가까이 데려다 놓았다.

이든 아니든, 그렇든 아니든, 있었든 없었든,
그 실체는 그대로다.


다만 모든 것은 변하고, 또 변할 뿐.

그 어느 것에도 머물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2. 〈국보〉'존버'다.

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난 키쿠오는
가부키 명문가에 입문하며
‘혈통’이 아닌 ‘재능’으로 최고가 되기 위해
우정과 애정, 질투 사이를 오가며
경쟁과 공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삶을 ‘국보’로 완성해 간다.


그런데 국보가 되어 가는 주인공의 삶은
영화적 극적 서사나 영웅담이라기보다
매우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전개된다.
혈통이 우선되는 관습에 재능으로 도전하고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양보와
타인의 불운 속에서 찾아온 기회를 통해
성취에 이른 삶이기도 하다.


결국 끝까지 자신의 꿈과 길을 버리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기에
가능한 성공이 아니었을까.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혈통, 재능, 노력, 운, 버티기.

다섯 가지 선택지 가운데
가장 쉽고도 어려운 ‘존버’(버티기)
꼭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혈통도, 재능도, 노력도, 운도
자신의 자리를 끝내 지키는 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남으면 된거 아닌가.


3. 〈석류의 빛깔〉은 '삶'이다.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와 상징으로 시인을 보여주는 영화다.
18세기 아르메니아의 시인 사야트 노바의 생을 따라가지만,
뚜렷한 사건 전개는 거의 없다.


대신 화면 하나하나가 시처럼 배치되고,
의상과 색채, 사물과 몸짓이
말 대신 의미를 건넨다.


줄거리를 이해하려 할수록 더 멀어지고,
시처럼 감상하려 해도
감성보다 이성이 먼저 작동한다.


그저 ‘보는 것, 읽는 것’에 머무르려 해도
온갖 생각들이 바삐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다.


석류는 피와 사랑, 신앙과 고통,
삶의 농축된 본질을 상징한다고 한다.


결국 산다는건 괴로움(고통)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주입시키는걸 알아차렸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이든 어른이든
검은 실타래를 늘 지니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죽음과 함께 있다는 전제를
무겁게 전하는 듯했다.


보는 내내 장면 속 상징과 은유를
구체적으로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삶을 의식하고 성찰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렵다’, ‘재미없다’ '저게 뭐야?로 일갈했을 영화를,
이제는 인간의 삶에 비추어
그 의미를 더듬어 탐색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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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의 주인〉을 통해
나는 이제 사건을 이렇게 본다.
무엇이 일어났는가보다,
그 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묻는다.


〈국보〉를 통해
나는 이제 성공을 이렇게 읽는다.
타고난 조건이나 노력, 결과보다,
그 자리를 어떻게 버텨냈는지가 더 크게 보인다.


〈석류의 빛깔〉에 이르러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따지기보다,

그 장면들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묻는다.


보는 방식에서,
무엇을 보느냐,
그리고 보는 의미로.


이렇게 나는 조금씩 다르게 보며 변화한다.

그래서 이 변화와 성장의 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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