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이탕(최우식)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 중에 손님이었던 한 남성과 시비가 붙는다. 일방적으로 얻어맞던 그는 편의점에서 챙겨온 망치로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우연의 일치로 살인의 증거는 모두 사라졌는데 놀랍게도 그가 죽인 남자는 12년 간 지명수배 중이던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이어진 살인도 마찬가지다. 이탕이 우발적으로 죽인 사람들은 모두 흉악범인데다 증거물들이 사라지면서 그는 수사망을 교묘히 피한다.
얼마 후 이탕 앞에 노빈(김요한)이 등장한다.노빈은 이탕에게 인간쓰레기들을 청소한 게 잘못은 아니라고 말하며 자기랑 한 팀이 돼서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노빈은 배트맨 티셔츠를 입고 이름도 로빈(노빈)인 오타쿠로,악으로 점령된 범죄도시를 구할 다크 히어로로 이탕을 선택한 것이다. 이탕의 능력은 "쓰레기를 보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이탕은 처음과 달리 자기 합리화과정을 거치며 각성하기 시작한다.
하지만,살인은 엄연히 살인. 여기서 난감하고도 묵직한 질문이 던져진다.
과연 천하의 나쁜 놈을 법이 아닌 개인이 심판하는게 '정의'인가?'죽어 마땅한 사람'은 누가 결정하는걸까?하는 질문 말이다.
갠적으로 이 드라마에서 가장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최우식은 인터뷰에서 “촬영 내내 ‘정당한 살인은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면서 “정당한 살인은 없다는 것이 제 결론이고, 이탕 역시 (살인의 정당성에 대해) 타협을 못 한 모습을 보여드리려 연기적으로 욕심을 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최우식은 원치않은 살인을 한 후 다크 히어로가 되어가는 과정을 '아주 고통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살인자'가 된 이후 시종일관 지뢰를 밟고있는 듯한 연기를 통해 엄청난 설득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사가 별로 없는데다 폭발시키는 연기가 필요한게 아니라서 더 힘들었을듯하다.)
이 드라마는 복수 대행 서비스를 실시한 <모범택시>가 공권력과 법의 무능함에 날카로운 똥침을 날리며 엄청난 통쾌함을 선사하는 것과는 결이 좀 다르다.
시종일관 과연, '사적 복수',그것도 '살인'이 정당화되는게 맞는거야?라는 (어쩌면 당연한) 불편함을 주는 것이다.
그 불편함을 극대화한 인물이 송춘(이희준)이다. 송춘은 사적 복수 차원에서 첫 살인을 저지른 후 '선과 악'에 대한 구분마저 잃어버린 '희대의 살인마'다 .그러니까 어쩌면 완전히 망가져버린 '이탕'의 미래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탕은,'살인'을 한다는 점에서 자신과 다를바없는 송춘을 두려워한다.이탕이 보기에 송춘은 자신이 될지도 모르는,하지만 절대 되고싶지 않은 미래의 자신이기 때문이다.
'살인'과 반대 지점에 있는 인물은 바로 별 혐의점이 없는 이탕을 의심하는 장난감(손석구) 형사다.
피해자에서 한글자만 바꾸면 가해자야 -장난감 형사
난감은 정의 구현은 사법체계 안에서 실행돼야 한다고 믿지만,형사였던 아버지의 죽음 앞에 흔들린다.
문제는 드라마가 이탕( 최우식)이 중심이 되는 초반을 지나 중후반으로 가면서 지루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탕에서 장난감,그리고 송춘으로 이야기의 중심이 옮겨가는데,이 세사람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엮이질 못하고 찰기가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데다,중후반부 어디에선가 이탕은 사라져 버리고 난감의 수사는 난감할 정도로 진도가 안나가며, 그러다보니 강렬한 송춘의 존재감도 빛이 바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1~ 3화까지 산뜻하게 잘 가고 있던 네비게이션이 갑자기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랄까.
또한 나는 '구씨'시절 손석구의 열렬한 팬이지만, 이 드라마에선 편의점 앞에 나타날 때의 날카로운 첫 등장에 비해,캐릭터가 힘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특유의 웅얼거리는 대사톤은 대사가 길어질 때 다소 억양이 어색하게 느껴졌고,특히 형사들과 함께 있을 때 과하게 '폼을 잡고 '있는 듯한 연기가 캐릭터로서 돋보이기보다 엇박자처럼 느껴져 아쉬웠다.'폼나는'것과 '똥폼'은 한끝차이니 말이다.(못했다는 게 아니라 아쉬웠다.)
영화의 결말은,노빈의 도움으로 필리핀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이탕이,죽어 마땅한 놈에 대한 새로운 살인을 한 것을 암시하며 끝난다.이탕이 아니라면 이탕과 비슷한 패턴의 살인자가 등장했음을 알리는 것일수도 있겠다. 과거 유괴살인범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뉴스를 장난감 형사가 유심히 보는 이유다.
이탕은 '고통스러운'과정을 거쳐 혼란스럽던 자기자신과 마침내 '타협'하고,'정의로운 살인마'가 되기로 한걸까?
나는 이 결말을 보며 '죽어마땅한 놈들'이 활보하는 도시가 개탄스러웠고 이탕의 저주받은 능력이 안타까웠다. 왜냐하면 이 탕은 살인마가 된 이후에도 엄마 집 앞에 쌓인 눈을 몰래 쓸어놓을 정도로 '착한' 청년이기 때문이다.
제목이 무척 독특한데,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A Killer Paradox'(살인자의 역설)로 공개됐다. 일본과 스페인어권에서도 각각 '殺人者のパラドックス'(살인자의 패러독스), 'La paradoja del asesino'(살인자의 역설)로 해석됐다.'살인자의 역설'이란 제목은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잘 전달해주지 않나싶다.
완전 흥하고 있다는데 나만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
그나저나 좀 더 '서정적'이라는 꼬마비님의 웹툰이 궁금해진다.(그림체가 2등신 명랑만화 스타일이어서 놀라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