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3주간의 정성 어린 마음 샤워를 마쳤다.
그런데 마음의 결이 너무 얇아진 것일까,
아니면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일까.
깨끗하게 치운 방 안에 떨어진 먼지 한 톨이 유독 크게 보이듯, 타인의 아주 작은 흠결조차 가시처럼 불편하게 느껴진다.
있는 그대로를 보려 노력했건만,
어느덧 나는 마음속으로 인간의 '품질 품평회'를 열고 있었다. 구별하는 마음이 작동한 것이다.
색안경도 모자라 확대경을 치켜들고 사람의 빈틈을 샅샅이 뒤지려는 이 심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결코 내가 원하던 선한 씨앗이 아니다.
오히려 가공되지 않은 분노와 자만,
욕심과 모자람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들이 더 인간답게 보이기까지 한다.
반대로
늘 이성적이고, 문제를 잘 해결하고, 공감도 잘하고,
겸손해 보이기까지 한 사람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속 마음이 잘 보이지 않아 겉돌다 보니, 그저 불편하고 안타깝다.
그 불편함의 끝에서 나는 결국 거울 속의 나를 만났다.
좋은 나로 살아가려는 그 고단한 애씀이
실은 나에게도 익숙한 가림막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서늘한 두려움이 스친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곧 거대한 일렁임으로 변한다. 상대에게서 보았던 그 서툰 모습이,
실은 나의 것임을 받아들이자,
분별하던 마음이 흔들린다.
나는 그 틈을 타 애써 마음을 돌려세우며, 그 무엇도 안아줄 수 있는 "자비"의 마음을 내 삶으로 끌고 온다. 그것이 내 마음의 길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그래야 내 마음의 길이 풍성하고 평온하고 자유로울 것 같다.
그동안 내가 휘둘렀던 날 선 잣대는 잦아들고,
그 자리에 깊은 연민이 들어선다.
누군가의 허물이 보이는 건 결국 그것이 나의 것이라 싫어했던 마음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구별하는 나'에서
'품어주는 나'로 나아가려 한다.
누군가의 완전함을 의심하고 파헤치려는 대신—어쩌면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기에—가려진 내밀함을 내 안의 그것처럼 가만히 지켜보고 안아주는 연습을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되,
따뜻한 자비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사람.
그것이 내가 도달하고 싶은 진정한 평온의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마주한 두려움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숨보기를 통해 마음이 맑아졌기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미세한 마음의 티끌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이 이런 건가 싶은 생각에 이내 기쁨이 차오른다.
이제 다시 나를 살피고 지켜보려 한다.
내 안의 어떤 삿된 마음도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더욱 고요하고 맑은 마음의 밭을 일궈야겠다.
결국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변화를 감히 내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거다.
내가 내 자리에서
나를 선하게 하는 생각과 말, 행동을 이어간다면
내 마음도 비로소 자비 넘치는 평온에 닿을 수 있을 테니까
자비야, 기다려.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