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친구들을 만났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마음이 통하기에 그냥 친구라 부른다.
내 결혼식에 와준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만든 자리. 다양한 삶의 색을 가진 3명이 모였다. 나, 그리고 마음 따듯한, 자기만의 상처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한 명,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금수저에 가까운 이 한 명.
각기 가진 색은 다르지만, 우린 통했다. 각자가 가진 반짝임을 알아보고 모임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을 나누다 문득, 금수저 그의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글을 써보고 싶다고. 금수저의 특권에 관해. 그는 한참을 웃었다. 그 특권이 뭐냐며.
그 물음에 나는 답했다.
“여유.”
그들이 가진 특유의 여유.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자란 이들을 꽤 봐왔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봤다.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여유였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란, 혹은 조금 부족한 가정에서 자란 이들은 흉내내기도 힘든 그 특유의 여유.
내가 말하는 여유는 단순히 물질적 여유가 아니다. 명품 옷, 명품 가방 같은 것에서 나오는 여유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은은히 풍겨오는 아우라 자체가 여유가 있다. 그 여유는 때로는 양보로 보이기도 한다.
일례를 들면 다 같이 술을 먹었다. 그런데 그 여유를 가진 이는 술을 못 먹는다. 그런데 술값이 3명이서 15만 원이 나왔다 치면, 그들은 거기에 내가 술을 얼마 안 먹었고 어쩌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그래~ 오늘 즐거웠다!’만을 표현한다. 그런 표현은 꼭 말로 해야만 티 나지 않는다. 그냥 그 표정, 비언어적 몸짓 등에서 녹아난다.
때로 그 여유는 물음표가 뜰 정도의 솔직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잘난 채로 보일 수 있는 말들이 그들은 그저 내가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상이기에 너무나 자연스럽다. 우리 셋이 처음으로 맥주 한잔을 기울인 날. 월급 이야기,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 모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정말 자연스럽게 그는 우리에게 말했다.
“난 월급을 써 본 적이 없어.”
“응???”
“아빠 카드 쓰거든.”
그런 말을 하는 모습에 ‘미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아, 이것이 저 사람의 삶이겠구나. 싶었다. 오히려 내게 이런 삶도 있다고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느낌에 신기했다. 새로운 소설책을 펴 든 느낌이랄까.
매일 다른 샤넬 가방을 메고 오는 그에게 가방 너무 예쁘다며 한 번 메 봐도 되냐는 물음에도 그는 언제나 쿨했다. 그래. 그리고 본인은 가방에 흠집이 생길까 걱정 하나 없이 그저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제안에 대해 재지 않는다. 그저 본인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내가 이걸 정말 하고 싶나? 정말 이걸 했을 때 행복할까?’
당장 이직을 할 때도 그들은 연봉보다는 면접관이 주는 분위기, 회사의 미래,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행복을 생각한다.
또 타인의 호의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본인들이 베푸는 호의에 대해서도 크게 돌려받을 생각 또한 없다. 이 부분은 때론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그게 그 사람의 특성일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를 만난 직장에서 모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아우라.
모두 그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재택을 하던 이들도 그에겐 안부 전화를 걸어 회사는 잘 있냐는 말을 건넸고, 그가 사는 동네에 왔는데 언제 한 번 카페에 가자 말을 건네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껏 내가 만난 이들은 모두 그랬다. 특유의 여유, 재지 않음, 사치품을 대하는 태도 모두가 한결같았다. 물론, 간혹 너무나 이기적이고 못난 모습으로 ‘쟤, 금수저 맞아? 도금수저 아니고?’ 싶은 이들도 있었지만, 뭔가 부모 대대로 풍요롭게 자란 이들의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유를 가진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시기 질투의 대상이 돼 상당히 피곤한 삶을 살기도 하고, 때론 연예인처럼 이유 없는 사랑을 받기도 한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던 시간, 그들을 보며 조금은 좌절했었다. 열심히 나를 깎으며 부정적인 모습, 자존감 낮은 모습을 뜯어고쳐왔지만, 그들의 여유는 감히 흉내 낼 수가 없었다. 언제든 넘어져도 되기에 항상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도전할 수 있는 그 사람들.
애초에 시작이 다른 느낌에 조금은 슬펐었다. 때론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 질투 같은 감정도 가졌었다.
그렇게 조금씩 내 못난 모습을 마주하며 성장했다. 이제는 그저 내가 실제로 겪어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며 그 삶의 조각을 나눠줌에 고마움이 먼저 든다.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데 큰 흥미를 느끼는 나는 그들을 통해 다른 삶의 조각을 들여다본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 안에서 그들이 만나는 인간 군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또 깨달아가고 그들이 느끼는 고통에 함께 슬퍼하고 또 그들의 행복에 함께 행복해하고. 그렇게 우린 금수저, 흙수저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음을 쌓아간다.
그저 수저론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들과 함께하며 느꼈던 진짜 그들의 특권, 그리고 그들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느꼈던 내 못난 모습, 그리고 함께하는 오늘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