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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순이 Jan 27. 2023

상처 주는 것에 의연한 사람

결국 퇴사 엔딩

회사에 어떤 재미가 있을까? 일을 배우고 일을 하고 그 외에 어떤 재미가 있어야 할까? 그저 마음 맞는 이와 잠깐씩 갖는 커피 한잔, 점심시간 한참을 웃고 떠드는 시간. 그 시간에 누리는 행복이면, 그 휴식이면 일할 맛이 난다.

지옥철을 견디고 출근해 나를 향해 반갑다는 듯 방긋 웃어주는 동료의 미소 한방이면 언제 힘들었나 싶다. 그런 동료가 잠시나마 있었다. 꽤나 무던히 견뎌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나 역시 그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그의 일을 함께하고 내 업무 분야 건 아니 건, 돕고 소통했다.

그런데 결국 그는 퇴사 통보를 했다. 이제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 말했다. 그의 선임의 무시와 하대는 한층 더 심해졌고 일로 괴롭히는 정도도 더 심해졌다. 아주 교묘했다. 더 글로리의 연진이 같았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을 만큼.

그걸 보며 함께 아팠고 스트레스받았고, 그저 그가 좋은 면을 보고 웃길 바랐다. 그리고 마음을 다독였다. 일희일비하지 말자. 내가 흔들리면 저 사람은 더 흔들릴 것이다. 의연하게 담담히 대처할 방법을 알려주자.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하대하는 말을 할 땐 웃어넘기지 말고 그 말을 그대로 반문하라고.

"정신 차리고 일하세요."라는 말에 멋쩍은 웃음대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정신 차리라고요? 네??"라고 반문하라고.

그가 조금씩 단단해지자 남에게 상처 주는데 의연한 그는 더 단단해졌다. 투명인간 취급. 보는 눈이 있을 때만 대화하고 보는 눈이 없으면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하는 것이다.

왜 남에게 상처 주는 것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차피 저 사람이 나가면 저 일은 또 본인이 하게 될 텐데. 그 누가 들어와도 저렇게 수습을 버티지 못하고 나갈 텐데. 그걸 즐기는 걸까? 따뜻할 필요도 없다. 그저 사람답게 존중하면 되는 부분 아닐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퇴사를 말했다는 동료의 말에 순간 숨이 막혔다. 모지리처럼 착한 사람, 오만 잡일을 다 떠넘겨도 묵묵히 쳐내던 사람, 말도 안 되는 갑질에도 제 자리를 지키던 이는 떠나간다.

상처 주는 걸 즐기는 사람만 남았다. 저런 행위에 상처받는 건 우리가 공감 능력이 좋아서일까? 그렇다면 이 공감 능력이 죽도록 싫어진다.

남이 상처 받든 지 말든지, 내 행복만을 위해 내 안위만을 위해 사는 사람. 그런 이들만 버티는 회사라고 생각하니 울컥. 서글펐다. 너무나 착해 꾹꾹 참는 이들, 그런 이들을 만만함으로 분류해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들. 그 안에 상처받는 이들을 보며 내 일도 아닌데 눈물이 났다.

이렇게 상처받고 아플 바에는 나 역시 그렇게 사는 게 났지 않을까? 남들 따위, 남의 감정 따위, 언제나 내 행복, 내 편안함만 추구하며 그렇게. 과연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일까? 나도 눈 감고 살면 저렇게 될 수 있는 걸까? 눈 감고 귀 닫고 하고 싶은 말만 하며 윗사람들 눈 잘 속여가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설사, 그렇게 산다고 한들 나는 행복할까?

일련의 상황을 보며 인과응보란 있는 것일까? 인과응보는 과연 존재하는 걸까? 왜 묵묵히 자기 일하는, 상처받아도 그저 다툼이 싫어 참아내는 이들만 떠나가는 걸까.

방관자인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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