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산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만큼 산을 잘 타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을 아주 못 타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산행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너무 더웠지요. 하지만 언제 더웠냐는 듯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제 슬슬 가을 산행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떠난 산행.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의 끝이자 가을의 시작 즈음의 산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나무숲 향기는 왜 그리 향긋한지요? 알맞게 내리쬐는 햇살,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 모든 것이 완벽한 산행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앗! 작은 돌부리에 걸려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제 몸은 공중에서 하릴없이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때 또 하나의 존재가 제 눈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핸드폰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마치 슬로 모션의 한 장면처럼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핸드폰이 제 손안으로 들어와 잡힐 리가 없었습니다. 저와 핸드폰은 서로 다른 각도와 궤적을 그리며 절대로 닿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산행할 때 핸드폰을 배낭에 넣어 둡니다. 하지만 잠깐 사진을 찍고 배낭에 넣는다는 것을 깜박한 것입니다. 주머니에 살짝 넣어져 있던 핸드폰이 마치 자유를 찾은 듯 유쾌하게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위에 부딪혀 통통 튀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제 눈에는 깨져 가고 있는 핸드폰의 섬세한 과정이 만 분의 일 초 단위로 보이는 듯했습니다.
어느덧 저도 핸드폰도 공중을 날아 지상에 도달했습니다. 그 끝은 참담했습니다. 저의 무릎과 팔은 까져서 새빨간 피가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핸드폰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니, 아무런 아픔이 느껴지지 않은 채로 핸드폰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한참 동안 핸드폰을 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핸드폰을 구해 낼 수 없었던, 구해 내지 못했던 제 자신을 인정사정없이 책망했습니다. 수만 가지의 선택지를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수도 없이 후회했습니다. 오른쪽 발을 먼저 내디뎠더라면, 그 길로 가지 않았더라면, 핸드폰을 고이 배낭에 넣었더라면……. 아무리 후회해도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 없었지요.
한참 뒤에야 무릎이 쓰라리기 시작했습니다. 팔이 저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핸드폰의 아픔보다 더하지는 않았답니다.
그런데 그제야 뭔가 생각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 제 자신의 상처와 아픔보다 핸드폰의 상처와 아픔이 더 중요해진 것일까요? 어느 때부터 저는 사람보다 핸드폰이 귀해진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저보다 핸드폰이 더 중요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일까요?
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해졌습니다. 그제야 제 무릎과 팔의 상처가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없이 무력한 현대인의 마음이 되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까진 무릎과 팔이 점점 더 아파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