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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려되었습니다 Jan 24. 2024

강아지의 시간은 3배 빠르다

노견과 함께 산다는 것.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는 많이 보더라도 늙은 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탓일까. 사람의 노화보다 강아지의 노화가 낯설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면 "건강하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다가도, 노견과 마주하면 안쓰러움이 먼저 밀려오는 게 단순히 친밀도에 따른 차이는 아닌 듯하다. 왜 나는 사람의 노화에 이토록 관대하면서 강아지의 노화에 속앓이를 하게 되었을까?


 단순히 노인을 더 많이 보았기 때문은 아니고, 시간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강아지의 시간이 사람보다 3배나 빠르다던데. 내가 한 시간을 외출할 때 강아지는 3시간을 내리 외로워한다니, 너무 불공평하다. 이래서 "혼자 살면 강아지 키우지 마라"라는 소리가 나오는 건가. 9-6 타임으로 근무할 때 출퇴근 편도 1시간을 가정하면, 내가 아무리 칼퇴를 해도 강아지는 혼자 33시간을 집에서 보낸다는 말인데. 심지어 핸드폰과 넷플릭스도 없이..!!! 이 아이는 혼자 집에서 33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할까.


집에 오래 있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 나오는 게 이렇게도 즐거울까?


 나는 아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어느덧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 대견함보다 속 쓰림이 먼저 밀려온다. 나이를 먹으며 어디 아프지는 않을까, 면역력이 약해져서 없던 병이 생기지는 않을까 더 조심스러워진다. 특히 예전보다 눈물이 많아지고 가끔 눈앞에 장난감을 둬도 찾지 못하는데(그냥 관심이 없는 건가?), 혹시 백내장이나 치매가 아닐까 전전긍긍한다.


 혹시나 치매가 오면 어떡하지. 다른 강아지들은 뒤로 오는 방법을 까먹어서, 가구 사이에 낀 채로 하루를 보낸다던데.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우리 아이가 벽을 본채 가만히 서있으면 아마 주저앉아 울음부터 터트리지 않을까. '치매보단 차라리 백내장이 낫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몹쓸 생각을 한 나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낫기는 무슨. 우리 애들은 죽을 때까지 건강할 거야(?)


 이런 쓸데없는 걱정은 겨울이 되면 더 심해진다. 견주가 강아지의 건강을 확인하는 자가진단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식욕이 줄었는지, 응가는 잘하는지, 그리고 코는 촉촉한지. 강아지의 코는 정말 많은 일을 하는데 겨울이 되면 차갑고 건조한 공기 때문에 코가 자주 말라버린다. 아직 어린 막내는 코가 건조하면 그냥 건조한갑다~하고 넘기면 되는데, 집안 어르신들의 코가 말라버리면 머릿속에서 코드블루가 메아리친다.


제일 큰 애(바다)가 막내다. 바다는 건강할 날이 더 많다.


 더 밀도 있는 시간을 견뎌내는 아이들에게 압축된 행복을 건네줄 수 있도록 늘 노력하지만, 언제나 내가 뜻하는 대로 흘러가는 게 없다. 더 좋은 거 많이 먹이고, 더 좋은 곳 많이 데려가려고 해도 눈앞에만 닥치면 본능적으로 귀찮다며 피하려 하는 느낌이랄까. 나보다 이 아이들이 세 배는 더 기다렸을 텐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나 이기적이고 간사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시간이 3배 더 빠르다면, 3배 더 즐겁게 살도록 배려해야지. 오늘은 간식도 3묶음으로 사고, 산책도 30분 더 돌아야겠다. 나보다 더 알차게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항상 부족한 사람으로서, 오늘도 다짐과 함께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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