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두려운가
이것저것 올라오는 마음들을 살며시 내려놓았다가,
어떤 것은 세차게 밀어 두고,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온다.
그래도 끝없이 비집고 들어오는 번뇌와 의문과 질문들에 휩싸이다가
번쩍 눈을 뜨고 만다.
오늘은 특히 세 가지 질문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1. 나는 왜 그녀의 슬픔을 모른 척했을까?
어쩌다 마주치는 후배다. 그다지 반가워하는 지인 중 하나는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먼저 닫혀버린 것 같았다.
정말 내가 일부러 외면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또 우연히 그녀의 근황을 듣고,
사진 속 밝은 표정을 보자
마음이 불쑥 요동쳤다.
이 갑작스러운 당황스러움과 죄책감은 무엇일까.
내가 외면한 건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누군가를 피하거나 모른 척하는 건 정말 잘못된 행동일까,
아니면 그때의 나에게는 감당할 힘이 없었기 때문일까.
이 또한 내가 뿌린 씨앗의 인연법일까,
아니면 밀어두었던 불편한 마음이
지금에서야 올라온 것일까.
2. 왜 그녀의 책은 이렇게 ‘심심한 맛’으로 느껴질까?
세 번째 책을 읽고 있는데,
놀라움이나 감동보다 먼저 찾아오는 건 ‘공감’이다.
그녀의 문장은 충분히 구체적이고 실제적이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분명한 표현들에도 감탄보다는
“맞아, 그렇지” 하는 일상적인 끄덕임이 먼저다.
자극적인 울림은 없다.
혹시 내가 너무 강렬한 것들—영화, 드라마, 사건, 책—에 오래 노출되면서,
감정의 진통제에 ‘내성’이 생긴 건 아닐까?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약을 높여가다
어느 순간 약발이 더 이상 듣지 않는 상태처럼,
나도 어느새 더 자극적인 서사만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녀의 북토크에는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할까.
감동을 기대하기보다,
그저 그녀의 문장 뒤에 있는 ‘조용한 사유’를 듣는 마음이면 충분할까.
나는 무엇 이상을 기대하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 심심함을 못 견딜까.
3. 불쑥불쑥 치솟는 이 자만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안다.
내가 별것 아니라는 것을.
재능도, 경험치도, 노력도 누구처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그저 평범 그 자체라는 것도.
그런데도 이상하게 때때로 치솟는 이 자만심,
까칠하고 날 선 비판을 하고 싶은 충동,
슬쩍 지적하고 싶은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줄 알면서도,
왜 이렇게 치졸한 판단들이 올라오는 걸까.
혹시 이것도 내 깊은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일까.
뒤처지고 싶지는 않고, 제자리고 싶지도 않고,
나의 결핍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만들어낸 습성인가.
그렇다면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조금이나마 건전하게 돌릴 수 있을까.
이런 삐딱한 생각이 안 들게 하고 싶다.
숨기기보다 회피보다,
바라보는 연습을 계속하면,
이런 비뚤어진 시각도 언젠가는 다르게 흐를 수 있을까.
이 질문들 속에서 오늘이 이어지기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